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정보기관 개혁을 명분으로 국정원 시대를 연 DJ 정권은 1년 만에 직원 850여 명을 쫓아냈다.

김만복 전국정원장은 1998년 정권 교체 이후 안기부에서 국정원으로 개편하던 당시 대량 강제 해직당한 상당수 전직 국정원 직원 사이에 특히 ‘원성’이 자자하다. 

DJ 정권 초대 이종찬 국정원장은 영남 출신 간부 128명을 포함해 1년 동안 총 850여 명의 직원을 IMF 구조조정 명목으로 강제 퇴직, 직권 면직 등의 조처를 통해 내보냈다. 그러나 당시 대량 해직은 구조조정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정권교체를 이룬 DJ 정부가 ‘인적 청산’을 통해 정보기관을 장악하기 위해 밀어붙인 정치 행위였을 뿐. 얼마 안 가 이들을 내보낸 직급과 자리를 내부 승진 또는 신규 임용 등으로 다시 채웠기 때문이다. 또 대량 강제 퇴직 이후 겨우 2년 만에 국정원 조직은 이전보다 더욱 비대해졌다.

국정원에서 축출된 이들은 이후 퇴직 사유별로 국사모와 국강투라는 모임을 결성해 지난 10년간 국정원을 상대로 진정을 내는가 하면, 시위 집회, 행정소송 제기 등을 벌이며 줄기차게 명예회복을 요구해왔다. 2003년 서울 행정법원 1심 재판에서 법원은 이들의 퇴직 과정에 불법성이 있었다며 복직과 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의 복직 판결이 있자 당시 서동만 기조실장은 ‘국정원 내 지역 간 화해’ 차원에서 항소를 포기해 소송을 낸 국사모 소속 퇴직자 29명에게 명예회복 길을 열어주었다. 뒤이어 소송에서 승소한 퇴직자 8명에 대해서도 역시 국정원은 화해 조처를 취했다.

그러나 서동만 기조실장 후임으로 김만복 실장이 들어선 뒤 상황은 달라졌다. 대량해직 사태 당시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김만복 기조실장이 이들의 원성을 사게 된 까닭은 국사모 외에 1심 법원에서 새로 승소 판결을 받은 국강투 소속 41명의 강제퇴직자들에 대해 그가 전임 서동만 실장과 달리 화해를 거부하고 항소·상고 등으로 맞서며 끝까지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이다. 또 평직원급 가운데 강제 퇴직의 억울함을 법원에 호소한 한용덕씨 등 9명에 대해서도 김만복씨는 역시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강제 퇴직자들, 김 원장의 '소송 공작' 밝혀

1심에서 국정원이 이들에게 패소하자 김만복 기조실장은 국강투 소속 퇴직자 21명을 내곡동 국정원 회의실로 초대했다. 당시 김만복 실장은 “동료 직원으로서 여러분의 억울함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1심 판결에 승복하면 내규에 위배되므로 형식상 항소할 테니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김 실장은 이들이 국정원 앞에서 벌인 항의 시위 물품 대금 100만원까지 변상해주며 달랬다. 퇴직자들은 김만복 실장과 과거 중정 시절부터 수십 년간 동료로 일하며 잔뼈가 굵어온 터라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고 한다. “우리는 결과적으로 김만복 실장에게 사기당했다. 그가 형식상 소송이라고 해 그 말을 믿었다가 완전히 당하고 말았다.” 이후 소송에서 국정원 측에 패소해 재심을 청구한 국강투 강신호 회장은 김만복 원장이 옛 동료에게 ‘소송 공작’을 벌였다고 주장하며 강한 배신감을 토로했다.

이들은 1월20일 대통령직 인수위 앞으로 강제퇴직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냈는지, 김만복 원장이 어떤 소송 ‘소송 공작’을 폈는지 밝힌 탄원서를 제출해 새 정부가 자신들의 명예 회복에 나서줄 것을 청원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