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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한국 언론의 ‘실각’

2013년 12월 12일(목) 제326호
남문희 대기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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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3일 ‘장성택 실각’ 보도는 뒤늦은 호들갑이다. 이는 국정원의 대북 정보력이 원세훈 체제 이후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이를 걸러내지 못한 한국 언론과 전문가의 책임 또한 크다.

‘죽은 것은 김일성이 아니라 한국 언론의 신뢰다.’ 1986년 ‘김일성 사망설’이라는 세계적 오보를 낸 한국 언론에 대해 해외 언론이 이렇게 조롱했다. 12월3일의 국정원발 ‘장성택 실각’ 보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각한 것은 장성택이 아니라 한국 언론과 이른바 대북전문가들의 신뢰다.’

실각이라는 말은 그 당사자가 권력 중추에서 낙마할 때 사용한다. 12월3일 국정원이 여야 국회정보위 간사에게 브리핑한 자료는 장성택의 위상을 ‘(김정은 정권의) 핵심 후견인이자 사실상 2인자’라고 규정했다. 국정원이 정말 이렇게 보고 있었다면 대북 정보력이 ‘원세훈 5년의 추락’에서 아직 회복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게 아니라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과 이석기 사건에 이은 ‘물타기성 기획 폭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장성택의 위상을 부풀린 거라면, 이를 걸러내지 못한 언론과 ‘대북전문가’들 역시 책임을 면키 어렵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교도통신</font></div>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맨 왼쪽)과 장성택 부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  
ⓒ교도통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맨 왼쪽)과 장성택 부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

김정은 체제에서 장성택의 위상은 어떠했으며 이번 사태의 의미는 무엇일까. 올해 초 이미 북한 권부에서 장성택이 사실상 축출됐다고 지적해온 일군의 관측통들은 국정원발 뉴스를 보며 ‘뒤늦게 웬 호들갑인가’ 하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김정은 체제의 출범 과정에서 장성택이 후견인이었던 적도 없고, 2인자였던 적도 없으며, 따라서 그가 없다 하여 권력이 격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또 최근 북한이 추진해온 개발구와 특구 정책 역시 장성택은 숟가락을 얹은 것에 불과할 뿐 실제 추진 주체는 따로 있기 때문에 그가 없다 하여 개혁이 후퇴하는 것도 아니고 대남관계가 경색되는 것도 아니며, 중국 역시 이미 최룡해로 대북 채널을 바꾼 상태이기 때문에 이 같은 조처를 반대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장성택이 최근 일본을 등에 업으려고 해 껄끄러워했다고 하기도 한다.

김정일 위원장이 장성택에게 가한 ‘철퇴’


한국의 대북 정보는 이명박 정권에서 속된 말로 ‘개판’이 됐다. 장성택에 대한 이미지 역시 이명박 정권 이전 수준에 멈춰 있다. 그러다 보니,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쓰러졌다가 10월에 깨어나서 취한 일련의 조처를 놓쳐버렸다. 그것이 김정은 체제 이후 장성택의 위상을 제대로 읽지 못하게 한 결정적 이유다. 정신을 차린 김 위원장은 자신이 쓰러진 기간 김정남과 손을 잡고 권력을 농단하려 한 장성택에게 철퇴를 가했다. 김정남은 멀리 쫓아버리고, 장성택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세력화를 할 수 없도록 돈줄을 전부 막아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장·김 연합’에 맞서 싸웠던 김경희, 김설송(김정일 전 위원장의 큰딸), 그리고 김정은 3인에게 후계 권력구도를 이양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런 내막에서 본다면 장성택은 절대로 김정은 체제의 후견인도 2인자도 될 수 없는 운명이다. 오히려 권력 내 ‘위험인물이자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라는 평가가 맞다.

