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3월15일 스웨덴 의회에서 개정 법안 하나가 통과됐다. 찬성 259표, 반대 6표, 기권 3표. 의회를 구성하던 스웨덴 4개 정당 모두가 이 법안을 지지했다. 이 법은 부모와 자녀 간의 법적 관계를 다루는 스웨덴 부모법 개정안(자녀 체벌금지법)이다. 기존 법안에서 제6장 제1절 조항을 신설했다. 아동의 법적 지위를 새로 규정한 것이다. “아이들은 돌봄, 안전 및 좋은 양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어린이는 인격과 개성을 존중받아야 하며 체벌을 포함해 어떤 모욕적인 대우를 받으면 안 된다.” 이때부터 스웨덴에서는 가정을 포함한 모든 곳에서의 아동 체벌이 금지됐다. 스웨덴에서는 ‘사랑의 매’도 불법이다.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가정 내 자녀 체벌을 금지한 국가이다. 당시 이웃 유럽 국가들은 경악했다. ‘스웨덴이 미쳤다’라는 신문 기사가 대서특필되고 ‘무모한 실험’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하지만 약 40년이 지난 지금, 스웨덴의 길을 따른 국가는 세계 53개국에 이른다(‘Global Initiative to End All Corporal Punishment of Children’ 추산·아래 그래프 참조). 핀란드(1983년)와 노르웨이(1987년) 등 북유럽 국가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페루(2015년), 몽골(2016년), 리투아니아(2017년)도 아동 체벌 금지를 법에 명문화했다. 한국은 이 53개국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국제 상식이 된 ‘스웨덴 실험’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스웨덴도 다른 나라들처럼 체벌 문화가 있는 국가였다. 1734년 스웨덴 법에 따르면 아버지가 자녀를 때려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그 처벌은 아내를 때려죽인 경우보다 약했다. 집안 내 규율을 유지한다는 명분의 ‘가정 내 매질(domestic-flogging)’은 노인과 하인뿐 아니라 아내와 자녀들에게도 허용됐다. 1920년 스웨덴에서 노예 체벌이 금지됐을 때에도 자녀 체벌은 금지되지 않았다.
변화는 학교에서 먼저 시작됐다. 1918년 학교 학생들에 대한 체벌 금지가 처음 도입됐다. 고등학교 고학년생에게만 국한되던 이 조항은 차츰 확대돼 1962년 전체 학생에게 적용됐다. 1970년대 아이가 부모에게 체벌받다 목숨을 잃은 몇몇 사건이 여론을 뒤흔들자 1977년 정부는 아동권리위원회를 구성해 사건 조사와 대안 모색에 나섰다. 1978년 가정 내 체벌에 관한 정부 보고서를 발표하고 의회에 체벌 금지 입법안을 냈다. 그 법안이 바로 1979년 3월 세계 최초로 통과된 자녀 체벌금지법이다.
당시 이 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의원 6명은 “모든 부모가 범죄자가 되고 가정이 해체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체벌금지법 시행 후 아동학대 신고량은 늘었지만 부모 기소율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를 부모로부터 격리해 보호시설로 보내는 사례도 급증하지 않았다. 법의 목적이 ‘처벌’이 아닌 ‘인식 전환’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스웨덴 법무장관은 이 법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이 법은 부모들이 아이를 키울 때 어떤 종류의 폭력도 사용하지 않도록 교육적 지원을 통해 부모를 설득하기 위함이다. 부모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위한 정보 제공과 교육이 형벌 제재에 의존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이 법규에 관한 정보를 줘서 이 규정을 현실화하는 게 중요하다.”
우유 팩에 적힌 체벌금지법
‘규정을 현실화’하기 위해 스웨덴 정부가 선택한 방법은 대대적인 홍보 캠페인이었다. 텔레비전·라디오 광고, 포스터, 팸플릿 등 당시 가능했던 모든 수단이 동원됐다. 매일 아침 각 가정의 식탁 위에 오르는 우유 팩에 체벌금지법의 목적과 내용을 알리는 만화가 실렸고, “당신은 체벌 없이 성공적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브로슈어가 스웨덴어·영어·독일어·스페인어·프랑스어로 번역돼 350만 가정에 보급됐다. 동네마다 양육지원센터가 설치되었으며 아이 키우기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이 제공되었다. “폭력, 위협, 협박을 사용하지 않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자녀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성인의 책임이다. 그리고 비폭력적인 육아 실천을 위한 조건을 마련하고, 부모가 아이의 좋은 모델이 되기 위한 에너지와 시간을 갖도록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체벌 폐지 후 35년〉 보고서, 2014)”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웨덴 정부는 법 시행 후 주기적으로 체벌 실태와 부모들의 인식 변화를 추적하는 장·단기 연구를 벌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법이 도입되고 2년 뒤 90% 이상의 스웨덴 부모들이 자녀 체벌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자녀를 양육하며 체벌을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부모 비율은 1960년대 절반 이상이었지만 2010년대에는 10% 남짓으로 떨어졌다. 인식 전환은 행동의 변화를 일으켰다. 자녀에게 체벌을 사용한 부모의 비율도 같은 기간 90% 이상에서 10%가량으로 감소했다.
스웨덴의 경험에는 물론 특수성이 있다. 페르닐라 레비네르 스톡홀름 대학 법학과 교수는 “체벌금지법이 도입될 당시 스웨덴이 매우 높은 수준의 복지사회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경제 상황이 좋았고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 정부와 정치인, 전문가에 대한 신뢰 수준도 높았다. 레비네르 교수는 “만약 (복지 시스템이 일부 무너지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약화된) 지금 그 법이 제안됐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국가에서 온 이민자 가족과의 문화 충돌 현상이나 자녀 체벌이 일종의 ‘터부’가 돼 오히려 은폐되기 쉽다는 점도 최근 스웨덴에서 떠오른 고민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아이를 때려서 가르쳐도 되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과는 상관이 없다. 그 논쟁은 이미 1970년대 후반 스웨덴 사회에서 결론이 났다. 자녀 체벌 금지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던 1978년,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로 유명한 ‘국민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독일 도서 무역 평화상 수락 연설에서 소개한 일화는 아직까지 스웨덴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다.
“체벌이 아이 양육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던 젊은 엄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어린 아들이 나쁜 일을 했기 때문에 그녀는 아이에게 숲에 가서 회초리로 사용할 자작나무를 찾으라고 했습니다. 오랜 시간 뒤 아들은 손에 돌멩이 하나를 든 채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자작나무는 찾을 수 없지만 여기 엄마가 저에게 던질 수 있는 돌이 있어요.’ 아들은 이렇게 생각했겠지요. ‘엄마는 내가 상처입기를 원하니 이 돌멩이를 써도 되겠지.’ 엄마와 아들은 서로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이후 엄마는 그 돌을 주방 선반에 올려두고 바로 그 순간에 만들었던 평생의 약속을 상기합니다. ‘폭력은 절대 안 됩니다(Never violence)!’”
득보다 실이 큰 ‘사랑의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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