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잡는 이야기다.

나는 구름 보기를 좋아한다. 그중 제일은 여름 구름이다. 고개를 들어 웅장하고 변화무쌍한 구름의 형상을 관찰하고 중구난방인 듯 보이나 일정한 박자를 가진 구름의 흐름을 추적하는 일은 요즘 같아선 세상 쓸모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 무용(無用)한 행위에서 유용한 가치를 찾아낸 이들도 있었다. 일찍이 수많은 예술가와 철학자가 구름에서 ‘순간’을 발굴했다.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며 순간의 산물로만 수렴되는 구름을 통해 그들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묻고자 했다. 때때로 한 무리의 몽상가들은 구름이라는 이미지에 힘입어 자유와 평등과 사랑을 논하고, “음미하지 않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어. 하지만 음미해버린 인생은 딱히 매력이 없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구름의 쓸모만큼이나 구름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드는 인간의 행위는 단순하고도 직선적인 실용의 움직임이다.

ⓒ연합뉴스영국에는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구름감상협회’가 있다.

며칠 ‘가히 초여름이구나’라고 할 만한 날씨여서 부러 하루 휴가를 얻어 ‘오전 11시 버스’에 올랐다. 오전 11시의 버스는 멍하니 이동하는 느긋함을 즐기기에 알맞은 장소다.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듣자 하니 영국에는 ‘구름감상협회’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구름 관찰담을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며 ‘함께 구름을 산다’는 것. 지어낸 것인 줄 알았다. 역시 구름의 계절인가, 생각하며 무심히 검색했다. 진짜 있었다.


영국에 거주하는 한 구름감상협회 회원은 개성 넘치는 구름을 보기 위해 협회 홈페이지를 드나드는 일상을 자기 블로그에 적어놓기도 했다. 구름감상협회 설립자는 개빈 프레터피니라는 사람. 그가 쓴 책도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 있었다. 〈구름 읽는 책〉(도요새, 2014)이다. 책의 끝에는 ‘구름추적자 졸업시험’도 들어가 있고,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선언문에는 “우리는 ‘파란하늘주의’를 만날 때마다 맞서 싸울 것을 맹세한다. 매일 구름 하나 없는 단조로운 하늘만 올려다봐야 한다면 인생은 너무도 지루해질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고.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구름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저러한 맹세라니. 그야말로 뜬구름 같은 맹세였다.

맹세하는 인간에 관해 떠올렸다. 최근 많다. ‘나라를 나라답게’라고 외쳤던 대통령 당선자와 당선되지 못한 후보들의 맹세, 모닝커피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던 동료와 쓰레기 분리 배출 날을 잊지 않겠다던 짝꿍의 맹세, 사고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친구들과 넋 놓고 구름을 보던, 작년 여름 일 없던 나도 떠올랐다. 그때 나는 ‘구름에게 배우는 평화란 이토록 전진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지금 내가 추종하고 싶은 맹세

스스로를 ‘파란 하늘 추종자들에 맞서는 구름추적자’라고 칭하는 개빈 프레터피니는 구름을 그저 티끌 하나 없는 완벽한 여름 하늘을 망쳐놓는 몹쓸 것 정도로 여기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조직했다. 근자에 들어 추종자라는 말을 가슴에 얹어두고 몇 번 손을 올렸다 내렸다. 뒤를 둘 수 있는 자의 덕목과 뒤를 따라서 쫓을 수 있는 자의 덕목은 어떤 것인가 고려해보기도 했다. 추종하겠다와 추종하지 않겠다는 맹세는 또한 얼마나 다른 것일까. 맹세란 시작하는 순간 곧 결과의 목전으로 이동하는 말이다. 누군가의 맹세는 지지하고 싶고 응원하고 싶지만, 누군가의 맹세는 제발 되돌리고 싶다. 에두르지 않고 지금 내가 추종하고 싶은 맹세란 이런 것이다. “나 김현은 오늘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안 발의를 환영하고 지지합니다.” 맹세란 구름(순간)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말이기도 하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끝낼까. 오전 11시 버스에서 들었다. 앞으로는 술 먹고 절대 전화 안 할게.

기자명 김현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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