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이틀 뒤인 지난해 12월15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 추산으로 의사 2만명이 모인 대형 집회였다. 이 자리에서 의협은 정부가 추진하는 자법인 도입을 영리병원 우회 도입으로 규정하고 규탄했다.

마침 철도노조 파업이 한창이던 때였다. 여론은 의협의 대규모 집회를 의료 민영화 반대 집회로 받아들였다. 철도노조의 KTX 민영화 반대 파업과 궤를 같이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의협의 속내는 복잡하다. 일선 의사들 중에는 정부 정책이 의료 민영화여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영리 자법인과 원격의료 등이 도입되면 대형 병원의 힘이 세지고 개인 개업의가 설 땅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기류가 강하다. 개업 의사들 위주 모임인 의협의 노선에는 이들의 의견이 중요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반면 의료법인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한병원협회는 정부의 의료정책을 좋게 평가했다.
 

ⓒ연합뉴스지난해 12월15일 의사협회 회원들이 정부의 의료 정책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의협의 주류 의사들은 정부로부터의 의료 자율화에 대한 지지가 강한 편이어서, ‘의료 민영화 반대’라는 구호를 당황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애초 12월15일 집회의 주 슬로건 중 하나도 ‘관치의료 타파’였다. 의료 전문지 〈청년의사〉는 1월3일자 사설에서 “12월15일 집회는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의료 민영화 반대’로 언론에 보도됐다”라고 당혹감을 드러냈다.

노환규 의협 회장도 이런 기류를 알고 있다는 듯 지난해 12월27일 전국 의협 회원에 서신을 보냈다. 서신에서 노 회장은 “의협이 의료 민영화 반대를 외치거나 동조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의료 민영화가 ‘의료인이 아닌 투자자에게 이익을 주는 의료제도’로 이해되고, 이는 의협과 방향이 같으므로 당분간 차별화하지는 않겠다”라고 썼다. 의협의 투쟁과 의료 민영화 반대는 결이 다르지만, 여론 향방이 중요하므로 당분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겠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의협의 목표는 결국 수가 인상이다”라는 냉소적인 평도 나온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의 한 관계자는 “의료 민영화 반대가 의협의 소신이었다면 집회에 ‘관치의료 타파’ 구호를 들고 나왔겠나”라고 말했다. 의협은 1월11일 출정식을 열고 총파업까지 포함해 대정부 투쟁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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