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자연미 넘치는 ‘먼데도’ 김민수 (섬 여행가) 섬은 무척 한적해 보였다. 몇몇 가구를 제외하고 주민의 대부분은 겨울을 나기 위해 육지로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만재도는 참 먼 섬이다. 오죽했으면 섬의 옛 이름이 ‘먼데도’였을까? 2박3일 가거도에서 거친 바람을 맞고 배낭을 멘 채 내내 걸었던 탓일까? 기력이 빠지고 몸살 기운도 느껴졌다. 게다가 비 소식까지 있다고 하니 선뜻 야영에 나설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선착장을 지나는 아주머니께 물었다. “혹시 민박을 하는 집이 있을까요?” 아주머니는 따라오라고 했고 곧 그이의 집으로 안내했다. “지금 섬에서 민박하는 집은 ... 억겁을 이어온 대자연의 파노라마 김민수 (섬 여행가) 가거도에는 총 3개 마을이 있다. 항구를 둘러싸고 행정시설과 학교, 민박 식당이 밀집해 있는 1구 대리마을, 섬등반도가 있는 2구 항리마을, 등대가 가까운 3구 대풍리 마을이 그것이다. 가거도의 면적은 9㎢ 정도로 여의도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이지만 중심에 해발 639m의 독실산이 버티고 있어서 마을 간의 이동이나 탐방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독실산은 한라산을 제외하고 울릉도 성인봉 다음으로 높은 섬 산이다. 대중교통이 없는 가거도에서 이동수단은 민박 차량이나 낚싯배, 그렇지 않으면 도보에 의존해야 한다. 가거도는 탐방 코스를 ... 섬이 ‘선생’인 이유를 아시나요 홍경찬 (여행작가) 〈밤이 선생이다〉의 저자, 고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목포에서 태어났지만 1950년부터 7년간 비금도 자항마을에서 살았다. 이 섬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다시 뭍으로 향했다. 그는 유명을 달리하기 전 비금도를 진정한 고향이라 불렀다. 부모가 살았던 곳이기도 했지만, 경기도 포천군 지현리에 서재가 있었고 이 인근 소나무 수목장에 안장됐음에도 이유는 분명했다. 신안군청 이재근 학예연구사는 “비금초등학교 인근 자항마을 동네 주민들이 전하기로, 황현산 선생님이 글을 잘 지었고, 공부를 잘한 기억이 난다. 동네 아이들과 해변에서 잘 놀았고... 역사와 풍광이 어우러져 노닐다 홍경찬 (여행작가) 보길도에서 악연을 이어간 윤선도와 송시열. 두 정치인은 글로써 영원히 보길도에 남아 있다. 윤선도는 명작 〈어부사시사〉를, 송시열은 바위에 새긴 글이라지만 선명하게 흔적을 남겼다. 섬은 스승이다. 이들은 글을 남기고 정자를 짓고 풍월을 읊었고 후대들은 이를 활용할 줄 안다. 윤선도·송시열이 꿈꾸던 삶이 낚싯대 드리우고 세월을 낚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죽어서 관 속에 묻히기보다, 머리를 진흙에 묻고 꼬리를 흔들고 살더라도 대단히 낙천적인 삶을 보길도에서 실현한 셈이다. 섬에서 할 수 있는 것이 한양에서 해왔던 삶이었음에도 불구... 39년 전 광주 그날의 기록 정희상 기자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77)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지켜본 산증인이다. 당시 광주 대동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 중이던 그는, 5월18일부터 항쟁에 직접 가담해 5월27일 전남도청에서 시민군이 학살되기까지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당시 계엄 당국은 나를 전남대, 조선대 시위 주동 학생들을 의식화시킨 불온 교사로 낙인찍었다. 그래서 항쟁 지도부로 나서지 않고 시내 골목을 누비며 공수부대의 만행을 샅샅이 보고 듣고 메모했다.” 5월18일 계엄군인 공수대원들은 시내 곳곳에서 닥치는 대로 학생과 시민을 대검으로 찌... 