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단체와 기업의 만남. 어찌 보면 어색한 조합이다. 환경운동연합이 새로 시작한 ‘초록강좌’의 첫 번째 주인공은 세계적인 아웃도어 의류업체인 파타고니아의 임원 빈센트 스탠리(63)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 서울환경영화제에서 국제환경영화경선 대상을 받은 〈댐네이션-댐이 사라지면〉의 전국 상영회를 개최하면서 이 기업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밝혔다. 대형 댐의 해체와 강의 복원 과정을 다룬 이 작품의 제작을 지원한 것이 파타고니아였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우리 제품을 사지 말라”고 광고하는 ‘괴짜 기업’으로도 유명한 파타고니아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2월24일 환경운동연합에서 진행된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좋아하는 구절로 강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헤밍웨이 작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서 주인공이 마이크라는 인물에게 “넌 어떻게 파산하게 됐니?”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한다. “두 가지 방식으로였지. 점진적으로 그리고 갑자기.”

환경적으로 우리가 직면한 상황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큰 얘기다. 기후변화나 해수면 상승 등은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인간은 이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다 카트리나 같은 갑작스러운 대재앙에 맞닥뜨려서야 비로소 그 심각성을 깨닫는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 만큼 우리가 하는 일이 생물종의 통합성, 안정성, 고유의 아름다움이라는 세 가지 중요한 특질을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시사IN 신선영빈센트 스탠리(위)는 1973년 파타고니아에 입사한 이래 ‘발자국 연대기’ 등을 이끌었다.

파타고니아도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파타고니아는 본래 창업주인 이본 쉬나드가 부모 집 뒷마당에서 등반 장비를 만들면서 시작된 회사다. 당시만 해도 산악인들은 바위틈에 쇠못을 박으며 암벽을 오르곤 했다. 산을 좋아했던 쉬나드도 마찬가지. 그런데 기존 쇠못이 너무 약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가 견고한 쇠못을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쉬나드 장비’는 1972년 최초의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여러 번 써도 끄떡없는 이 회사 장비(일명 강철 피톤)는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산악인들이 단단한 쇠못을 같은 루트에 계속 박으면서 등반을 하다 보니 바위에 균열과 변형이 생기기 시작했다. 산악인은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연과 가까이 하려는 행위가 오히려 자연을 훼손하는 자가당착적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에 쉬나드가 주목한 것이 영국에서 막 사용하기 시작한 알루미늄 초크였다. 망치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밀어넣거나 제거할 수 있는 초크라면 충분히 쇠못의 대안이 될 것 같았다. 문제는 기존 설비를 폐기하고 신규 투자를 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이었다. 쉬나드는 위험을 무릅쓰고 변화를 선택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불과 9개월 만에 기존의 쇠못에서 새로운 초크 쪽으로 매출 중심이 옮아갔다.

알고 보니 나일론보다 환경에 더 유해했던 면
 

‘우리 재킷을 사지 말라’던 파타고니아 광고.

그 직후인 1973년 쉬나드 장비는 아웃도어 의류 사업 쪽에 진출했다. 회사명도 파타고니아로 변경했다. 내가 파타고니아에 합류한 것도 그즈음이다. 초창기 파타고니아에는 암벽 등반이나 서핑을 즐기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의류 사업은 순항하는 듯했다. 그러다 두 번째 딜레마에 직면한 것이 1988년이다. 그해 미국 보스턴에 세 번째 매장을 열었는데, 직원들이 구토와 복통을 호소했다. 포름알데히드가 원인이었다. 면 옷의 변형을 방지하기 위해 가공 공정에서 포름알데히드가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문제가 이것뿐일까?’ 직원들은 의심을 품었다. 이에 우리가 주로 쓰던 네 가지 원단(면·폴리에스터·나일론·울)을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농장에도 직접 가봤다. 충격적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엄청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새나 벌레는 찾아볼 수 없었다. 머릿속에 그리던 시골 풍경이 전혀 아니었다. 직원들은 면화밭에 생기는 목화다래벌레를 없애기 위해 다량으로 뿌려댄 유기인제와 화학 살충제가 문제였음을 알게 됐다. 우리는 그 전까지 면을 천연섬유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일론보다 환경에 더 유해한 직물이 면이었던 것이다.

그 뒤 우리는 유기농 목화를 재배하는 소규모 농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대안은 없을까’ 궁리하고 찾아보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됐다. 특히 친환경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고, 더 나은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

파타고니아는 2005년부터 원단이 입고될 때부터 옷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출고돼 물류창고에 배달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추적한 ‘발자국 연대기(The Footprint Chronicle)’를 매년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다. 각각의 단계에서 폐수나 이산화탄소는 얼마나 발생하는지, 에너지는 얼마나 쓰는지, 쓰레기는 얼마나 배출하는지 투명하게 보여주는 보고서다. 파타고니아는 이 같은 경험을 협력사뿐 아니라 업계 전반으로도 확장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의류 생산·가공·유통 과정에서의 환경지수를 측정해 발표하는 ‘지속가능성의류연합’에는 현재 100여 개의 의류 기업이 가입해 있다. 2002년 우리가 주창해 만든 ‘지구를 위한 1% 프로그램’에도 1500여 개의 회원사가 참여하고 있다. 연간 매출의 1%를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기업들의 네트워크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파타고니아의 비전이다. 2011년 12월, 블랙 프라이데이(미국의 전통적인 연말 쇼핑 시즌)를 앞두고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파타고니아 광고 제목이 “우리 재킷을 사지 마세요”였다. 옷을 사되 패션이나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꼭 필요한 옷만 사서 소비를 줄이자(Reduce), 그 옷이 작아지거나 못쓰게 됐을 때는 파타고니아 매장에 보내 고쳐 입자(Repair), 그래도 더 입기 어려울 때는 그 옷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거나(Reuse), 재활용(Recycle)하자, 이것이 파타고니아가 고객들을 상대로 벌인 4R 캠페인이다. 이것이 화제가 되면서 “결국에는 당신들이 돈 더 벌려고 이런 광고를 내는 것 아니냐”라고 따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우리도 치열하게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으로서 옷을 적게 사라고 말하기는 참 어렵다. 

그럼에도 어떻게 하면 환경에 덜 해를 끼치면서 현명하게 이익을 낼 것인지가 우리의 고민거리다. 파타고니아는 필요한 일을 제대로 했기에 지난 40년간 기업으로서 생존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금융위기 상황에서 파타고니아가 연간 50% 이상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인간과 자연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 애쓴 점을 소비자들이 신뢰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리·김은남 기자

기자명 빈센트 스탠리 (파타고니아 철학 담당 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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