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러분 같은 열일곱, 열여덟 살 친구들을 보면 가슴이 떨려요. 내가 그 나이에 처음 창업을 했거든요.” 김가영 생생농업유통 대표 말에 고등학생 150여 명이 눈을 크게 떴다. 지난 10월26일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2016 직업을 창조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사IN〉 드림 콘서트’가 열렸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드림 콘서트는 〈시사IN〉이 사회 환원 차원에서 주최하는 진로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날 특별 게스트로 나선 김가영 생생농업유통 대표는 선린인터넷고 재학 중 친구들과 함께 모바일 프로그램 개발사를 만든 경험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기억이 가슴 떨릴 만큼 설레었던 것일까? 전혀 그렇지는 않다고 그녀는 말했다. 설레서가 아니라 “그 뒤 벌어질 일들을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과연 같은 선택을 했을까” 싶어 가슴이 뛴다는 것이다.

본인 말마따나 김 대표는 보통 사람들과 ‘조금’이 아니라 ‘엄청’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다. 고교 시절 창업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학교를 다니다 말고 농업, 그것도 농산물 유통 쪽에 뛰어들기란 결코 쉽지 않다. 김 대표가 농촌과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농활을 떠나서였다. 난생처음 과일을 따고 비료 포대를 나르면서 이전에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희열을 느낀 그녀는 ‘이게 바로 내 인생의 직업이겠구나’ 싶어 곧바로 농촌행을 감행했다.

ⓒ시사IN 신선영특별게스트로 나선 김가영 생생농업유통 대표는 대학을 다니다 농산물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녀를 목가적으로 살게끔 내버려두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밭에서 난 농작물만 내다 팔기에는 이웃 할머니들이 눈에 밟혔다. “1㎏ 한 상자에 3000~4000원 하던 상추 값이 여름이면 8만원까지 올라간다. 그런데도 도시 사람들은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3000~4000원 주고 사서 신던 신발이 갑자기 8만원이 되면 난리가 날 거면서.” 이에 그녀는 농산물 유통에 뛰어들기로 한다. 어차피 유통이라는 게 꼭 필요하다면 ‘세상과 지역을 연결하는 좀 덜 나쁜 유통업자’가 되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3년 전부터 김 대표는 서울·제주 등지에서 ‘소녀방앗간’이라는 밥집도 운영하고 있다. ‘예쁘고 잘나가는데 먹는 건 쓰레기(정크) 같은’ 도시 친구들과 ‘늘 싱싱한 걸 먹기는 하되 못 배우고 가난한’ 시골 할머니들을 어떻게 연결할까, 궁리한 끝에 식당이라는 서비스업에까지 덜컥 진출하고 만 것이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소녀방앗간을 찾는 손님들이 할머니가 보내주신 산나물과 참기름으로 지은 밥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걸 보면 신기하고 기분이 좋더라.”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꿈꿨던 여학생이 농사에 뛰어들어 유통업자, 서비스업자로 변신하기까지 꼬박 10년. “어쩌면 열여덟 살 때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이런 일을 저질렀던 것 같다”라며 그녀는 웃었다. 그렇다고 후회한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몰랐을 테고, 그랬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 게스트에 이어 단상에 오른 진로 멘토 5명이 약속이나 한 듯 강조한 얘기 또한 “지금 바로 저지르라”는 것이었다. 고졸 출신으로 ‘꿈 문화 기획자’라는 직업을 스스로 만든 서동효 모티브하우스 대표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진로를 고민하면서 가장 흔하게 하는 질문이 바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나요? 잘하는 일을 해야 하나요?”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런 질문은 무의미하다.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따지기 전에 뭐든 일단 저질러봐야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게임에는 장애가 없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보드게임 카페를 운영 중인 박비 ‘모두다’ 대표는 아예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게임 덕후’로 성장한 그녀가 게임 회사에 입사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집보다 회사에서 자는 날이 더 많은 생활에 스스로 소진되는 느낌을 받았던 그녀는 결국 독립해 창업하는 길을 택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 공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는 혼자 하는 게임보다 여럿이 함께 즐기는 게임을 좋아했던 성장기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그녀 말마따나 게임에 끝까지 미쳐봤기에 자신의 적성과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다

최근준 애로우애드코리아 대표 또한 요즘 즐긴다는 〈오버워치〉 게임을 예로 들어 뭐든 갈 데까지 가보라고 말했다. 애로우애드코리아는 거리에서 간판을 돌리는 퍼포먼스를 통해 광고 영업을 대행하는 회사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기꺼이 고용하곤 하는 최 대표는 게임 캐릭터를 이것저것 실험하다 보면 유독 당기는 것이 있듯 다양한 체험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를 진로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청소년이건 청년이건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는다는 것. 구혜빈 서울이노베이션팹랩 매니저는 그 주된 원인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지목했다. 특히나 한국 사회는 실패에 대해 냉정하다. 그러다 보니 취업 준비생의 40%가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되어 안정된 직업만을 좇는 것이다. 이런 현실이 기가 막혔던 그녀에게 새롭게 다가온 공간이 팹랩(Fab Lab)이었다. 2000년대 노르웨이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져나간 팹랩은 일명 ‘공공제작소’라 불린다. 이곳에서는 3D 프린터 등 디지털 기기를 누구든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구씨가 보기에 팹랩이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은 ‘실패해도 괜찮은 공간’, 나아가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이런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던 그녀는 망설이는 대신 행동하기로 했다. 전 세계 팹랩을 탐방한 뒤 이를 국내에 소개하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비용은? 기업 공모전을 적극 활용했다. “일단 저지르고 나면 생각보다 기회는 널려 있더라”는 게 그녀가 내린 결론이다.

물론 경험이 적은 데 따른 자신감 부족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험이 있다고 늘 정답을 맞힐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박세상 ‘한복남’ 대표는 말했다. 일명 ‘한복 입혀주는 남자’로 통하는 그는 전주 한옥마을에서 ‘한복데이’를 기획해 젊은 층 사이에 ‘한복입기 붐’을 일으킨 주역 중 하나다. 현재는 경복궁 인근에서 한복대여점을 운영하며, 외국인 관광객 등을 상대로 한복을 알리는 중이다. 그런 그도 과거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 망한 경험이 있다. 함께 일하던 직원이 돈을 들고 달아나면서다. 그는 “그때는 정말 막막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에서는 가르쳐준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라며, 결국 정답은 자신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더라고 말했다.

강연에 이어진 멘토·멘티 시간. 청소년들은 “여자친구 있어요?”부터 “회사를 창업하면 무엇이 가장 어렵나요?”까지, 강사들을 상대로 질문 공세를 펼쳤다. 콘서트를 마친 뒤 이들이 두고 간 소감문에는 “학교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리얼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도 두려움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나 자신이 되고 싶어졌다” 같은 사연들이 적혀 있었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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