단단한 완성체 ‘곰슬기’의 힘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퍼포먼스를 동반하는 다른 대중음악과 케이팝이 은근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지점이 있다. 카메라의 존재다. 케이팝은 공연장 무대보다는 음악방송에서 태어났고, 아이돌들은 방송국 카메라와 효과적으로 대화하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레드벨벳의 뮤직비디오에는 지긋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장면이 많은데, 이를 언제나 뚫고 나오는 건 슬기의 시선이다. 다정하거나 호기심 어린 표정일 때도 있고, 단호하고 매서울 때도 있다. ‘Bad Boy’에서 (평양 공연에선 삭제된 것으로도 유명한) 샷건을 쏘는 장면 등을 담당하는 것은 그의 눈빛... 재미있고 유려한 대선 출마 선언문 김동인 기자 선거철을 앞둔 정치인들은 앞다퉈 책을 출간한다. 대개 인생사를 눌러 담은 자서전이거나 정치적 비전을 밝히는 에세이다. 정치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불가피하게 이런 정치인들의 책을 챙겨봐야 했다. 고난과 역경, 내 고향(지역구)에 대한 사랑. 당연히 열에 여덟은 ‘핵노잼’이다. 안 팔리는 건 둘째 치고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정치적 수사에 ‘사람 냄새’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정작 유권자인 우리 주변 삶의 이야기가 빠져 있다. 그들의 ‘비전’이라는 게 딱히 논리적이지도 않다. 정책은 두루뭉술하고 곁들이는 데이터는 곧잘 빈틈을 보... 두 주인공이 알려준 그림책을 보는 기쁨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한 소녀가 수족관 진열대 앞에 서 있습니다. 수족관마다 알록달록 예쁜 물고기가 많습니다. 소녀가 고른 건, 작은 거북이입니다. 집에 돌아온 소녀는 거북이를 앞에 두고 거북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거북이에게 인형 친구들도 소개해줍니다. 여름이 찾아옵니다. 소녀가 반소매 옷을 입었습니다. 소녀는 거북이에게 꽃을 선물하기도 하고 춤도 춰주고 노래도 불러줍니다. 어느새 겨울이 되었습니다. 소녀는 털모자를 쓰고 패딩 점퍼를 입었습니다. 소녀는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수족관 앞에 서 있습니다. 수족관 속 거북이에게 이야기보따리를 늘어놓고 있... 민법 779조는 오늘 파산했다 장일호 기자 한국의 ‘정상 가족’은 때로 국제협약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 제37조 1항에 따라 ‘외교관의 세대를 구성하는 그의 가족’은 외교관과 동등한 특권과 면제를 누릴 수 있다. 다만 가족에 해당하는 범위는 접수국의 결정사항이다. 한국은 ‘대한민국 주재 외국 공관원 등을 위한 신분증 발급과 관리에 관한 규칙’ 제2조 2항에서 동반 가족의 범위를 법적 혼인관계의 배우자, 성년 나이 미만의 미혼 동거 자녀, 60세 이상 부모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 배우자의 경우 단서가 붙는다. ‘대한민국 법률에 위배되거나 선량한 풍 시사IN 제610호 - 당신이 노무현입니다 고제규 편집국장 • 편집국장의 편지 REVIEW IN • 독자IN/독자와의 수다·퀴즈IN • 말말말·이 주의 그래픽 뉴스 • 기자들의 시선 COVER STORY IN 노무현의 꿈이 살아 숨 쉬고 있다 2008년 이래 봉하마을을 다녀간 사람은 980만명, 해마다 90만명 가까이 방문했다. 서거한 지 10년이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은 무엇일까. • 그가 떠나고 10년 '통합 정신'에 주목한다 • 숫자로 읽는 노무현 대통령 • "너 죽고 나 살기 식 정치 바꾸려 했다" • '경포대'라고? 천만의 말씀! • 노무현이 남... 망가진 부모 대체할 새 공동체 찾자 하미나 (페미당당 활동가) 며칠 전 엄마 생신이었다. 각각 흩어져 살던 오빠와 나는 본가로 부모를 뵈러 갔다. 오랜만에 네 식구가 모여 두런두런 얘기하며 고기를 구웠다. 