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지난 수년간을 고시촌에서 노력해왔습니다. 그런데 번번이 좌절했고 결국 그 결과에 승복해서 시험을 그만뒀고, 그 결실을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와서 맺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것이 오늘날 이 땅의 청년 구직자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11월23일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안’ 공청회장. 한 인천공항 정규직 사원의 발언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난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했을 때 정일영 인천공항 사장은 “공항 가족 1만명 모두를 금년 내에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시점에, 정규직 전환 형태와 방식에 대한 연구용역 중간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 정규직 사원은 ‘정의’를 이야기했다. “수많은 청년 구직자들을 생각할 때 이것이 도대체 정의로운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이란 인천공항 용역업체 노동자들 가운데 부적격자만 걸러내고 인천공항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말한다. 그는 “공정 경쟁, 공개 채용이란 원칙”이 “우리가 그동안 쌓아오고 지켜왔던 사회적 합의”라고 말했다. 마지막은 이렇게 맺었다. “오늘은 수능 날입니다. (중략) 우리 후배 세대가 좌절하고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오늘의 우리가 현명하고 책임 있는 판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봅니다.” 이날 인천공항 정규직 노동자들은 ‘결과의 평등 NO! 기회의 평등 YES!’ ‘무임승차! 웬 말이냐! 공정 사회! 공개 채용!’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반발하며 정규직 노조가 든 피켓(왼쪽)과
장기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노조 위원장.

공정, 정의, 기회의 평등. 인천공항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조건을 말할 때 사용한 단어들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주장하는 정규직 사원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주제 앞에서 한 번도 ‘반대’를 표방한 적은 없다. 한국노총 소속의 장기욱 인천국제공항공사(정규직) 노조위원장은 〈시사IN〉과 만나 “비정규직 철폐에 분명히 찬성한다. 저희는 원칙만 이야기했다”라고 말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조건에 관해 이들에겐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 있다. 장 위원장은 그 원칙을 이렇게 요약했다. “직접고용을 요구하려면 공개 채용을 거쳐라.”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조 처지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원칙’이다. 2017년 3분기 기준 인천공항 소속 정규직은 1252명, 파견·용역(비정규직) 노동자는 8067명이다. 인천공항에서 체크인을 하고 짐을 부치고 화장실에 들르고 보안검색을 거치는 동안 만나는, ‘인천공항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 10명 중 8명 이상(86.6%)이 비정규직이다. 이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약 3700명이 가입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정규직 전환 방식에 대해 인천공항 직접고용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회사를 통해 고용하는 형태는 조건부로만 논의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직접고용이든 간접고용(자회사 고용)이든, 채용 절차는 부적격자만 걸러내는 수준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본다. 한재영 ‘인천공항지역지부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위한 대책회의’ 대변인은 “정부 가이드라인상 ‘현 근로자 전환’이 원칙이다. 경쟁 채용을 하면 반드시 해고자가 발생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가 보기에 이는 ‘정의롭지 않은’ 요구다. “현 근로자 전환이 원칙이라는 건 맞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 정규직이 왜 꼭 직접고용이어야 하죠?(장기욱 정규직 노조 위원장)”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5월12일 인천공항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정부가 7월20일 발표한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보면, 정규직 전환은 현 근로자 전환(현재 비정규직 근로자를 우선 정규직으로 전환)을 원칙으로 하되 “전문직 등 청년 선호 일자리”의 경우 “제한 경쟁, 공개경쟁(가점 부여) 등 적합한 방식을 채택”해 형평성을 고려하라고 되어 있다. 시험과 같은 공개경쟁을 거쳐야 한다는 ‘전문직 등 청년 선호 일자리’에 인천공항 비정규직 직군이 포함될까? 인천공항 정규직은 정규직 전환 형태가 직접고용일 경우 청년 선호 일자리에 해당하므로 기존 비정규직 직원들도 가점만 받고 공개 경쟁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사 정직원 자리는 누구나 다 선호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그럼 이 자리는 절차를 거쳐서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장기욱 정규직 노조 위원장)”

“7년간 일했는데 이제 와서 시험 보라는 건가”

‘공사 정직원이 될 자격’을 부여하는 절차란 ‘시험’이다. 인천공항에는 일반직 외에 ‘안전보안직군’이라 부르는 현장직 사원 약 100명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는 용역업체에서 일하다 ‘가점도 없이’ 시험을 보고 들어오는 이들이 상당수 있다. 정규직 노조에 따르면 올해 이렇게 들어온 이들이 24명이라고 한다. 이 직군은 원래 기간제 노동자였다가 정규직화되었는데, 그때도 시험을 거쳤다고 한다. 용역업체 소속이던 폭발물처리반(EOD)은 올해 정원(TO)을 확보해 공개 채용했다. 용역업체에 근무하던 이들 중 일부만 합격했다. 지금껏 그래왔기에, 시험을 치르지 않고 정규직이 되는 것은 자격 없는 이들이 받는 과도한 보상, 곧 무임승차라는 주장이다.
 

