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라 마드레 께 미 빠리오(나를 낳으신 어머니에게 축복을).” 지난 3월7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낙태 반대 시위에서 한 시위 군중이 펼쳐든 플래카드 문구다. 이날 수도 마드리드를 비롯, 스페인의 4개 도시에서 시민 수만명이 거리에 나와 낙태 반대를 외쳤다.

시위가 벌어진 까닭은 올해부터 스페인에서 낙태가 전면 허용되기 때문이다. 스페인 정부는 지난해 낙태를 허용하는 새 법안을 내 놓았고 2월말 스페인 상원이 이를 승인했다. 이 낙태 허용법은 7월부터 발효된다. 새 법에 따르면 산모는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제한 없이 할 수 있고 의사 2명이 소견을 첨부하면 22주까지 낙태가 가능하다. 16~17세 미성년자도 부모 동의 없이 낙태가 허용된다. 지금까지 스페인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거나 산모의 건강 상태가 위험한 경우에 한해서만 낙태를 허용해왔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은 유럽에서 낙태 조건이 가장 까다로운 국가 중 하나였다. 진보적 성향인  사회당 호세 사파테로 정권의 주도 아래, 결국 스페인도 낙태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유럽식 기준을 따르게 됐다.

 

 

ⓒ시사IN

해외에서 낙태 문제는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주요 지표다. 종종 미국에서 낙태를 찬성하냐 마느냐는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의 핵심 이슈가 되곤 한다. 하지만 낙태 찬반 여부를 정치 쟁점화하고 있는 선진국의 경우 한국보다 낙태 조건이 더 엄격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보다 낙태 조건이 까다로운 나라는 아일랜드와 몰타 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서도 한국보다 낙태하기 어려운 나라는 아일랜드와 멕시코뿐이다. 미국은 1973년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합법화했다. 루이지애나·사우스다코타·미시시피·콜로라도·노스다코타 등 보수적인 주에서 낙태를 불법화했다가 연방법과 충돌을 빚는가 하면 낙태 가능 임신 기간, 부모 동의 여부 등을 놓고 심심치 않게 정치적 대결이 벌어진다. 하지만 한국보다 낙태가 어렵지는 않다.

낙태 합법화=선진국은 아냐

〈시사IN〉은 200개국의 낙태 관련 법률을 비교해 세계 낙태 합법화 지도를 만들어봤다(그림 참조). 유엔경제사회국(DESA) 인구정책부가 2007년 펴낸 자료와 추가 조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해 만들었다. 가장 낙태가 자유로운 국가를 1등급으로, 낙태가 전면 금지된 나라를 8등급으로 분류해 색깔을 칠했다.

이 지도상에서 한국은 4등급으로  중간 정도에 놓인다. 순위를 매기자면, 가장 낙태가 자유로운 국가를 1위로 했을 때 한국의 낙태 자유도는 100위권이다.  

한국의 합법적 낙태 조건을 국제 기준과 비교할 때는 조심해서 자료를 볼 필요가 있다. 국제적으로 낙태 조건을 비교할 때는 흔히 7개 기준을 적용한다. 1.임부의 생명이 위독한가. 2.임부가 육체적으로 위험한가. 3.임부의 정신적 건강이 위험한가. 4.성폭행을 당해 임신했거나 근친 상간의 경우인가. 5.기형 등 태아에 이상이 있는가. 6.사회경제적인 이유로 임부가 아이를 기르기 힘든가. 7.임부가 낙태를 원하고 있는가.

〈시사IN〉이 조사한 200개국 가운데 7번 조건만으로도 낙태를 허용하는 나라는 56개국에 이른다. 7번 조건만으로는 낙태를 허용하지 않지만, 6번 조건이 같이 충족되면 낙태를 허용하는 나라는 13개국이다.

즉 세계 69개국은 임부가 어리다거나, 가난하거나 일을 해야 하거나 주변의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낙태를 할 수 있다. 200개 국가의 34%, 선진국(유엔 기준-More Developed Region)의 78%가 사회·경제적인 이유의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2007년도 유엔 자료에는 한국은 5번 조건, 즉 장애를 가진 태아(Foetal Impairment)를 임신했을 때 낙태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 법률에는 산모 또는 아기의 아버지가 유전학적인 장애나 전염병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한해 낙태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모자보건법 제14조). 기형아 낙태는 불법이다. 한국은 1~4번 조건에 한해 낙태를 할 수 있는 나라라고 보는 것이 옳다. 4등급이다. 한국과 비슷한 낙태 합법 조건을 가진 나라로는 카메룬·브라질·수단·아르헨티나·에콰도르·태국·볼리비아·파나마·우루과이 등이 있다.

세계 낙태 합법화 지도를 보노라면 경제가 발전하고 인권 수준이 높은 나라는 낙태를 합법화한다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낙태를 전면 합법화했으면서도 인권 수준이 열악한 나라가 꽤 많다. 중국·북한·베트남·쿠바·네팔·벨라루스 등이 그렇다. 중국이 낙태를 합법화한 것은 산아제한 정책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어떤 예외 조건도 없이 낙태를 불법화하고 있는 나라는 5개 국가뿐이다. 칠레·엘살바도르·몰타·니카라과·바티칸 시티 등이 그렇다. 이들 나라는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도인 국가다. 몰타 헌법은 로마 가톨릭을 국교로 정해놓고 있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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