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하러 간 곳에서 만난, 혼자 사는 A씨(65세)는 현재 3000만원 정도의 현금 자산만으로는 노후 준비가 어림도 없을 것 같다며 걱정이 컸다. 나이 들어 자식에게든 이웃에게든 ‘민폐’를 끼치는 것이 가장 싫다며, 어떻게 하면 3000만원을 잘 운용해 노후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를 물었다.

그렇게 걱정되면 ‘즉시 연금’(한꺼번에 목돈을 예치한 뒤 곧바로 매달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연금 상품)에 넣어두고 일을 그만두게 된 후 매월 연금으로 받는 게 어떠냐고 말씀드렸더니 버럭 역정을 냈다. 애써 모은 목돈을 왜 허물어 푼돈을 만드느냐는 것이었다. A씨는 ‘3000만원’을 지키면서 그 이자로 노후를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은행에 넣어두면 이자로 매월 10만원 정도 발생될 것이라고 설명했더니 크게 실망했다. 경제 상담 전문가라기에 뭔가 좋은 정보를 갖고 있으려나 기대했더니 별게 없다는 반응도 보였다.

걱정이 됐다. 누군가 이분에게 7% 정도의 이자를 기대할 수 있는 좋은 투자처가 있다고 꼬드겼을 때 혹해서 투자를 감행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었다. “원금이 손실될 수 있다”라는 말 한마디면 절대로 그런 결정은 내리지 않을 것이나, 현실상 이에 대한 설명이 미흡한 채로 투자 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궁금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큰 이익에는 큰 위험성이 따른다는 상식을 외면할까? 왜 써야 할 때 쓰려고 모은 돈인데, 곁에 모셔두려고만 하고 써서 없어지게 되는 당연한 현상을 두려워할까?

두 사람이 당신에게 돈을 빌리려 한다. B라는 사람은 시중 금리보다 약 3%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한다. C라는 사람은 시중 금리의 두 배로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한다. 누구에게 빌려줄 것인가? 수익률만 단순 비교하자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잠깐, 상식이 제동을 건다. 왜 C는 통상적인 금리보다 과하게 이자를 주겠다고 하는 걸까? 돈을 구하려는 자의 이러한 ‘이자 공약’은 그 사람의 애절함과 급박함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돈을 빌려줌으로써 내가 얻을 당장의 이익에만 포커스를 맞춘다면 C를 선택하겠지만, 급박한 상황에 쫓길수록 돈을 갚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상식’이 작동되면 안전하게 B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여러 혜택으로 무장한 좋은 금융상품이 있다면 왜 자기가 가입하지 않고 내게 권하는 것일까. 좋은 땅이 있다고 불쑥 전화하는 사람은 왜 그 좋은 땅을 자기가 안 사고 남에게 추천하는 미덕을 실천하는 것일까.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혜택은 내게만 찾아온 엄청난 기회가 아니라 뒤가 구린 자의 구애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씁쓸한 현실이다.

높은 수익에는 높은 위험성이 따른다

원래 저축은 나중에 쓸 돈을 잠시 모아두는 기능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은 돈을 3년 안에 쓸 일이 생긴다. 늘 그렇게 벌어 쓰고 일부는 모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쓰면서 산다. 그런데 온갖 화려한 기능을 치장하고 나타난 금융상품들의 기대 혜택 덕분에 필요할 때 즉시즉시 그 돈을 가져다 쓰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버젓이 돈을 모으고 있는데도 ‘저거 지금 깨면 손해가 크다’거나 ‘조금만 더 두면 두 배가 될지도 모르는데’라며 대신 값비싼 금리의 대출을 끌어다 쓴다.

목돈 증식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는 금융상품 마케팅은 모은 돈을 ‘종잣돈’으로 둔갑시켜 쉽사리 사용하지 못하도록 벽을 친다. 이러한 프레임 속에서는 돈이란 무조건 ‘쓰면 손해’다. 그러니 돈이 필요할 때 그냥 모아둔 내 돈 써도 될 일을 구태여 비싼 이자 주고 남의 돈을 갖다 쓰도록 하는 어이없는 비효율을 만들어낸다.

돈은 쓰려고 모으는 거다. 농부들이 가뭄을 대비해 저수지를 만들어두듯, 우리도 인생의 가뭄을 대비해서 나만의 저수지를 준비해두는 것이 저축이다. 저수지 물은 절대로 갖다 쓰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가뭄이 오면 맘껏 썼다가 다시 비가 오는 계절에 조금씩 저수지를 채워두면 된다.

기자명 박미정 ((사)여성이만드는일과미래 생활경제상담센터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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