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들어 사교육비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교육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 지수를 분석한 결과 사교육비가 2년 연속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2013년 2분기 가구당 17만9000원→2014년 2분기 18만1000원).

이유가 무엇일까. 누구나 아는 대답 한 가지는 입시 경쟁이다. 승자독식의 치열한 경쟁 구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하는 욕망이 사교육 편향을 끊임없이 부추긴다. 다른 하나는 ‘사교육 없이는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없다’는 현실 구조다. 지난 9월12일부터 공교육정상화법이 시행되고 있지만(혹시 당신도 ‘수포자’입니까 기사 참조), 일부 교사는 여전히 “이건 학원에서 배웠지?”라며 지나가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곤 한다.

이는 일차적으로 교사의 직무유기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과정 자체가 이런 식의 진도빼기 수업을 필연적으로 불러온다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가르쳐야 할 내용은 너무 많고, 시간은 한정돼 있다”라고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교육과정 개정 시마다 단골 레퍼토리가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인데, 교육과정이 14번 바뀐 지난 15년 동안 학습 부담이 줄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연합뉴스흔히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지만, 교육과정은 1년에 한 번꼴로 바뀌어왔다. 지난해 11월7일 한 수능 고사장에서 수험번호를 적고 있는 학생들.


그런 와중에 박근혜 정부가 또다시 교육과정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9월24일 교육부는 이른바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 총론을 발표했다. 모든 학생을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로 성장시키기 위해 교육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 한다는 것이 교육부가 밝힌 개정 배경이다. 그러나 교원단체와 교육 시민단체들은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이번 교육과정 개정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설사 개정 필요성에 공감한다 하더라도 지금 같은 절차와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을 다섯 가지로 짚어보았다.

 문·이과 통합은 ‘거대한 속임수’?

“그럼 이제부터 문과·이과 없어지는 거예요? 야호, 신난다. 난 영어·수학 성적이 비슷해서 고민이었는데.” 교육부가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발표한 뒤 한 청소년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불행히도 그 기대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딸기맛 음료’에 딸기가 들어 있지 않은 것처럼 이번에 발표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문·이과 통합‘형’일 뿐 문·이과 구분을 없앤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고1 과정에 ‘통합과학’과 ‘통합사회’ 과목을 신설해 모든 학생이 이들 과목을 공통 수강하게끔 하겠다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주요 골자다.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더라도 고 2, 3학년이 되면 예전처럼 문과 계열로 진학할 학생은 사탐(사회탐구), 이과 계열로 진학할 학생은 과탐(과학탐구) 위주로 나뉘어 공부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실제로 개정안을 주도한 국가교육과정개정위원회의 김경자 위원장(이화여대 교수)은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이 처음에는 문과와 이과를 통합하는 계열 통합이라는 오해가 있었다”라며, 실상은 그것이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에 관한 기초 소양이 반영되는 교육과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제1차 국가교육과정 전문가 포럼, 7월24일). 문제는 여전히 많은 학생·학부모들이 이를 문·이과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과연 수용자의 이해 수준이 낮아서 생긴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문·이과 통합형’이라는 용어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이미 교육과정 개정을 둘러싼 토론회 과정에서 여러 차례 나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교총)은 ‘통합형’이라는 용어가 오해와 혼선을 불러일으킨다며 이를 ‘문·이과 균형 교육과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여론 호도를 위해 ‘문·이과 통합’을 의도적으로 갖다 붙인 게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는 것은 일제 잔재이며, 이런 식으로는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사고를 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문·이과 폐지에 대한 찬성 여론도 높은 편이다. 그런 만큼 교육과정을 굳이 왜 지금 개정해야 하는지 설득하기가 쉽지 않자, 정부가 그나마 여론의 지지가 높은 문·이과 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주장이다.

 수능은 그대로 둔 채 교육과정만 바꾼다고?

“이번 교육과정 개정의 출발은 교육과정 개정이 아닌 ‘융합형 수능’ 개편이었다”라고 김정빈 21세기교육연구소 부소장은 지적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현행 선택형 수능의 가장 큰 문제로 문과 학생이 과학을, 이과 학생이 사회를 전혀 배우지 않아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점을 지목해왔다. 1997년 시행된 제7차 개정 교육과정에서부터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이 크게 강화되면서 이 같은 ‘편식’ 현상이 심화됐다는 것이 신성호 전국사회교사모임 대표의 지적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 이뤄진 ‘2009 교육과정 개정’으로 고1 단계의 국민공통교육과정이 폐지되면서 문·이과 사이 칸막이가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연합뉴스9월24일 박춘란 교육부 대학정책관이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의 주요 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과목 선택권을 늘린 취지는 학생 개개인의 진로와 적성에 맞게끔 자유롭게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수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고1에서 고3까지 모든 과정이 선택형으로 바뀌면서 입시에 유리한 과목 위주로 수강하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라고 진영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참교육실장은 말했다. 그 결과 선택형 수능에 따른 칸막이 현상을 완화할 대안으로 융합형 수능을 모색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교육과정 개정에까지 논의가 이른 것이다.

