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국정원이 서울 내곡동 청사에 장애인을 초청해 청사 개방 행사를 하는 모습.

“노무현 정부가 국정원 개혁을 제대로 마무리해주기 기대했는데 결국 김만복 원장 사건이 터져 착잡하다. 어차피 이명박 당선자가 칼을 잡았으니 정보기관을 제대로 살려내야 할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국정원 고위 간부를 지낸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정권 초기 탈정치화·탈권력화를 표방한 국정원 개혁은 나름으로 성과가 있었다. 지역 간, 세대 간 인사차별 해소책도 어느 정도 정착했고, 대공 안보 분야도 ‘간첩을 키워서 잡는’ 게 아니라 ‘국민이 간첩 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쪽으로 마인드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대공수사국이 안보수사국으로 명칭을 바꾼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나 5000여 국정원 직원 속은 지금 부글부글 끓는다. 최근 김 원장의 돌출행동과 ‘보신성’ 문서 유출 때문만은 아니다. 내부 조직을 동맥경화에 빠뜨린 인사 난맥상은 국정원의 사기 저하를 부르는 가장 큰 주범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 초대 고영구 원장 때부터 시작된 일이지만 김만복 원장이 국정원 내 실세로 등장한 뒤 극에 달해 대다수 국정원 직원의 큰 불만을 샀다.

노무현 정부는 취임 초 국정원 3급 이상 고위직의 직급 정년을 줄이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국정원은 과거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정부 다른 부처에 비해 2, 3급 고위직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참여정부 들어 이를 다른 부처와 맞추겠다며 직급 정년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미 2·3급 이상 승진해 있는 간부는 대상에서 제외하고, 새로 승진을 기다리는 후진 세대부터 이 제도를 적용한 결과 진로가 막혀 극심한 인사 적체 상태에 빠졌다. 현재 4급 승진을 기다리는 40대 초·중반 5급 사무관만도 380여 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인사 적체 속에 직급 정년을 맞게 될 신세이다.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힐 리 없다.

"김 원장 탓에 정치권 줄대기 생겼다"

이런 현상은 2, 3급 자리를 일률적으로 급감한 정책에서 비롯했다. 특히 김만복 원장이 1차장을 지낸 해외 부서에서 이런 문제는 더 심각하다. 사무관으로 해외 공관에 파견돼 외교부 직원과 함께 근무하는 해외 부서의 경우 외교관이 승진하면 그들과 직급을 맞춰주는 게 국정원의 관행이었다. 국정원에서 특히 해외 부서에 2, 3급이 많았던 이유다. 이들을 일률적으로 내보내고 직급 정년을 단축한 결과 해외 부서 사기는 크게 악화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만복 기조실장이 해외 부서를 대거 감축한 뒤 해외담당 차장을 맡아 나가자 해외 부서 직원들에게 기강도 서지 않고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김만복 원장이 한 안식년 개념의 해외연수 제도를 대폭 축소한 데 대해서도 내부 불만은 극에 달했다. 이 제도는 국정원 내 적체된 인사 숨통을 틔우고 요원 재교육을 통해 조직관리의 융통성을 발휘하는 기능을 해왔다. 김 원장이 이를 막아버리자 다른 사람도 아닌 국정원 출신이 조직을 죽였다며 분개해하는 이들이 많다. 국정원의 한 전직 간부는 “인사 적체 문제는 정치 문제가 아니라 기능 문제인데 김 원장이 이렇게 막아버리지 정치적 줄대기도 생겨났다. 김만복 원장처럼 처신하면 최소한 자기는 덕본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국정원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만신창이가 되어 신음하고 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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