상담을 하다보면 돈 떼이고 마음 상한 사람이 무척 많다. 떼이는 과정은 얼추 비슷하다. “지금만 아주 급한 상황이며 곧 돈이 들어온다. 믿을 사람이 너밖에 없다.” 그렇게 읍소하면 누구나 마음이 흔들릴 법하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한 거잖아.’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 몇 만원에서 몇 천만원까지 빌려주지만, 이미 되돌려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돈 빌리는 사람이 다 사기꾼이어서가 아니다. 지극히 상황 논리에 의거한 결과다. 상황이 어려워서 돈을 빌리는데 과연 금세 갚을 수 있을까? 급한 상황이 사람을 죄짓게 만드는 것이지, 그 사람이 철저히 악인인 경우는 드물다.

도대체 왜 돈을 빌려가서 안 갚는 것인지 아무리 개탄해도 돈은 돌아오지 않는다. 없으면 없다고 설명하고 양해도 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얄궂게도 아쉬운 상황에서는 더 아쉬운 소리 하기가 싫은 게 사람이다. ‘에이, 그깟 돈 안 받고 말지, 그렇게 안 봤는데 그 인간 참 상종 못할 인간이네. 앞으로 절대로 돈 거래는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결론에 이른 당신. 사실 당신은 돈 빌려주고 떼인 선의의 피해자가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을 ‘돈 안 갚고 사는 괘씸한 인간’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사람은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고 했다. 더럽고 치사해서 그 돈 안 받는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급해서 돈 빌렸다가 안 갚아도 되는 상황 속에서 인생살이의 값진(?) 교훈을 얻는 사람도 많아진다. 처음에는 본의 아니게 못 갚았지만, ‘안 갚아도 되네’라는 소중한 삶의 경험은 나중에 전략까지 짜서 ‘삥 뜯고’ 사는 인생길로 들어서게 만든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원리와 같은 거다. 체면과 염치를 벗어던진 사람들은 인간 세상 생태계에서 참 요리조리 잘도 살아가는 듯 보인다. 생존의 극한에 서보면 윤리는 쉽게 휘발된다.

대체 어쩌라는 건가? 돈 잘 빌려주고 살자는 거다. 단, 호기롭게 자신이 ‘좋은 사람’임을 보여주기 위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지 말자는 것이다. 철저히 상환 계획을 수반해야 한다. 500만원을 다음 달에 한꺼번에 갚겠다고 하면, 상대방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약속이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돈 빌리면 무조건 10% 이자 쳐서 갚는 사람

매월 5만원이든 10만원이든 꾸준히 갚겠다는 실천 가능한 약속이 중요하고, 이를 어길 때에는 어떤 대가를 치르겠다는, 빌리는 사람의 자기 다짐과 성의가 필요하다. 돈을 빌려주는 것 못지않게 갚도록 독려해야 하는 것이 빌려주는 사람의 의무다. 내 손을 떠난 돈에는 ‘누구의 소유’라는 표시가 없다. 내가 빌려준 돈이라는 위세를 버리고 이제 내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차례가 온 것이다. 단순히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상대방의 돈 거래 습관을 돕고, 돈 때문에 사람 잃는 일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기에 그 일을 해야 한다.

일전에 만난 한 사람은 급한 일로 누군가에게 만원을 빌려도 무조건 원금의 10%를 이자로 쳐서 되갚아준다고 한다. 그렇게 높은 이자를 쳐서 갚게 되면 자신에게 손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정말 웬만하면 빌려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또 그렇게 철저히 이자를 쳐서 잘 갚으니 너도나도 돈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하더란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돈 걱정은 덜고 살아도 될 만큼 신용을 확보한 셈이다.

슬프게도 고금리 사금융권에서 이러한 상환 플랜을 가장 성실하게 수행한다.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금전적 이익을 위해서 이리도 성실하게 빚을 갚도록 종용한다는 현실이 서글프다. 서로서로 돈 거래를 하며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마련인 것이 인간 세상 금융인데, 그 아쉬운 소리 하기가 싫어 기꺼이 고금리 금융기관에서 권하는 빚을 끌어다 쓰며 결국 부채의 늪에 빠져드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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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박미정 ((사)여성이만드는일과미래 생활경제상담센터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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