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가도 영리병원으로만 가면 된다.’

영리병원으로 향하는 길은 한 갈래가 아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13일 발표한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자본투자와 배당’이다. ‘자회사 설립’은 이를 위한 일종의 우회로에 해당한다. 현 정권 이전에도 이러한 우회로는 계속 논의되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병원경영지원회사(MSO)다.

MSO(Management Service Organiza- tion)는 의료행위를 제외한 병원 경영 전반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병원에서 필요한 구매, 인력관리, 진료비 청구, 마케팅 등을 대신 수행하는 형태다. 병원에서 진료와 경영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원리대로라면, 개인병원은 MSO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의료 시장에 좀 더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다.
 

ⓒ시사IN 이명익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 따라 피부과 등 기업형 사무장 병원의 폐해가 커지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MSO가 가장 일반화된 경우가 바로 네트워크 병원이다. 고운세상피부과의 ㈜고운세상B&H, 365mc 비만클리닉의 ㈜365mc네트웍스, UD치과의 ㈜유디 등이 대표적인 MSO다. 이들 MSO는 각 병원의 개업과 운영에 경영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별도 부대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고운세상B&H는 전국 14개 고운세상피부과를 관리하고 있으며, ㈜고운세상코스메틱을 통해 화장품 사업에도 진출한 상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1월 검찰에 의료법 위반 여부 수사를 의뢰해 논란이 된 UD치과도 ㈜유디를 통해 전국 100여 개 네트워크를 관리한다.

MSO는 2006년 12월 재정경제부의 ‘서비스 산업 경쟁력 강화대책’ 보고서에서 처음 논의되었다. 의료법상 제한된 수익사업(주차장·장례식장 등)만 할 수 있는 의료법인과 달리 MSO는 의료행위를 제외한 모든 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골자였다. 박근혜 정부의 ‘자회사’와 태생적으로 유사한 임무를 품고 있었던 셈이다.

노무현 정부 막바지에 논의된 MSO는 이명박 정부에서 핵심 의료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정국과 함께 의료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거세지면서 MSO는 영리병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필요한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료법인 간 인수합병, 의료법인 채권 발행 등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MSO는 단순 서비스 제공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2009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영리법인병원 도입논의 및 정책과제’에 따르면, MSO는 크게 경영지원형 MSO와 자본조달형 MSO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MSO에 자본을 투자하고, MSO의 수익을 투자자가 회수할 수 있는 방식이 자본조달형 MSO인데(오른쪽 그림 참조), 우리나라 MSO는 이 단계까지 확장하지는 못한 상태다. 현행 의료법상 의료법인은 MSO를 설립하는 것이 형식상 불가능하고 개인병원만 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MSO는 대개 ‘개인병원의 느슨한 연대’ 형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네트워크 병원의 기능도 크게 변화

2011년 12월에 개정된 의료법도 MSO 확대에 제동을 걸었다. 1인1개소(의사 한 명당 병원 한 곳만 개설할 수 있다) 원칙을 강화한 개정 의료법은 오너가 지배하는 오너형 네트워크 병원과 공동 출자를 기반으로 설립된 조합형 네트워크 병원을 사실상 프랜차이즈 형태로 전환하게 했다. 프랜차이즈형 네트워크 병원에서 MSO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단순 경영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쳤다. 그로 인해 수익성이 크지 않았고, 전체 규모도 크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이 현실화될 경우 MSO의 미래는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 의료법인 자회사가 MSO의 기능을 대체하거나 기존 MSO를 자회사 형태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능적으로도 MSO와 자회사는 목적이 같다. 2009년 보건복지가족부가 추진했던 의료법 개정안을 보면 MSO가 의료기관에 제한적으로 허용했던 부대사업 규모를 구매·재무·직원교육 등 의료기관의 경영을 지원하는 사업까지 확대하려 한 바 있다. 이번 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허용하겠다고 한 자회사의 설립 목적과 유사하다. 투자와 배당이 자회사에게 허용된다고 가정했을 때, 대다수 MSO는 자본을 조달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자회사 형태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김형성 중앙사업국장은 “MSO와 자회사는 정부에서 예시한 지분참여 비율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자회사 형태의 MSO’ 혹은 ‘MSO 사업 분야까지 확장한 자회사’에 투자와 배당이 가능할 경우, 2011년 의료법 개정으로 축소된 네트워크 병원의 기능도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제시한 ‘추가허용 사업(예시)’에서 자회사가 의료기기 등을 구매하거나 의료기관을 임대하는 사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MSO가 병원과 인력을 구비해놓고, 이를 임대하는 형태로 사업이 확장할 수 있는 셈이다. 이럴 경우 실질적으로 ‘시설을 볼모로 한 병원 지배’가 가능하다는 예상도 나온다.

음성적으로 발생했던 기업형 사무장 병원의 폐해가 확대될 수 있으리라는 지적도 있다. 기업형 사무장 병원이란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사무장)이 의료인을 앞세워 병원을 운영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현 의료법상 이런 병원은 실소유주인 사무장과 함께 명의를 빌려준 의료인도 처벌된다. 그러나 MSO가 자회사 형태로 설립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에 대한 실질적 지배권을 계속 확장할 경우, 위법과 합법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 현 제도하에서도 기업형 사무장 병원은 내부고발이 아닌 경우 음성적인 위법 행위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4차 투자활성화 계획을 우려하는 이들은 이 같은 기업형 사무장 병원이 확대될 경우 과장·허위 광고와 과잉진료가 늘어나며, 비급여 고가 진료가 확대되어 환자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 내다본다.

현재 이 같은 기업형 사무장 병원의 확대를 가장 경계하는 분야는 비급여 진료가 많은 치과·성형외과·피부과 등이다. 이윤 극대화가 용이하기 때문에 이미 다양한 네트워크 병원이 자리 잡고 있는 분야다. 김철신 대한치과의사협회 정책이사는 1월14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의료 영리화 정책 진단 토론회’에서 “기업형 사무장 치과병원의 실소유주가 컨설팅 회사, 재료 공급회사, 기기 임대회사, 인력 파견회사 등 자회사를 차려놓고 의료기관은 명의를 대여하여 실제 병원을 소유·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영리 자회사는 기업형 사무장 치과병원의 폐해를 합법화하고 확대하려는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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