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에서는 또 하나의 ‘실험’이 진행되는 중이다. 지난 9월12일부터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하 공교육정상화법)’이 시행되면서다. ‘선행학습 금지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안은 문자 그대로 과도한 선행학습을 규제함으로써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하지만 이 제도는, 시행 이전부터 공교육만 제재하는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입법 취지는 좋지만, 사교육 부문의 선행학습을 막지 못하면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별법 시행 이후 학교 현장의 반응은 혼란스럽다기보다 무반응에 가깝다. 법 시행 자체를 몰랐다는 교사도 많다. 당혹스러운 것은 학생과 학부모들이다. 나만, 혹은 우리 애만 뭔가 놓치는 게 아닐까 불안해지기도 한다. 결국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정보 수집에 나선 결과 이들이 도달하는 곳은 다시 학원이요, 선행학습이다.
 

ⓒ시사IN 윤무영사교육걱정없는세상 안상진 부소장(왼쪽)과 전국수학교사모임 이동흔 회장. 이들은 수학 선행학습의 효과가 미미하고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교육부와 국민권익위원회가 일반 국민 9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선행학습을 가장 많이 하는 과목은 수학(41.4%)과 영어(31.9%)였다. 이 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수학이다. ‘수포자’(수학 포기자)라는 말이 일상어가 될 만큼 한국의 초·중·고교 수학 과정은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영어의 경우 최근 교육부가 밝힌 대로 수능 영어평가 방식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뀌면 선행학습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어들리라는 게 교육계 안팎의 기대다. 반면 수학은 이런 제도적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행학습 금지법안만 덜렁 통과된 상태다.

〈시사IN〉이 그간 수학교육의 문제점을 집중 제기해온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고등학교 수학교사 경력 8년)과 이동흔 전국수학교사모임 회장(숭문고 수학교사)을 만난 것은 이 때문이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수학을 따라갈 수 없다는 통념은 과연 진실일까? 공교육정상화법은 과연 ‘수포자’를 막을 수 있을까? 인터뷰는 10월1일 〈시사IN〉 편집국에서 진행됐다.

지난 9월12일 공교육정상화법이 시행됐다. 교육 현장의 분위기는 어떤가?

안상진 부소장(안):학교 현장에서는 체감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돌아다니면서 선생님들에게 물어보면 ‘이게 뭐 하는 법이냐’며 내용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와 대조적으로 학원들은 ‘그 좋은 선행학습, 공교육에서 이젠 못하니 우리가 책임져주겠다’면서 나서는 식이다.

이동흔 회장(이):현장에서는 선행학습 금지에 대한 체감도가 아직 떨어진다. 개구리가 뜨거운 물속에 들어간 직후엔 온도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단 따져보자. 왜 수학 과목에서 특히 선행학습 문제가 발생하는 걸까?

:무엇보다 학생들이 배우는 수학 학습량이 지나치게 많다. 한국의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성장발달 수준에 따라 만들어진 게 아니라 고등학교 때 배워야 할 내용을 정해놓고 (초·중학교로) 내리꽂는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정해진 시간 내에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 이과 학생들은 더욱 심하다. 더 큰 문제는 그렇다고 질적인 심화가 이뤄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령 초등학교 4학년이 ‘분수’를 배운다고 가정해보자. 미국은 피자 한 판 나눠먹기 등 실생활 예시를 들어 학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학생이 (분수의) 개념을 발견하면 그걸로 된 거다. 이후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문제 몇 개만 풀면 된다. 하지만 한국은 개념을 일단 던져주고 그것을 계속 꼬아 문제를 풀도록 강요한다. (교육의 목적이 수학 개념을 이해시키기보다) 학생을 평가하고 구분하기 위한 거니까, 별 희한한 문제를 다 낸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질려버린다. 내용을 안다고 생각했다가 막상 문제를 풀어보니 ‘아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학원에 기대게 된다. 학원은 또 선행학습을 유도하고.

:요즘 애들 정말 고생한다. 내가 문제를 풀면 애들이 도사 쳐다보듯 본다. 평가를 통해 학생의 장점을 찾고 방향을 제시해줘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수학자와 수학교육학자가 생각하는 수학에 차이가 있다는 점 또한 지적할 필요가 있다. 수학자들은 고교 과정에서 배우는 수학의 양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반면 수학교육학자들은 지금 배우는 양만으로도 학생이 합리적·논리적·사회비판적 사고를 갖춘 사회인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선행학습 금지법에 대한 의견 차이가 발생하는 듯하다. 수학자들이 요구하는 학습량을 채우려면 선행학습이 불가피해지는 측면이 있다.

관건은 대학 입시 아닌가?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는 논술시험 등에 대비하기 어렵다고 현장에서는 하소연한다.

:대입 논술시험 등에서 편미분 문제가 나오는 등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만 유리하게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출제되어온 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그래서 이런 걸 막을 법안이 필요하다는 거다. 공교육정상화법은 고교 학생들에게 대학 과정의 문제를 출제하는 일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최근 3년 정도의 기출 문제를 분석해보면 대학 교수들은 고교 교육과정에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인다. 가령 편미분 같은 경우 ‘이것도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미분이니까’ 하고 문제를 내는 경우도 있다. 물론 고교에서 배운 내용으로 해석·유추해서 문제를 풀 수는 있지만, 대학에서 배우는 편미분을 알면 되게 쉽게 풀리는 문제들이 있다. 이런 게 문제다.

