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단국대)의 전공은 기생충학이다. 희소성 높은 학문에 외롭게 전념하고 있다. 그런데 기생충학 이외의 부문에서도 그의 인기가 높다. 탁월한 글쓰기 능력 덕분이다. 그가 신문에 기고하거나 블로그에 올린 글 중 대다수가 SNS를 통해 공유되고 전달되며 화제로 떠오른다. 기생충 이야기를 넘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는 서 교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팬덤이 있을 정도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었지만 처음부터 서민 교수가 글을 잘 쓴 것은 아니다. 어릴 적에는 너무 말이 없어서 급우들이 말을 못하는 것으로 오해할 정도였다고 한다. 말더듬증과 틱 장애까지 있었다. 말하기뿐만 아니라 글쓰기에도 콤플렉스가 심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워 블로그를 몇 년 동안 비공개로 운영할 정도였다. 첫 책을 낼 때는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다녔지만 거절당하기도 했다. 그런 서민 교수가 이제 글쓰기에 대한 책(〈서민적 글쓰기〉)을 낼 정도로 이 부문의 달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열등감의 이유였던 글쓰기는 이제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다. 글쓰기의 바닥에서 시작해 정상에 오른 그는 글쓰기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무지에서 살아남고, 편견에서 살아남고, 오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글쓰기가 필수라고 말한다. 그가 어떻게 글쓰기 능력을 길렀는지 비결을 들어보았다.

ⓒ시사IN 신선영서민 교수(단국대)의 전공은 기생충학이다. 희소성 높은 학문에 외롭게 전념하고 있다.

학창 시절에 글을 잘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글쓰기 책을 쓴 사람 중에서 학창 시절 글을 못 썼던 이는 내가 유일한 것 같다. 다른 분들 보면 글쓰기 관련 상을 많이 받았던데 나는 교내 백일장에서조차 입상해본 적이 없다.

어떻게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우리나라는 글쓰기 교육을 따로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써야 한다. 나는 논문을 너무 못 써서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교수가 된 뒤에도 논문을 내지 못해서 학교에서 경고도 받았다. 노는 교수, 논문 안 쓰는 교수로 낙인찍혀서 산 세월이 길었다. 논문으로 모자라는 점수를 대중서로 만회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글쓰기는 알라딘에 서평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들었다. 알라딘 서평 블로그를 2004년에 만들었다. 그때부터 열심히 했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안 읽었다는 콤플렉스가 있다. 알라딘 블로그에서 이름을 날리면 그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거기 서평가들은 책을 생활화하는 분들인데 거기서 내가 꽤 이름을 날려서 콤플렉스를 좀 극복했다.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하게 만드는 것은 방문자들의 반응이다. 그게 없으면 계속 열심히 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목표를 세우면 좀 열심히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알라딘 서평 블로그를 하기 전에 비밀로 만든 홈페이지가 있었다. 그 홈페이지는 3년 동안 댓글이 하나도 없었는데 죽자고 글만 썼다. 반응을 바라고 쓰는 게 아니라 연습장이라 생각하고 썼다. 알라딘에서도 한 3개월 동안 댓글이 없었다. 그럴 때 어떤 분들은 다른 사람들의 글에 댓글을 남기면서 ‘제 블로그에도 한번 놀러 오세요’라고 하더라. 나는 그런 방법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많은 댓글이 글을 솔직하게 쓰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고 봤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많이 오겠지’라고도 생각했다.

댓글이 많이 달리면 오히려 장애가 된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나? 그래서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이런 걸 올리면 욕먹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글쓰기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기 전에는 방문자가 적은 게 오히려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잘 쓰고 있는 현재와 글을 잘 못 썼던 과거로 나눠서 자신을 설명한다. 글을 못 쓰던 시절에는 어땠나? 글을 쓰는 것이 즐겁지 않고 굉장히 괴로웠다. 3주마다 칼럼을 쓰는데 뭐 쓸까 괴로워하다가 마감에 맞춰 겨우 글을 보내고 스스로 실망하곤 했다. 칼럼 한 편 쓰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원래 글을 빨리 쓰는 걸 좋아하는데 칼럼이라고 생각하니까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글이 안 나왔던 것 같다. 지금은 한 시간이면 칼럼 한 편을 쓴다. 자신이 즐겁고 편하게 써야 남들도 재밌게 읽는다. 억지로 짜내는 글은 정말 아닌 것 같다.