지난해는 일종의 과도기였다. 김정일 전 위원장이 갑자기 사망한 직후이자 김정은 제1비서 체제가 공고화되기 전이다. 이때 새 정권에서 자신의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해 장성택이 무리수를 둔 게 바로 8월 방중 사건이다. 당시 권력 내부에서 모두 말렸으나 자신이 가면 중국으로부터 경제개발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고 주장하며 강행했다가 결국 빈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로써 장성택이 언제든 머리를 쳐들 기회만 엿보고 있다는 점이 권력 내에서 각인됐고 그것이 올해 초 사실상의 실각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장성택으로서는 어떻게든 돈줄을 막아버린 김정일 전 위원장의 주술을 풀어야 했다. 그러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끌어들여야 했는데, 그것이 그의 몰락을 재촉했다.

그 여파가 올해 2~3월께 있었다는 가택연금 사태다. 지난해 12월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올해 2월의 핵실험 등 대외 강경 노선을 주도한 당 중앙위 입장에서는 장성택이 걸림돌이었다. 마침 평양시 건설 과정에서 영양시 인맥으로 포진한 장성택의 측근이 자금을 빼돌린 사건이 포착됐다. 이들을 쳐내면서 장성택에 대해서는 ‘분파주의 예방을 위한 선(先)조치’라는 명분으로 한때 가택연금 조치를 취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자칫 잘못하면 3월31일의 당 중앙위 전체회의에도 참석 못할 상황이었으나 일단은 권력에 관여하지 않고 체면 유지만 하는 선에서 권력 내 타협이 이뤄졌다.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이라는 타이틀이 만들어진 경위가 바로 이것이고, 엄격하게 보자면 이때 실각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체육지도위원장 임명 때 사실상 실각


그렇다면 지금의 사달은 뭔가. 최근 <자유북한방송>은 평양 소식통을 인용해, “군 보위사령부가 올해 4월부터 주변 인물들을 감시하고 전화 도청을 해오던 중, 그(장성택)의 손과 발이던 리용하, 장수길(당 행정부) 부부장을 평양시 건설과 요즘 한창 진행 중인 경제특구건설에서 어마어마한 국가 재산을 빼돌린 죄로 11월12일 ‘반당·반혁명 분자’라는 감투를 씌워 감옥에서 처형했다”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위 내용 중 평양시 건설과 관련된 얘기는 지난 2~3월의 사달이 날 때 얘기이고, 이번 사태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바로 ‘경제특구 건설과 관련한 착복’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장성택의 측근들이 주로 경제특구 관련 조직에서 눈에 띄었기 때문에 마치 장성택이 특구 정책을 주도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상은 특구가 돈이 되기 때문에 장성택이 숟가락을 얹은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실제 특구 정책을 연구하고 주도해온 쪽은 당 중앙위로 이들은 지난 2008년 이래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특히 2011년부터 비밀리에 ‘당중앙경제정책연구위원회’라는 조직을 통해 연구한 결과가 지난 9월부터 알려진 북한의 특구 정책이다. 이는 예상보다 이른 지난 11월23일 발표된 14개 특구 개발구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이 정책의 발표 주체가 내각 정령이라 돼 있는데, 이는 특구 정책의 중심은 당 중앙위이고 이를 내각이 앞장서 추진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동안 장성택 역시 자금 마련을 위해 이런 흐름에 편승했다. 최근의 사달은 바로 일본의 남포·원산 프로젝트에 그가 관여하면서 발단이 됐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지난해 중국을 통해 돈줄을 잡으려다 무산된 이후 일본 쪽으로 돈줄을 바꾸려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5월의 이지마 방북과 11월6일의 이노키 방북 등 아베 방북 프로그램에 편승하는 형태로 나타났고, 일본의 남포·원산 프로젝트와 관련해 돈 문제가 포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당 중앙위나 권력 내부에서 일본에 반감을 가지고 있거나, 일본의 수교 배상금을 장성택이 재기의 발판으로 활용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장성택이 안토니오 이노키를 만날 때 ‘잘못하면 이 일이 장성택의  몰락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는데, 생각보다 빨리 견제세력이 싹을 자르고 들어온 셈이다. 또한 타이밍상 북·중 간에 김정은 비서의 방중 협의가 진행 중이란 점 역시 작용했을 수 있다. 중국 측도 일본에 편승하기 시작한 장성택에 대해 껄끄럽게 여기기 시작했고, 방중을 전후한 새로운 판짜기에서 그의 존재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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