 

 

ⓒ연합뉴스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치러진 9월3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학교 현장은 ‘무반응’에 가깝다.


그래도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면 학생과 학부모 처지에선 선행학습을 하려는 유혹이 생기지 않겠나?

:선행학습을 하면 성적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성적 순위가 최상위권인 학교에서 일한 적이 있다. 당시에 관찰해보니,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은 1학년 1학기 중간·기말고사, 1학년 2학기 중간고사까지만 성적이 좋다. 3학년에 가선 선행학습을 안 한 학생이 전교 1등을 하더라.

:2000년대 들어 특목고 입시 열풍이 불면서 초등학생도 〈수학의 정석〉을 떼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생겼다. 이후 특목고 입시 전형이 바뀌면서 선행학습이 필요한 내용은 출제를 못하게 됐다. 그런데도 선행학습이 줄어들지 않는다.  가만히 보니 학원에 자체 동력이 생겨 있더라. “어머님, 서울대 들어간 누구 아시죠. 걔 이렇게 들어갔어요. 다른 애들도 다 합니다”라고 부추기는 거다.

선행학습이 효과가 없거나 미미하다는 뜻인가?

:선행학습을 하면 공부를 대충 한다. 모르면 ‘이게 뭐야, 왜 안 되지, 미치겠네’ 하면서 달려드는데, (선행학습을 하면) 이런 근성이 반감된다.

:수능 수학 100점 만점에서 52점가량은 4점짜리 문제로 이루어진다. 유형별 문제집 잔뜩 풀며 선행학습을 한 학생은 2점, 3점짜리는 맞히는데 정작 4점짜리를 못 푼다. 선행학습으로 인해 사고능력이 완전히 저하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교 교사로 있을 때 제일 무서운 게 “입학 전에 고교 수학 5번 뗐다, 10번 뗐다” 하는 학생들이었다. 이런 학생들의 약점은 뻔하다. 개념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어서 유형을 약간 변화시킨 문제들, 즉 본질에 대해 물어보는 문제를 내면 대책이 없다. 그냥 멍해진다. 그럼 그때부터라도 공부 방식을 바꿔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결국 학생들 입에서 ‘선생님, 저는 수학적 머리가 없나 봐요’ 소리가 나온다. 이게 가장 가슴이 아팠다. 선생님도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 때문에 수업 분위기가 망가져 피해를 보고, 학부모도 피해를 본다. 학교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시험 보러 가는 곳, 이미 뗀 걸 확인하는 곳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불안하고, 좌절감이 들고….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꼼꼼히 복습해야 실제로 성적이 더 잘 나온다는 걸 알고 나면, 즉 선행학습이 비효율적이란 걸 깨닫고 나면 더 이상 선행학습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영화관으로 치면 다들 의자에 앉아서 영화를 보지 않고 의자 위에 올라서서 영화를 보는 거랑 똑같다. 한 사람이 의자 위에 올라서니까 뒷사람도 줄줄이 올라가서 불편하게 영화를 보는 꼴이다.

선행학습이 수학적인 사고능력을 약화시킨다고 말씀하셨지만 당장 시험을 눈앞에 둔 학생으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선행학습 없는 수학 공부, 어떻게 해야 할까?

:초등학생, 중학생은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사교육 없이 부모님이 옆에서 도와줄 수 있다.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니’ ‘그 문제는 왜 그렇게 되니’ 등 질문을 던져 계속 사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출제자가 꼬아놓은 문제들을 못 풀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사고하는 힘이 길러지면 그걸로 충분하다. 단, 고등학교 입학 전 고등수학은 미리 볼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수학 과목의 난이도가 갑자기 올라가기 때문이다. 중3 기말고사를 11월에 친 이후에 시간이 꽤 있으니 그때를 활용하면 된다. 이것은 오늘날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선행학습과는 다르다. 고등학교 수학이 갑자기 어려워지니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비책이다.

:수학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는 세계적인 학자들이 다 이야기하는 거다.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하루에 8시간 넘게 피아노를 치고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프리킥을 3000번도 넘게 차듯, 수학도 참을성을 갖고 공부해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가 수학 문제를 100번 틀려도 괜찮다고 봐주고 넘어갈 줄 알아야 한다. 변화가 중요한 거다.

:교사들도 ‘아이들이 수학을 나에게 처음 배운다’는 마음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쳤으면 한다.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정말 잘 안다. 하지만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 선생님 수업을 듣는 아이들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수업해주면 좋겠다. 학부모들도 교육 담당자에게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요즘엔 다들 영어를 잘해서 영어학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거 틀렸네’라고 시큰둥해하는 학부모들이 있다. 반면 수학은 다들 할 말이 있어도 못한다. 대부분이 학창 시절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수학교육에 대해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기자명 허은선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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