엄마는 고기 한 점 먹기도 전에 말을 꺼냈다. “너희 아빠와 이제 이혼하고 싶어.” 오빠는 반색했다. 자기가 아빠를 닮을까 봐 두렵다며 이혼 과정을 적극 돕겠다고 했다. 나 역시 동조했다. “그래 엄마. 이제 아빠로부터 해방되어보자.” 내 말에 그녀는 단호했다. “해방은 예전부터 스스로 했어. 이제 절차 문제만 남았을 뿐이지.”‘행복한 가정은 다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족은 다 제각각의 이유 나는 채치수에게 맞서고 싶었다 김원영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하자 친구들이 모두 말렸다. 우리 학년에는 외모, 책임감,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슬램덩크〉의 채치수를 닮은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 욕심에 회장 출마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열다섯 살에 처음 구매한 휠체어로 특수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중학교 과정을 마친 후 우여곡절 끝에 2000년 일반 고교에 진학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애가 없는 아이들 990여 명과 교복을 입고 함께 학교생활을 시작하자, 일상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어떤 종류의 어려움을 돌파하는 방법 중 하나는 아예 더 어려운 일에 맞서보는 걷다 보면 안다 이 섬의 매력을 정태겸 (여행작가) 여수, 참 멀다. 서울을 기준으로 잡았을 때 얘기다. 물론 광주나 목포, 순천, 창원 등지에 사는 분에게는 가까울지 모르겠으나, 서울 사는 사람에게 여수 가는 길은 그리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물론 KTX도 다니고 하루에도 수차례 고속버스가 오가니 무척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킬로미터로 환산해서 표기하는 거리가 줄어든 것은 아니니 서울에서 멀다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굳이 왜 하필 그 먼 여수까지?”라고 묻는다면, “여수 밤바다보다 중독성 강한 여수의 섬이 거기 있어서”라고 답을 드리겠다. 여수의 섬은... 자꾸 아른거리네 노랗고 파란 그 풍경 정태겸 (여행작가) 길 따라 땅끝에서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완도가 나온다. 국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청정 해역을 가진 섬. 이제는 다리가 연결돼 육지와 섬의 경계가 모호해진 완도는 작지만 각자의 아름다움을 가진 부속 섬을 여럿 거느리고 있다. 완도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로 50분을 타고 들어가는 청산도도 그중 하나다. 봄이면 청산도로 향하는 발길이 부쩍 는다. 아름답기로 말하자면 그 어느 곳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풍광이 펼쳐지기 때문. 청산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꼭 다시 가고 싶은 섬”이라고 말한다. 청산도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던 지인에게 물었다. ... 꽃길만 걷게 해줄게 박찬은 (〈매경 시티라이프〉 기자) 하화도는 늦봄에 가장 걷기 좋다. ‘아래꽃섬’이라,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을 붙인 이는 누구일까. ‘아래’ ‘꽃’ ‘섬’. 뜯어놔도 모두 겸손하고 곱다. 여수의 ‘365개 생일섬(생일과 지역 섬을 짝지은 것)’ 가운데 해마다 동백과 섬모초, 진달래가 몸을 뒤덮어 많은 이들을 황홀하게 하는 하화도를 걸었다. 배를 대기 좋은 항구가 있고, 섬만이 지닌 고즈넉함에 폭 안기고 싶은 꽃섬이다. 꽃길만 걷다 보면, 시끄러운 세상살이쯤 한나절 잊히겠지. 