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7월20일 관계 부처 합동으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의지를 밝힌 지 두 달여 만이다. 현재 후속 조치가 진행 중이다. 정부 부처,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 852곳은 비정규직 현황 파악을 위한 실태조사 뒤 전환 규모와 계획을 8월 내 결정해야 한다. 오는 9월 중 예산 협의를 거쳐 로드맵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정부가 기간제 외에 파견·용역이라는 ‘간접고용’을 처음으로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명시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2004년 노무현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한 이래, 역대 정부는 공공부문이 직접 고용한 기간제 노동자만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간주하고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정부 대책은 근로조건을 보호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상시·지속 업무를 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를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면 컨설팅을 지원한다’라는 지침을 낸 정도였다.

ⓒ연합뉴스‘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7월20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정부가 간접고용을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한 것은, 그동안 한국 사회 비정규직 문제의 중심이 직접고용 기간제 계약직에서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으로 옮아간 것과 관련이 깊다. 그중에서도 용역은 기간제나 파견에 비하면 법적 규제가 사실상 전무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경로로 활용되었다. 그 결과 간접고용 노동자는 2016년 8월 현재 파견 20만1000명, 용역 69만6000명 등 모두 90만명에 달한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가 시작된 2001년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한 숫자다.


특히 공공부문에 대한 ‘경영평가 제도’가 간접고용 인력의 팽창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아웃소싱으로 인건비를 줄일 경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보다 점수를 더 받았기 때문이다. 간접고용을 확대한다고 페널티가 부과되는 것도 아니었다. 공공기관으로서는 간접고용을 확대할 인센티브가 충분했던 것이다. 그 결과 파견·용역 등 공공부문 간접고용은 2012년 11만641명에서 2016년 12만655명으로 9.1% 늘었다. 같은 기간 기간제·단시간 등 직접고용 비정규직이 23.4%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사례를 통해 본 간접고용 전환 현황과 함의〉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

새 정부는 이 같은 공공기관의 간접고용 사용 인센티브에 제동을 걸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7월31일 ‘좋은 일자리 창출 및 질 개선 노력’에 가점 10점을 신설하는 내용으로 ‘2017 공공기관 경영평가 편람’을 수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요 평가 사항 중 하나로 ‘간접고용의 정규직 전환’을 포함했다. 또 공공기관 조직과 정원에 대한 지침을 개정해 총인건비 내에서 정원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탄력 정원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한재영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조직국장은 “토론회 때 기획재정부 과장이 ‘저희가 그동안은 고용 확대에 대해선 잘 몰랐는데 이제는 좀 익숙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하더라(웃음). ‘자르는 부서’로 통하는 기재부가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상징적인 변화다”라고 말했다.

또한 정규직화가 이루어질 공공부문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기로 했다. 예컨대 지방자치단체의 출연 기관, 공공기관·지방 공기업의 자회사, 민간위탁기관 등은 공공부문인지 아닌지가 모호했다. 이런 부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되어 있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실태조사부터 마친 뒤 단계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할 계획이다.

‘과거 2년 이상 지속된 업무’ 조항도 삭제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되는 ‘상시·지속 업무’ 기준에서 ‘과거 2년 이상 지속된 업무’라는 항목을 뺀 점도 전향적이다.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한 상시·지속 업무는 직접고용 정규직화하라는 원칙을 중앙정부가 세운 것도 처음이다.

ⓒ연합뉴스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해 ‘찾아가는 대통령-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울시 정규직화 플랜에 참여했고 현재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지원할 중앙 컨설팅팀에서 활동하는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촛불로 탄생한 정부라는 걸 실감하게 하는 변화”라고 평가했다. “현 정부 가이드라인의 핵심적 차별성은 간접고용이나 민간위탁까지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했다는 것이다. 굉장히 전향적이고 획기적이다. 노동친화적 경영평가 지표 역시 그간 노동계와 학계가 꾸준히 요구했던 내용이다. 가이드라인이 나오기까지 양대 노총과 학계를 20여 차례 만났다. 이전 정부에선 못 나올 페이퍼다.”


그러나 예산이 가장 큰 문제다. 각 공공기관 역시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규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는 어렵다.

넘어야 할 또 하나의 큰 산은 직접고용 여부다. 노동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안은 해당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자회사를 새로 만들어 그 회사의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방안도 나온다. 문제는 공공기관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엔 임금 격차도 크지만 직무도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의 임금 체계가 일의 강도와 난이도 등에 따라 임금 규모가 조정되는 직무급 중심이었다면, 해당 공공기관 내의 관련 부서에 직접 채용하면 된다. 그러나 연공급(근무 연수에 따라 임금이 인상)의 비중이 높은 한국의 임금 체계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사회학)는 “우리나라에 직무급이나 직종별 임금체계가 확립돼 있다면 직접고용을 해도 되겠지만 그게 안 되어 있어 차선책으로 자회사(에서 정규직화)를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직무급제를 시도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전망했다.

정규직 내부의 공감대 형성과 관련해 노조의 고민도 깊다. 기존 정규직들은 그동안 받았던 유무형의 혜택 일부를 새로 정규직이 된 노동자들과 나눠야 할 수 있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실장은 “지금까지 비정규직과 연대를 잘했던 곳은 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노조는 ‘공채 봐서 들어온 분들도 아닌데 왜 해줘야 되느냐’는 문제 제기도 있고, 이분들이 들어와 규모가 커지면 정규직 처우 개선 예산이 부족해지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는 것 같다. 노동시간 단축도 좋지만 시간외수당이 없어지는 문제라 충분한 공감대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노동계가 우려하듯 가이드라인 자체의 한계도 적지 않다. 파견·용역의 정규직 전환 방법으로 자회사를 열어놓거나, 정규직 전환에 각종 예외 사유를 둔 것이 그렇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한계를 안고라도 해야 한다. 전환 예외 사유를 비판적으로 보면 탈출구를 준 거지만, 상시·지속 업무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원칙이 먼저다. 자회사 문제도 경영평가 때 직영이면 5점, 자회사로 전환하면 2.5점 가중치를 주는 방안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액션 플랜, 실행 프로세스 중심으로 대안을 논의할 때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