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6일 광주 전남대에서 열린 ‘2021학년도 수능 개편 시안 공청회’ 행사장은 알록달록한 손 팻말로 가득 찼다. 팻말 내용은 두 종류로 갈렸다. “수능 절대평가로 사교육 추방!” “학교교육 정상화는 수능 절대평가로 시작!”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5등급으로!” 한쪽에선 완전히 다른 내용의 손 팻말이 세워졌다. “수능 절대평가 반대, 수능 무력화 반대” “서민도 대학 가는 수능 상대평가 유지하라” “수능 전 과목 상대평가하라!” 8월11일부터 시작된 전국 권역별 공청회 기간 내내, 수능 절대평가를 두고 이 정반대의 목소리들이 부딪쳤다.

교육부는 8월10일 2021학년도 수능 개편 시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절대평가 확대’이다. 현행 수능은 상대평가다. 내가 얻는 점수 절대치보다, 남들이 얻는 점수와 비교했을 때의 등수가 더 중요한 평가 방식이다. 절대평가 수능에서 1등급이 되려면 90점 이상을 맞으면 되지만, 상대평가 수능에서 1등급이 되려면 ‘상위 4%’ 안에 들어야 한다. 교육부는 과열된 석차 경쟁과 사교육 팽창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현재의 수능 상대평가 체제라고 봤다. “학생의 창의융합적 역량을 함양하고 자신과의 경쟁을 통한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남과의 상대적 순위와 상관없이 성취 기준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절대평가 체제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라는 게 교육부의 판단이다.

ⓒ시사IN 이명익8월16일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2021학년도 수능 개편 시안 2차 공청회’ 참석자들이 상반된 주장의 팻말을 들고 있다.
두 가지 안을 내놓았다. 각각 지난해와 올해부터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뀐 한국사와 영어 과목에 더해, 통합사회·통합과학(신설 과목)과 제2외국어·한문(선택 과목) 과목만 먼저 절대평가 목록에 추가하는 것이 1안이다. 국어, 수학, 탐구(사회·과학·직업 중 택 1) 과목은 지금처럼 상대평가 체제를 유지한다. 반면 2안은 모든 과목을 한꺼번에 절대평가로 바꾸는 방안이다. 애초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은 2안이었다. 일종의 ‘타협안’인 1안을 함께 내놓은 이유에 대해 교육부는 “각계각층으로부터 여론을 수렴한 결과, 수능 절대평가에는 모두 공감했지만 대입 안정성 차원에서 신중한 의견이 다수임을 고려했다”라고 밝혔다.

정도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어느 안이 확정되든 수능 시험의 위상은 지금보다 약해질 것이다. 남이 나보다 한 문제 더 맞히면 등급이 떨어지는 상대평가 제도보다, 일정 정도 실력만 갖추면 안심하고 등급을 유지할 수 있는 절대평가 아래에서 수험생은 굳이 ‘문제 하나라도 더 맞히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적다.

그래서 수능 절대평가 전환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수능 절대평가가 공교육 정상화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8월16일 공청회 토론자로 나선 문동호 광주여고 교사는 “현재 학교에서 고3 교실은 사실상 ‘수능 대비반’이다. 수능 절대평가로 점수 경쟁이 조금이라도 완화되면 지금의 수능 문제풀이식 수업이 줄고 학생 참여형 수업 등 질 높은 공교육으로의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능 절대평가에 찬성하는 측은 교육부가 제안한 타협안, 즉 ‘일부 과목 절대평가 전환’ 내용을 담은 1안에 매우 비판적이다. 국어·수학·탐구 과목을 여전히 (점수 경쟁의 여지가 큰) 상대평가로 남겨놓기 때문에 ‘풍선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는 “(1안대로 갈 경우) 특히 수학에 대한 집중 현상이 극대화돼 수학 사교육이 증폭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더불어 절대평가 9등급제가 아닌 5등급제 전환 요구도 나온다. 5등급 정도로 변별력이 약화되어야 입시에서 수능의 지배력을 낮출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연합뉴스2016년 11월17일 치러진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고사장 모습.
일부 상대평가를 유지하면 ‘풍선 효과’ 우려

