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첫 콘서트를 떠올려본다. 1995년 본 조비 내한 공연이었다. 입시를 목전에 둔 고3 수험생이었지만,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엄마를 졸라 티켓을 끊었다. 어떻게 티켓을 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연이 열린 잠실까지 뭘 타고 갔는지에 대한 기억도 영 희미하다. 중요한 건, 내가 그날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고함을 내질렀다는 거다. 본 조비의 수많은 히트곡을 다 따라 부르면서 입시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해소했던 추억만은 확실하다.
이후 대학교를 거쳐 음악에 관한 직업을 구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공연을 봤다. 가끔씩 사람들은 내게 묻곤 한다. “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은 뭔가요?” 그들의 예상 답안지는 대개 다음과 같다.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에도 나오듯이 ‘좋은 앨범을 공짜로 받는 것’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게으른 태도로 직업에 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보다는 내 돈으로 앨범 사고 공연 보러 가는 게 훨씬 좋다. 게다가 이렇게 사적 자본을 투입하면, 왠지 모르게 더 애틋해지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장점도 있다.
작은 공연장은 그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
솔직히 30대 중반을 넘어서부터 공연을 자주 보러 가지는 못했다. 체력 문제에 스케줄이 겹치는 탓이다. 그럼에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공연장을 찾으려 애쓰는 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라이브를 보면서 충전하고 ‘인풋’을 하지 않으면, ‘아웃풋’할 거리가 발생하지 않는 까닭이다. 직업적 당위를 지키기 위해 공연장으로 향하기도 하지만,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도 라이브 관람은 필수인 셈이다.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동시대적인 감각’을 직접 관찰하기 위해서다. 링고 스타는 비틀스라는 밴드의 가치를 “지금 바로 여기에(Be Here Now)”라는 멋진 표현으로 설명한 바 있다. 나중에 오아시스(Oasis)가 아예 앨범 제목으로 차용하기도 한 이 표현이야말로 대중음악의 핵심을 제대로 꿰뚫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을 눈으로 포착하고, 귀로 느끼는 것. 그리하여 (할 수만 있다면) 비록 흐릿한 인상일지라도 어떤 전망 같은 걸 그려보는 것.
여기에서 전망이란 가능성 발굴의 또 다른 말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볼까. 국카스텐이 지금처럼 거물이 아니었을 때 이미 마니아와 평론가들은 그들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장기하와 얼굴들? 말할 것도 없다. 저 유명한 혁오는 어떤가. 〈무한도전〉에 출연해 ‘아름다운 이별’을 부르기 훨씬 이전부터 혁오는 ‘동시대적인 감각’의 어떤 상징이었다.
그렇다면 2017년에는? 단언컨대 새소년이라고 말하고 싶다. 새소년은 3인조 밴드다. 사이키델릭, 블루스, (신스) 팝 등을 빈티지한 질감으로 풀어내는 그들은 인디 신에서 이미 대세다. 심지어 앨범 발매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심상치 않은 밴드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얼마 전 새소년이 데뷔작 〈여름깃〉을 발표하고 단독 공연을 열었다. 작지 않은 공연장이 관객들로 끓어 넘쳤고, 깜짝 오프닝으로는 혁오가 등장했다. 관객 중에는 장기하가 있었다. 이쯤 되면 동시대적인 감각의 계승이라고 해도 괜찮을 풍경 아닌가. 작지 않은 공연장만으로는 그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날이, 곧 찾아올 것이다. 뮤지션·밴드의 성장 과정을 쭉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직업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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