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버스터미널에서 태안군 보건의료원까지 택시 요금은 4100원이다. 택시 기사 말처럼 도로가 막힐 일 없는 ‘시골잉께’ 새벽에 타든, 한낮에 타든 꼭 4100원이다. 가는 길 왼편에는 한국서부발전 본사가 있다.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지난해 12월11일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빈소가 태안군 보건의료원 장례식장 203호에 있었다.
유가족은 곧바로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태안 빈소와 서울 국회를 오가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의원들에게 호소했다. 김씨의 투쟁으로 28년 동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법이 통과됐다. 하지만 정작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동료들의 정규직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약 없는 발인 날짜는 하얀 종이로 가려졌다.
김씨는 지난 1월22일 빈소를 서울로 옮겼다. 동시에 유가족이 전권을 위임한 시민대책위원회 대표 6명이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기자회견에서 어머니 김미숙씨는 말했다. “절박함 하나로 차가운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가 왜 서울까지 왔는지, 왜 밥을 굶는지 그 이유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빈소가 차려졌다. 발인 날짜는 여전히 빈칸으로 남았다. 닷새 뒤 49재가 지나도 진상규명과 정규직화에 대한 합의는 나오지 않았다. ‘설 전에 장례를 치르고 싶다’던 어머니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설 당일 2월5일 아침, 늦게나마 시민대책위원회와 정부·여당이 합의한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후속대책’이 나왔다. 유가족의 ‘진상규명’ 요구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리는 것으로, ‘정규직화’ 요구는 노사와 전문가로 이루어진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발전소에 석탄을 공급하고, 발전이 끝난 뒤 남은 부산물을 처리하는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 노동자 2400여 명부터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이 이뤄진다. 발전소 설비를 수리하는 경상정비 분야 노동자 3000여 명은 아직 대상이 확정되지 않아, 논의는 계속된다. 합의문을 본 어머니 김미숙씨가 말했다. “장례는 치르지만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진상규명이 잘 이루어지는지, 정규직화는 잘 되어가는지 끝까지 지켜볼 겁니다.”
김씨를 비롯한 유가족은 설 연휴가 끝난 2월7일부터 장례 절차를 밟았다. ‘9일 4:00 벽제장-모란공원.’ 장례식장 안내판에 발인 날짜 한 줄이 적히기까지 58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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