여수신항이 있는 돌산도 방향이 남해를 오목하게 끌어안고 있는 왼팔이라면, 하화도는 그 오... ‘쥬라기공원’ 찍고 막걸리 익는 섬으로 박찬은 (〈매경 시티라이프〉 기자) ‘이리 낭(狼)’자를 쓰지만 ‘물결 낭(浪)’자를 써야 할 듯 낭만 가득한 섬 낭도는 서해 바다에 띄운 연서 같았다. ‘사랑이 맺어지는 낭도’라는 카피에 한번 웃으며 배에서 내리면 ‘어서 오세요. 여기는 사랑과 낭만이 있는 섬 낭도입니다’라고 쓰인 표지판이 객들을 맞는다. 낙원은 쉽게 지루해지지만 조약돌의 ‘자그르르르’ 소리가 정겨운 섬은 늘 새로운 풍경이다. 100년 된 막걸리가 큰 독 안에서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낭도와, 한때는 공룡이 걸었을 섬, 사도를 찾았다. ‘싸목싸목’은 ‘천천히’를 뜻하는 전라도 방언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이야기 드러내야 ‘진짜 사진’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한가? 사진을 찍고 나누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쉬워진 시대에 우리는 산다. SNS에 하루 포스팅되는 사진만도 1억8000만 장에 달한다. 아름다운 풍경과 풍성한 먹을거리, 이국적인 모습들이 넘쳐난다.SNS 사진을 들여다보노라면 월터 리프먼이 자신의 저서 〈여론(Public Opinion)〉에서 ‘시민들은 그들이 스스로 머릿속에 만드는 그림(the pictures in our head)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이 말은, 시민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을 통해 세상에 대한 이미지를 갖는 게 아니 5·18 기획 기사에 ‘멈춤’은 없다 [취재 뒷담화] 고제규 편집국장 ‘특종 기자’ ‘주진우 사수’ ‘돌고 돌고’ ‘쓰고 또 쓰고’. 정희상 기자에게 붙은 별명. 원을 그리며 제자리를 돌고 돌며 전화 취재를 합니다. 한번 물면 놓지 않고 계속 씁니다. ‘괄호 속 현대사’를 진행하며 5·18 진압군 출신 이경남 목사를 인터뷰한 정 기자입니다. 진압군 출신 이경남 목사의 공수대원들의 성폭행 증언이 상당히 구체적인데? 이 목사가 1999년에 쓴 ‘5월의 회고-어느 특전병사의 기록’ 수기에는 없는 내용이죠. 1980년 5월19일 밤 공수대원들이 당겨진 통행금지 시간에 맞춰 순찰을 돌다가 주로 여학생들을... 엄마, 아빠가 아니어도 괜찮아 임지영 기자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철없다는 시선과 팔자 좋다는 비아냥.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자 제각각 육아로 바빴다. 억지로 동네 친구를 만들었지만 온종일 아이 얘기만 듣다가 왔다. 대화란 주고받는 것인데 늘 청자였다. 이수희씨(41)와 이용원씨(45) 부부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도 사는 지역의 학군과 그 학교의 교사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그만큼 무용한 만남이었다.이수희씨는 ‘과업 중심형’ 인간이었다. 생애 주기별 과업을 무난히 해결해왔다. 4년제 대학을 나와 취직했고 부모 도움 없이 독립했다. 한 우린 같이 살아요 그래서 가족이죠 임지영 기자 2016년 11월 정혁씨(27)와 김찬휘씨(26)가 서울 홍대 앞에서 처음으로 마주쳤다. 각각 진해와 광주에서 서울로 놀러온 참이었다. 정씨가 김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물었다. 알려주었는데 연락이 안 왔다. 김씨가 먼저 연락했다. 이후 하루에 서너 시간씩 통화하고 채팅을 했다. 김씨가 보기에 정혁씨에게는 반전 매력이 있었다. 어딘지 불량스러워 보였는데 순수한 면이 있달까. 두 사람은 자라온 환경도 비슷했다. 김씨는 대학 근처에서 자취 중이었고 정씨는 직업군인이었다. 두 시간 반 거리였다. 주말에 광주에서 데이트를 했다. 정씨가 전역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