반대편에서 ‘수능 절대평가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도 풍선 효과를 이야기한다. 이들은 수능 경쟁에서 누른 압력이 내신 경쟁으로 튀어나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8월16일 공청회장에서 전라북도 고등학교 1학년생의 학부모라고 밝힌 한 방청객은 말했다. “수능으로 인한 과도한 경쟁 완화, 암기식 문제풀이를 지양한다고 하는데 정말 과도한 경쟁과 암기를 유도하는 건 내신 경쟁 아닌가요? 우리 아들 보면 내신 0.1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고 비교과 수행평가 준비하느라 쉴 틈이 없어요. 내신을 먼저 절대평가로 바꾸는 게 맞는데 특목고·자사고 무서워서 언급도 못하는 거 아닌가요?”

수능이야말로 가장 ‘공정한’ 입시제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반대한다. 한날한시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문제로 치러지는 수능 시험은 명확한 점수 하나로 깔끔하게 줄을 세우기 때문에 ‘개천에서 용 나는’ ‘서민의 길’(실제 손 팻말 구호)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서민의 길’ 반대편에는 ‘금수저 꽃길’ 학종(학생부 종합전형)이 있다. 이종배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대표(전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모임 대표)는 말했다. “지금 학교에서 학종이 공정한 기회를 주고 있나? 특정 학생에게 상 몰아주고 자기소개서 돈 주고 지어내고,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만 가중시킨다. 앞으로도 학종이 공정하게 시행될까? 우리나라 같은 혈연·지연·학연이 강한 국민성과 문화로는 제도가 불투명하면 결과 역시 불투명해지게 되어 있다.”

‘수능은 공정하고 학종은 불공정하다’는 명제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존재한다. 손철수 인천 안남고등학교 교감은 “학종으로 대학의 학생 선발에 다양한 트랙이 생겨나면서, 과거의 성적 위주 입시에서는 한계에 부딪혔던 일반고가 분명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학종을 통해) 각계각층을 충분히 선발할 수 있게 바뀌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줄로 달리면 1등부터 꼴찌까지 모두 줄 세워야 하지만, 360° 모든 방향으로 각자 달리면 모두가 1등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학종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며(경희대 입학전형연구센터 ‘2015학년 입학생의 전형별 가구 소득 차이’), 오히려 수능 성적이 부모 소득에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2016년 경기도교육연구원 ‘통계로 보는 교육정책’)도 있다.

하지만 이범 교육평론가는 “수능에 비해 학종의 불공정 요인은 훨씬 ‘가시적’임에 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누구누구가 경시대회를 노리고 학원을 다니더니 상을 휩쓸어가더라, 학교에서 ‘될 놈들’에게 학생부를 잘 써주더라, 친구가 300만원짜리 컨설팅을 받아 논문을 쓰더니 상을 받거나 교과 세특(세부능력 특기사항)에 기재되더라 등등 학종의 불공정함은 수능보다 훨씬 ‘투명하게’ 드러난다. 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체험하고 목격하는 일이기 때문에 체감되는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것이 한정돼 있고, 모두가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현실을 바꾸지 않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입시 제도 개편이란 결국 ‘차악’을 선택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학교와 국가가 학생들을 ‘공정하게’ 한 줄로 세워놓으면 대학들이 힘 안 들이고 쏙쏙 위에서부터 학생들을 뽑아가는 현재의 시스템을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들쭉날쭉 흐트러져 있는 대오에서 전략만 잘 짜면 능력 대비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는 ‘불공정성’을 감안하고서라도, 교육의 본질에 맞게 학생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선을 다양화해야 할까? 지금의 중학교 3학년 학생들부터 적용받을 2021년 수능 개편안은 오는 8월31일 확정 발표된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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