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석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의 전문 분야는 ‘산업생태계’다. 여러 산업의 주요 기업들이 국내외의 다른 업체와 어떻게 거래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어떤지, 이런 요소들이 한국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데이터 기반 연구’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남 박사는 최근 거론된 경기도 일부 도시의 서울 편입이나 광역급행철도(GTX) 연장 등의 방안을 매우 당혹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이런 계획들이 실현된다면 동남권 제조업의 몰락이 더욱 촉진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다른 지역의 산업과 인력을 끌어당기는 수도권의 구심력이 강화될 것이다. 정부가 국토의 불균형 발전을 부추기기보다는 ‘에너지 체제 전환’ 등 동남권은 물론 한국 경제 전반의 진로와 관련된 의제들을 신속히 추진해줬으면 한다.”
‘에너지 체제 전환’이 한국 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인가.
앞으로 세계경제의 향방을 결정할 키워드는 ‘탈탄소화’ ‘디지털 전환’ ‘에너지 체제 전환’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전환은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 그 핵심 소재인 반도체 양산에서 한국은 압도적인 국제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탈탄소화 부문에서도 한국이 핵심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한국 조선산업은 친환경 선박 구축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과시한다. 철강 부문에서도 포스코가 수소 환원 제철(화석연료가 아니라 수소로 철을 생산하는 혁신 기술) 등 탈탄소 철강 부문의 기술적 패러다임을 대부분 결정한다. 그러나 에너지 체제 전환에서는 많이 뒤졌다. 한국은 전기의 65% 정도를 화석연료로 조달한다. 원자력은 25~30% 정도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급속히 늘리지 못하면, 성장동력인 수출 부문에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다.
재생에너지와 수출이 무슨 관계인가.
화석연료를 태워서 전기를 만들면 탄소가 배출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태양열·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해당 제품의 국제 거래를 어렵게 만드는 자율 규제(RE100, 재생에너지 100% 사용)나 무역장벽(CBAM)들이 세워지고 있다. 다만 ‘원자력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는 국제규범이 확정되지 않았다. 원자력이 탈탄소 전원으로 인정되더라도 화석연료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이를 통해 생산된 제품은 수출에 제약이 따른다. 이 경우, 한국 기업들은 국내 생산 비중을 줄이고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들에 큰 리스크다. 유럽이나 미국은 이미 타임 테이블까지 내놓았을 정도로 신속하게 대처하고 있다. 중국은 원자력발전소를 많이 짓고 있지만 동시에 전 세계 풍력발전의 3분의 1을 점유하고 있는, 이 부문의 강국이다. 한국에선 논의만 분분하다.
결국 교역 문제인가.
인구 추이도 한국의 교역에 대단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제조업 노동력의 80%가 40대 이하였다. 지금은 제조업 노동력에서 45세 이상 비중이 50%쯤 된다. 이 집단이 10년 뒤엔 55세 이상이 된다. 이런 추세로 노동력 공급이 줄어들면 국내 임금의 큰 폭 상승이 불가피하다. 교역에서 불리해진다. 앞으로 20년 사이에 한국 경제의 많은 부문이 인구와 에너지 체제 전환의 추이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에너지, 인구 등에서 국내 생산조건이 불리해진다고 한국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지를 옮길까.
한국 기업들은 기동력이 워낙 뛰어나다. 한 지역의 생산라인을 다른 지역으로 삽시간에 옮기는 능력을 자랑한다. 미국의 경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북미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대해서만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지급하는 조항으로 다른 나라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세우도록 사실상 강제함) 덕분에 해외에서 엄청나게 투자를 받았다. 미국에 1억 달러 이상 투자한 나라가 20개국인데, 지난해의 압도적 1위가 바로 한국이었다. 재생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신속히 구축하지 못하면, 포스코 같은 회사가 생산설비를 해외로 이전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철강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 중 하나다.
더욱이 지금까지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는 바이백(buy-back) 형태가 많았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 자회사를 만들어 부품을 생산하도록 한 뒤 그 부품을 수입해서 최종재를 만드는 식이다. 즉, 국내 생산과 해외투자가 보완관계였다. IRA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들이 북미 내에 전체 공급사슬을 구축하도록 규정하기 때문이다. 과거 유럽과 미국은 본국에 본사 기능만 남기고 생산 기능을 해외로 내보내면서 제조업 경쟁력이 크게 약해진 바 있다.
한국에서 에너지 체제 전환이 지체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국토가 좁다. 환경운동가들은 재생에너지 전기의 공급가격이 원자력보다 싸다고 하는데 그것은 미국이나 중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 나라들은 미국 워싱턴 정도 규모의 면적에 태양광 설비를 마구 깔 만큼 넓다. 그래서 재생에너지 전기의 단가를 낮출 수 있다. 정치적 문제도 만만치 않다. 주민들이 반대하면 지자체에서도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소를 허가하기 어렵다. 감사원이 수천억 원 규모의 ‘태양광 비리(문재인 정부 시절 신에너지 사업)’를 적발했다는데, 그걸 비리로 단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태양광의 경우, 일단 발전시설을 만들어놓으면 그다음부터는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은행들이 허가만 떨어지면 사업비의 90%까지 빌려준다. 이를 ‘비정상적 대출’로 보는 모양인데, 아무튼 지금은 은행들이 재생에너지 부문에 대한 대출을 삼가면서 설비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재생에너지 산업은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도 오랜 기간이 지나야 수익이 나온다. 그래서 RPS(한국전력공사 등 대형 발전사업자들이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전기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 전기’로 채우도록 의무화) 같은 제도가 존재하는데 이 또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이야기인가.
위기의식을 못 느끼는 것 같다. 더욱이 원자력이 국제규범상 재생에너지로 인정될 것이라 믿으며 ‘천천히 해도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 문제가 한국에서 너무 정치화되어 ‘원전파 대 재생에너지파’ 구도가 형성된 것도 에너지 전환 지체의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반드시 서로를 배제할 필요는 없다. 재생에너지 공급 체제를 본격 구축한다고 해도 전기 공급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기저 전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일본과 독일은 전환기의 기저 전력으로 LNG를, 프랑스는 원전을 채택했다.
더욱이 재생에너지 사업은 주로 전남·경남·울산 등 남부권에서 진행되고 있다. 해당 지역의 일자리와 경기 활성화 등에 중요하다. 특히 해상풍력 산업은 조선업과도 기술적 연관성이 높다. 정부가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에너지 전환 사업을 강력히 촉진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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