음식도 그렇고 글쓰기도 재료가 중요한 것 같다. 재료만 신선해도 훌륭한 음식이 되듯이 글쓰기도 자료를 잘 찾으면 좋은 글이 된다. 자료를 열심히 찾는 것 같다. 내 글쓰기를 크게 1기와 2기로 나누는데 1기를 암흑기라고 부른다. 대략 2006년 정도까지 쓴 글이 1기인데 이때 쓴 글을 보면 글쓰기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 묶어서 책을 낼 때도 참고문헌 같은 걸 거의 찾지 않았다. 그런 기본이 없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참 부끄럽다. 다행히 그때 쓴 책은 별로 팔리지 않았다.

2기에서는 무엇이 달라졌나?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이 생기니까 글도 좀 쉽게 쓰게 되더라. 대충 써도 스스로가 만족하는 글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생충 열전〉을 쓸 때는 참고문헌을 많이 찾았다. 공부를 하다 보니, 책을 한 권 쓰면 왜 전문가가 되는지 알겠더라. 원래 기생충학 강의도 잘 못했다. 강의할 때 부끄러워했는데, 그 책을 쓰고 나니까 자신감이 생겨서 학생들을 휘어잡으며 강의할 수 있었다.

자신감이 생기니까 쉽게 쓸 수 있더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글쓰기엔 ‘자뻑’ 같은 것도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자신감이 생기니까, ‘내가 읽어도 잘 썼네. 이게 내 글이야’라며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물건이 나왔다.

ⓒ생각정원 제공지난해 10월 서울 대학로 ‘벙커1’에서 서민 교수가 글쓰기 특강을 했다(위). 서 교수는 책을 낸 이후 자신감이 생겨 강의도 더 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쓰기 솜씨가 좋아진 계기가 책을 많이 읽은 것이라고 했다. 특히 30대에 책을 많이 읽었다고 들었다. 마음에 안 드는 첫 번째 책을 내고 나서,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 만난 책이 강준만 교수 책이다. 원래 그렇지 않았는데, 강 교수 책을 계기로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회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멋있다는 생각에 자기만족을 하게 되었다.

지금 들고 다니는 책은?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책이다. 〈괴수전〉이라는 책인데 너무나 재밌다. 처음부터 사로잡는다. 제일 좋아하는 장르는 소설이다. 특히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서평집인 〈집 나간 책〉을 보면 책을 고를 때 허영이 없는 것 같다. 그럴듯한 책을 언급하기보다는 분야나 종류가 종횡무진이다. 관심이 가는 책을 자유롭게 읽는 스타일인 것 같다. 나도 〈자본론〉 같은 어려운 책을 읽고 싶은데 안 되더라. 이해 못하는 책을 몇 권 읽어봤는데 읽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내 수준에 맞는 책을 읽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책을 많이 읽으면 내공이 쌓여서 어려운 책도 읽을 수 있게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가끔 부럽다. 어떤 분은 내가 읽은 소설의 핵심을 파악해서 ‘그건 이런 소설이야’라고 얘기해주기도 한다. 보르헤스의 작품은 아무리 읽어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남들은 다 스마트폰 보는데 나는 책을 읽으며 간다는 데 만족한다.

신문도 열심히 읽는 것 같다. 집에서 신문을 꼼꼼히 본다. 좋은 자료 있으면 사진을 찍어서 보관한다. 기사를 통째로 사진 찍는다. 그리고 일반 여론에 관심이 많아서 인상적인 댓글이 있으면 캡처해놓는다.

자기 분야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쓰는 이공계 교수는 가끔 있지만,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글을 쓰는 교수는 드문 것 같다.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고 내 생각을 정리하고 그 결과를 사람들에게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 칼럼을 중단했다. 집사람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근혜 대통령은 당신을 구속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라며 그만두라고 말렸다. 아쉬웠다. 한창 정점이었는데…. 집사람은 내가 정치적인 글을 쓰면 싫어한다. 과학적인 글만 쓰라고 해서 항상 다툼이 있었다. 아내가 겁이 좀 많다. 내가 한번 고소당했을 때도 한 달 동안 우울해했다. 검찰에 가서 조사받는 날이 오면, 그때는 접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쓰기 재료가 없어서 어려웠다. 대통령이 아무 일도 안 하니까 쓸 거리가 없었다. 아무 일도 안 한다고 까는 것도 한두 번이지. 칼럼을 보낼 때마다 이런 쓰레기 글을 전송해서 죄송하다고 계속 얘기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후 (대통령이) 활동을 많이 해서 즐겁게 쓰고 있다.

