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부산 사직중학교를 나왔습니다. 제가 선택한 건 아닙니다. 중학교 2학년 때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그 학교에 야구부가 창단됐습니다. 그래서 물론 이제 그전만큼 열정은 없지만 그래도, ‘운명’에 비유할 만한 끈 같은 게 있다고 가끔 느낍니다. 그것은 제가 근본적으로 ‘부산 사람-됨’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20년 넘게 서울에 살지만, ‘부산 사람’에 자신을 강하게 동일시하는 유의 인간입니다.

얼마 전에도 서울의 어느 ‘롯데 팬’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 이야기는 항상 한 군데로 귀착됩니다. 왜 ‘롯데 팬’은 저처럼 열정적인가? 계급·학벌·직업·세대를 초월한(것처럼 보이는) 저 열정은 도대체 무슨 ‘증상’인가? 서울에 이주한 ‘부산 사람’ 처지에서, 오늘날 부산의 로컬리티에 대해 생각할 기회는 주로 이렇게 주어집니다. 지역과 ‘정체성’의 주체가 가진 외적·문화적 지표 때문에 말입니다. 그 지표들은 ‘표 나는’ 말씨나 취향(롯데 야구·생선회?) 등입니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롯데 자이언츠 선수 시절의 최동원씨.
대한민국 전체가 서울의 식민지나 강남 부자들의 들러리가 돼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이제 저는 예전과는 정반대로, 지역주의가 왜 나쁜지, 그야말로 진짜 큰 악(惡)은 중앙 집중과 서울 중심주의가 아닌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부산 사람들은 정치-지역-주체는 아닌 듯합니다. 심지어 부산 문화정치의 헤게모니를 가진 자들도 ‘지역-정체성-정치’를 거의 펴지 않는 듯합니다. 기껏 가덕도 신공항 같은 부정적인 것 이외에는 말입니다. 부산의 정치-지역-주체성은 거세당했습니다.


여당과 지역 지배 기능 나눠 갖은 ‘롯데 야구’

그런 면에서 서울과 인천의 4개 팀, 그리고 나머지 지역의 3개 팀과 대결하는 구도로 짜인 ‘롯데 야구’는 예외적(?)이며 징후적입니다. 가장 단순히 말해, 부산의 독특한 자연과 나름의 역사·전통으로부터 주어진 강한 지역적 정체성을 발현·주장하고 싶지만, 그 길이 폐색돼 있는 정치적 상황이, ‘롯데 야구’ 인기의 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롯데 야구’는 이제 거의 소멸되어 남아 있지 않은, 또한 점점 소멸해감으로써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그러나 완전히 소진되기는 어려울, ‘부산 사람’들의 정치-문화-정체성 주장의 약한 매개인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김영삼 정권 이래 근 20년간 지역을 정치적으로 장악·점거한 한나라당은 아마도 부산-정치의 최대 장애물일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중앙권력과 전국적 패권에 대한 미친 환각을 심어주고, 그리고 지역을 초월해 국가를 지배하는 부자들의 헤게모니를 부산에 관철시키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사실 거꾸로입니다. 한나라당이란 지역주의 정치의 매개자가 아니라, 정반대로, 필요한 정치적·비판적 지역주의를 거세하고 불가능하게 만드는 매개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 야구’는 양가적입니다. 그것은 부 마항쟁과 6월항쟁의 그야말로 ‘잔재’로서의 알레고리(벤야민)일지도 모르며, 그러나 다시 지역의 정체성을 재벌의 그라운드에 가둬놓고 사육(飼育)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드는 매개입니다. 결국 ‘롯데 야구’는 한나라당과 지역 지배의 기능을 나눠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산은 부산이지 한나라당도 아니고 롯데도 아닙니다. 부산 야구는 부산 야구이지 롯데 야구가 아닌 것처럼요.


제가 ‘롯데 야구’를 보러 다닌 지 딱 30년이 됐습니다. 나이가 좀 든 부산 야구 팬들의 아주 오래된 소원은 항상 자이언츠의 프런트가 다른 것이 되는 것, 아니 더 나아가 부산 시민 구단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껌 팔아 야구하는’(야구 팬들은 이 말의 속뜻이 뭔지 다들 알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재벌은 그전보다는 훨씬 더 커졌습니다) 재벌 이름을 뗀 구단이 우리가 바라는 진짜라는 말입니다. 저는 나중에 좀 더 머리가 굵어지고 난 뒤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역사·문화와 FC 바르셀로나 같은 팀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정말 부럽기도 했습니다. 팬들의, 팬들을 위한, 팬들로부터의 시민 구단. 선수들을 진정으로 아끼는 구단. 그러나 당분간 부산이 바르셀로나 같은 도시가 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구조와 역사 때문이겠지요. 서울은 마드리드보다도 훨씬 강력합니다. 서울은 곧 국가가 아닙니까. 게다가 아직까지 부산은 제 스스로가 중앙의 ‘지배’에 더 많이 연루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뉴시스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9월14일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하고 있다.

부산 야구가 낳은 스타는 즐비하지만, 그중 두 사람만 꼽으라면 최동원과 박정태일 겁니다. 그들이 부산 팬에게 가장 사랑받는 이유의 반 이상은 야구 선수로서의 성적만큼 훌륭한 그들의 성정 때문일 것입니다. 배짱과 오기와 과묵함과 화끈함. 그 동네 사람들은 그것을 ‘부산 사람답다’ 또는 ‘사내답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그중 그야말로 ‘단 한 사람’. 이제 말 그대로 ‘레전드’가 된, 최동원이 만든 추억이야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혼자 우승을 만들다시피 한 1984년뿐이겠습니까. 그는 단지 대기록을 가진 투수가 아니라, 한국 야구사상 가장 강하고 뛰어난 자기의식을 가진 선수였습니다. 


한국 야구사상 가장 강한 자의식 지닌 선수

롯데에서 방출당한 뒤부터 최동원은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끝내 자존심을 지키며 또 다른 승부를 하려 했습니다. 저는 그가 왜 앞장서서 선수협을 결성하려 했는지, 왜 1991년에 뜬금없이 야당(민주당) 공천을 받아 시의원에 출마했는지 잘 모릅니다. 그것이 부산 사람으로서의 성정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야구 선수로서의 남다른 강한 자존심을, 아니 인간으로서의 고매한 자의식을 혼자만의 것이 아닌 뭔가로 확장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고, 그런 행동이 분명 돈 많고 권력 많은 누군가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던 것이라 들었습니다.

부산 시민 구단의 시민 구단주들이 감독을 찾았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최동원이었을 가능성이 있었겠지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서울의 아류가 되는 게 부산의 꿈은 아닐 겁니다. 부산은 부산만의 꿈이 있을 겁니다. 그런 제대로 된 꿈을 꾸려면 부산은 최동원처럼 오기 부리며 외로워져야 할지 모릅니다. 다시 최동원 선수의 명복을 빕니다.

기자명 천정환 (문화평론가·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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