그래놓고는 정작 수능에서 이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구상은 이번 발표에서 쏙 빠져버렸다. 교육부는 내년에 새 교육과정을 고시한 뒤 수능 개편안 연구에 착수해 2017년 이를 확정·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대입 3년 예고제’에 따라 2021학년도 수능부터 개편안이 적용된다. 이에 대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수능 개편안과 연동되지 않는 교육과정 개정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라고 비판했다.

 툭하면 개정, 아이들이 ‘실험실 쥐’인가?

7차 교육과정(1997)까지만 해도 교육과정은 대체로 10년 주기로 바뀌어왔다는 것이 교육계의 설명이다. 당시 방식은 한 번 바꿀 때 총론·각론·교과서를 모두 바꾸는 전면 개정 방식이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2007년부터다. 이때부터 시대 변화에 맞게 교육과정을 손질한다며 수시 개정(부분 개정) 방식이 도입됐다.

문제는 여기에 정치적 논리가 끼어들면서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교육의 자율성·다양성을 확대한다며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는 한편 이를 뒷받침할 만한 새 교육과정(2009 개정 교육과정)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2007 개정 교육과정이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도 똑같은 행태가 반복됐다. 대통령 취임 첫해 교육과정을 바꾸겠다고 선포한 데 이어 그로부터 1년 만에 개정안 총론이 나온 것이다.

그 결과 벌어진 현상이 위 〈표〉와 같다. 교육부가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에서 만든 이 〈표〉를 보면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진 2009 개정 교육과정이 현장에 적용된 첫해가 2013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곧 지난해에는 초등 1, 2학년과 중1, 올해는 초등 3, 4학년과 중2, 고1 식으로 바뀐 교육과정이 순차적으로 적용되게끔 계획돼 있었다. 그런데 이 순차 주기가 끝나기도 전에 새 교육과정 총론이 나온 셈이다.

현재 초등 6학년을 예로 들어보자(붉은색 사선 참조). 2009년 입학한 이들은 2007 개정 교육과정으로 초등학교를 마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는 내년이면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진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학교를 다니고, 고등학생이 되는 2018년이 되면 박근혜 정부에서 만들어진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따르게 된다. 〈표〉에 따르면 올해 초등 3~6학년까지 4개 학년은 고교 졸업 시까지 이처럼 3개 교육과정을 거칠 것이 확실시된다.

학교 현장에서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진후 의원은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된 2000년 이후 교육과정이 모두 14차례 개정됐다고 밝혔다(고시 기준). 20~30년을 내다보고 만들어져야 할 교육과정이 일 년에 한 번꼴로 바뀐 셈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지금 가르치는 게 2007 과정인지, 2009 과정인지 헷갈려 하는 교사도 많다고 진영효 실장은 말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 교육과정 바꾸면 창의·융합형 인재 길러지나?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는 “통합 교과를 가르친다고 창의·융합형 인재가 길러진다는 보장은 없다”라고 잘라 말한다.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일찌감치 천명하고 ‘차세대 과학 성취 기준’을 개발 중인 미국에서도 이를 학교 현장에 도입하는 데는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융합교육 또한 우리처럼 초·중·고교에서가 아니라 대학·대학원 수준부터 시도한 뒤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수능이나 내신 상대평가 같은 현행 평가체제를 그대로 둔 채 창의·융합형 인재를 기르겠다는 것은 ‘뻔뻔한 발상’이라고도 지적했다. ‘정답이 있는 문제’를 기계적으로 풀어대도록 요구하는 평가체제 아래 창의·융합적인 사고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신성호 대표는 통합 교과서 한 권 던져줬다고 통합교육이 실현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준비된 교사도, 연수 프로그램도 없는 상태에서는 사회·도덕·지리·역사 등 관련 과목 교사가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들어가 n분의 1시간씩 나눠 수업하는 게 통합사회 수업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잘못돼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

교육부는 △2015년 9월 확정된 교육과정을 고시하고, △2016년 8월까지 새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 집필 및 검정을 완료하며, △2017년부터는 개정 교육과정을 초·중·고교 현장에 연차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육과정 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이 같은 개정 일정에 대해서는 고개를 내젓는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7월 새 교과서 집필·검정에 소요되는 기간이 1년에 불과하고 내용 수정을 위한 기간이 거의 확보돼 있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한 바 있다.

시민단체는 교육부가 이런 촉박한 일정 등을 핑계로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밀어붙이지는 않을까 바짝 경계하고 있다. 교육부는 9월24일 배포한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자료’에서 ‘2017년부터 국정교과서 연차적 적용(검정 절차 불필요)’이라 적시했다가 논란이 되자 관련 내용이 결정된 것은 아니라고 발을 뺀 바 있다.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를 두고 “공통사회 국정교과서화에 한국사까지 얹어가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훗날 이렇게 졸속으로 진행된 교육과정 개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교육과정을 개정하자고 시동을 건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이미 자리에서 물러났다. 개정 작업을 주도한 국가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는 임시 기구에 불과하다. 정권은 바뀌면 그만이다.

그런 만큼 9월12일 한국교원대에서 열린 교육과정 개정 공청회에 참석한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초정파적으로 구성된 국가교육과정위원회(가칭)를 상설 기구로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야만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과정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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