댓글을 글에 인용하곤 한다. 댓글을 유심히 보는 것 같다. 댓글에 젊은 사람들의 생각이 드러난다. 몇몇 댓글이 전체 여론을 말하는 건 아니지만, 여론이라고 해도 크게 지나치지 않다. 공감이 몇백 개, 몇천 개 되는 것도 굉장히 많다. 댓글은 열심히 노력한다고 잘 쓰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댓글은 시랑 약간 비슷하다. 천재성이 있어야 댓글을 잘 쓰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기발하게 웃긴 댓글들을 보면서 감탄할 때가 많다. 글은 노력하면 쓸 수 있는데 댓글은 그게 안 된다.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데 능한 듯하다. 솔직한 글이라는 인상을 주는 데 필요한 것은 자기를 ‘디스’하는 것이다. 꼭 외모뿐 아니라 ‘인간 말종이었다’ ‘나는 쓰레기였다’ 이렇게 시작하면 ‘왜 그런가’ 하고 궁금증을 갖는다. 나는 외모 덕분에 그게 가능해서(웃음)…. 오히려 외모 덕을 보는 편이다. 어린 시절은 외모 때문에 망쳤지만 나중에는 그걸 뜯어먹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언제부터 자신의 외모 콤플렉스를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는가. 시간이 지나니까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다. 어느 날부터 내가 더 이상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오히려 그걸 이용해서 뭔가를 더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가 좋았으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외모가 처지니까 더욱 노력하자’ 같은 생각도 했다.

ⓒ서민 제공서민 교수의 실험실. 그는 의사 면허증 덕분에 기생충학 교수가 됐다고 말했다.

지식인들은 글쓰기에서 강한 자의식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당신의 글은 담백하다. 내가 잘나지 못해서다. 나는 인생에서 딱 한번 반짝였는데 그게 고3 때다. 공부를 잘했고 그 시기에 마침 대학입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험을 잘 봐서 의대에 갔다. 그거 하나로 먹고살아 왔다. 교수가 된 것은 의사면허증 덕분이었다. 기생충학 교수를 뽑는데, 조건이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이었다. 경쟁률이 1대1이었다. 의대 출신 아닌 사람 중에서 실제로 훌륭한데 교수가 못 된 분도 많이 있다. 그분들 보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논문 같은 경우도 내 논문이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글에 역설적인 표현이 많다. ‘우리가 몰랐던 대통령의 장점’ 같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잡혀가면 안 되니까(웃음).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변희재씨로부터 고소를 당했지만 무혐의로 나왔다. 역설적으로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세대는 문자로 된 텍스트보다 비주얼 콘텐츠를 좋아한다. 유튜브 영상이나 짧은 ‘짤방’에 대한 반응이 크다. 정말 그렇다. 글을 읽으려면 어느 정도의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을 점점 안 하는 시대라서 동영상이 각광을 받는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동영상의 바탕도 텍스트다. 사람들이 가끔은 텍스트의 창조자가 되고 싶어 하면 좋겠다. 특히 자기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독서와 글쓰기가 매우 중요하다. 자칫 매스컴이 조종하는 대로 끌려다니고, 강요당한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윤회 비선 개입 파동’으로부터 며칠 뒤에 조현아 스캔들이 터졌다. 사건의 크기로 보면 상대가 안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몇 달 동안 매스컴의 조현아 죽이기에 놀아났다. 대중도 문제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를 팔아먹어도 지지할 거라고 한 유시민 전 장관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글쓰기에 대해 사람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글쓰기는 취미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독서도 마찬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글을 잘 쓰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왜냐하면 글에는 자기 생각을 알게 하는 힘이 있다.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모든 국민이 글쓰기를 하면 우리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글쓰기와 독서가 이 사회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녹취 도움·김연희 기자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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