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손율’이라는 용어가 있다. 여행자가 지불한 비용이 현지인에게 돌아가는 게 아니라 호텔을 소유한 다국적 기업 등 외부로 빠져나가는 비율을 뜻한다. 경제력이 약한 국가일수록 누손율이 크다. 네팔 같은 나라는 누손율이 70%에 이른다. 관광산업이 발달했다고 하는데도 현지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07년 말, 평화운동 단체 ‘이매진 피스’가 이런 관광산업에 문제 제기를 하면서 공정여행 페스티벌을 열었다. 외국에서는 ‘지속 가능한 관광’ ‘책임 관광’이라고 불렸는데, 한국에서는 공정여행이라는 말이 나왔다. 공정여행사 트래블러스맵의 변형석 대표는 당시 하자작업장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페스티벌에서 접한 ‘공정여행’ 개념은 그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이었다.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도보여행을 하거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거나 현지 주민들과 어울리는 여행을 꽤 해왔다. 공정여행과 유사한 여행을 그동안 해왔구나 하는 점에서는 익숙했다. 반면 서구에서는 이미 이런 방식의 여행을 산업화하는 흐름이 있었구나 하는 점에서는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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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러스맵 사하라 사막투어


2008년 말부터 공정여행사를 생각했다. 페미니즘 잡지 편집장, 여행작가,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 청년 등 7명이 모였고, 2009년 1월부터 공정여행사를 시작했다. 여행업 초보들이어서 항공편 발권을 어떻게 하는지, 숙소를 어떻게 수배하는지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나중에 여행업과 관련한 이들이 합류했지만 기존 여행 관행이 공정여행과는 맞지 않아 새로운 방식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 가령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공정여행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한 팀을 15명 미만으로 제한하는데, 기존 여행 인프라는 40~200명씩 하는 대형 관광 스타일에 맞추어져 있었다. 45인승 관광버스를 타고 ‘왔노라, 보았노라, (사진) 찍었노라’ 3종 세트를 반복하는 패키지여행 말이다.

이에 비해 공정여행은 방문한 지역의 사람들이 직접적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네팔 같은 경우는 소수민족 여성을 포터로 고용해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만드는 사회적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숙소를 정할 때도 누구 소유인지, 지역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등을 알아보고 누손율이 가장 적을 만한 곳을 우선한다.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물을 적게 쓰고, 동식물로 만든 기념품을 사지 않는 등 여행을 떠나기 전에 수칙을 알리고 교육한다. 지역 문화와의 접점을 최대한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지역의 아이들과 교류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지역 경제를 살리고, 자연을 보호하며,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이 바로 공정여행이다.

흔히 공정여행 상품은 비싸다고 여긴다. 변형석 대표는 캄보디아로 3박5일 여행을 갈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가장 큰 차이는 기존 여행상품의 ‘숨겨진 비용’이다. 때로 ‘공식 여행비용’은 원가에도 못 미친다. 애초부터 적자로 시작되는 여행은 서너 배로 부풀려진 옵션 투어 코스 비용과 라텍스·상황버섯 구매 등 커미션이 최대 80%에 이르는 ‘불법 쇼핑 비용’으로 보충된다고 한다. “유럽 상품은 공정여행이나 기존 여행이나 가격이 거의 비슷하다. 불법 쇼핑이 허용되지 않으니까. 캄보디아에는 현지 가이드 3000명 중에 한국어를 하는 가이드가 10여 명 있다. 그런데도 한국 여행사들이 그 가이드를 배제해왔더라. 왜 그럴까. 여행자와 대화 중에 현지 가격이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숨겨진 비용’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10만원 안팎의 가격 차이가 난다고 한다. 공정여행사들이 아직 ‘작은 여행사’이다 보니 항공권 구입 가격에서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공정여행사에 따르면, 공정여행자는 대개 30대에서 50대 초반 여성이다. ‘윤리적 소비’에 관심을 둔 그룹이다. 여기에 체험 여행에 나서는 청소년들이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주로 이용한다. 여름 휴가철, ‘견딜 만한 불편함’을 친구 삼아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연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이들에게 공정여행을 권한다.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이므로.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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