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색한 별점으로 ‘악명’ 높은 영화평론가 박평식이 ‘올해 최고의 서스펜스’라며 무려 별 넷을 달아준 영화,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이런 게 바로 내내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영화’라며 별 넷 위에 별 반 개 더 얹어 극찬한 영화,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2015)에 우리 모두 열광한 지 3년 만에 속편이 완성됐다. 기대치를 높이기보다 걱정거리만 늘려온 3년이었다.
먼저, 속편 감독이 드니 빌뇌브가 아니다. 〈그을린 사랑〉(2010)과 〈프리즈너스〉(2013)를 거쳐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2015)로 단숨에 ‘스릴러 거장’이 된 그는, 〈컨택트〉(2016)와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를 연이어 만드느라 이 영화의 속편을 포기했다.
배우 에밀리 블런트도 나오지 않는다. 그녀가 연기한 1편의 케이트 덕분에 관객은, 이야기를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온전히 체험할 수 있었다. 케이트가 겁먹을 때 관객도 함께 겁에 질렸고, 케이트가 갈등할 때 관객도 똑같이 생각이 많아졌다. “미국 국경에서 벌어지는 마약 카르텔에 대한 비밀 작전을 다루고 있지만, 이 영화는 결국 문제 해결 상황에 부딪힌 모든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에 대한 이야기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말한 1편의 핵심 구도에서 이상주의자가 탈락하고 현실주의자들만 남아 속편을 만든 셈이다.
1편의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와 작곡가 요한 요한손도 빠졌다.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가 오른 오스카상 후보 3개 부문 가운데 두 개가 촬영상과 음악상이었건만, 로저 디킨스는 〈블레이드 러너 2049〉에 합류했고 요한 요한손은 지난 2월 갑자기 명을 달리했다.
여전히 힘센 테일러 셰리던의 스토리텔링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속편을 기다렸다. 이렇게 약점이 많은데도 나는 〈시카리오:데이 오브 솔다도〉가 재밌었다. 이번에도 역시 각본가 테일러 셰리던이 쓴 이야기라서 그랬을 터이다. 관객의 멱살을 잡아끌고 끝까지 간 1편의 추진력은 드니 빌뇌브의 공일지 몰라도, 애초에 관객의 멱살을 힘껏 잡아채 서서히 숨통을 옥죄던 크고 억센 손은 테일러 셰리던의 것이었으니까.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에 이어 〈로스트 인 더스트〉(2016)의 시나리오를 쓰고 〈윈드 리버〉(2016)를 직접 쓰고 연출하며 이른바 ‘국경 3부작’을 완성한 그의 스토리텔링은 여전히 힘이 세다.
이탈리아 감독 스테파노 솔리마의 연출도 나는 좋았다. 전작 〈수부라 게이트〉(2015)의 열혈 팬인 나는, 범죄 스릴러 장르를 다루는 그의 노련함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에밀리 블런트가 빠진 자리는 어쩔 수 없이 빈자리로 남았다. 그와 함께 ‘체험’했던 낯설고 두려운 세계를, 이제는 한발 떨어져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세밀한 심리 드라마’가 속편의 국경을 넘어오지 못했으니, 좋든 싫든 이제는 ‘냉정한 범죄 드라마’의 등만 보고 따라갈밖에. 누구는 그래서 실망하겠지만 나는 다행히 그것도 좋아하게 되었다. 모든 면에서 대단했던 1편만은 못하지만, 이미 예고된 마지막 3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충분히 매력적인 2편이다. 누가 뭐래도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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