ⓒ시사IN 이명익2013년 12월19일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이 고용 보장 등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다.

공항운영·시설관리·보안검색·보안경비 등 지금의 용역 노동자들이 맡은 업무 대부분은 인천공항에 필요한 ‘상시·지속 업무’다. 정부 가이드라인상 정규직 전환 대상이다. 이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자격’은 정말 ‘시험’으로 측정해야 하는 것일까. 비정규직 노조의 생각은 다르다. 한재영 대변인은 “인천공항 용역 노동자들은 평균 7년간 이곳에서 문제없이 같은 일을 해왔다. 그중에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절반 수준을 받고 힘든 조건에서 일해온 사람들도 있다. 이들 모두에게 이제 와서 시험을 보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만일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자격’이 기준이라면, 같은 사업장에서 계속 그 일을 수행해왔다는 사실이야말로 자격의 증거라는 것이다. 소속이 바뀐다고 해서 이들이 하는 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시험이라는 것은 정규직 전환 가운데서도 직접고용 전환에만 강하게 요구된다. 인천공항 사용자 측은 직접고용 시에는 시험을 봐서 경쟁하되, 자회사 등 별도법인 고용 때는 최소 심사만 한다는 방침이다. 하는 일은 같은데 소속이 다르면 시험을 봐야 한다는 얘기다. 정규직 노조 주장도 비슷하다. 장기욱 정규직 노조 위원장은 자회사도 공개경쟁 채용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입장이 없다. 비정규직이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결국 직접고용일 때만 필요한 시험이다.

왜 자회사로 가면 시험이 필요 없고 직접고용할 때에는 시험이 필요한가. 이 시험은 무엇을 위한 시험인가. 시험을 통과한 인천공항 정규직 노동자들이 무엇을 얻고 있는지에 그 답이 있다. 공공기관 알리오 공시 자료를 보면, 인천공항 정규직 직원의 1인당 평균 연봉은 2016년 결산 기준 8853만5000원이다. 이 가운데 경영평가 성과급이 951만6000원이다. 신입 사원 초임은 4215만5000원으로 공기업 가운데 8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근속과 직급에 따라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형 임금체계다. 공공기관이어서 정년 60세를 적용받는 이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2.66년이다.

반면 똑같이 인천공항에서 일하지만 시험을 치지 않아 ‘자격’을 얻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처우가 많이 다르다. 이들은 1년마다 근로계약서를 쓰고 3~5년마다 용역업체가 바뀐다. 오래 일해도 정규직만큼 가파르게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 평균 연봉은 3315만원 수준(2017년 상반기 23개 용역 2151명 급여명세서 기준, 황선웅, 〈인천공항 간접고용 비정규직 임금 실태와 개선 방안〉)이다. 하는 일의 차이에 비춰볼 때 이 같은 격차가 정의로운지 한국 사회는 제대로 답한 적이 없다.

인천공항의 수익은 효율적 경영뿐 아니라 독점권으로부터도 나온다는 점에서 ‘렌트(rent·지대)’에 가깝다.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렌트’를 누릴 ‘자격 있는 소수’를 결정해온 것이 공개 채용(시험)이다. 인천공항 올해 하반기 채용의 마감 당시 일반직(채용형 인턴) 전형 경쟁률은 210대 1을 기록했다. 서류-필기-1차 면접-2차 면접이라는 이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온, 성 안에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다른 경로를 통해 들어오겠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장은 업무 수행 능력과 관계없이 ‘불의’ ‘불공정’과 다름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쌓는 데에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이들은 비정규직의 울타리가 자신들의 요새 ‘바깥’에 둘러쳐져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장에 대해 정규직 노조가 “자회사는 왜 싫은데요?”라고 되묻는 이유다.

정규직으로서는 요새 안이 넓어질수록, 요새 안 사람 수가 늘어날수록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줄어든다. 그래서 정부 가이드라인이 ‘직접고용이 원칙’이라고 명시한 생명·안전 업무의 범위도 좁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회사 측 연구용역은 이 범위를 매우 좁게 해석해 항공기 운항과 항행 시설·시스템 안전관리 용역 854명만을 직접고용 인원으로 해석했다. 비정규직 측 연구용역은 4504명을 직접고용 범위에 넣었다.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측 연구용역이 제시한 직접고용 규모가 과하다고 생각하며, ‘생명·안전 업무 범위’를 정부가 먼저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천공항을 위해 상시·지속 업무를 해왔고 앞으로 할 것인데 시험 없이는 인천공항 정직원이 될 수 없다는 말에서 비정규직들은 ‘신분제’를 떠올린다. 정규직 전환 방안 공청회에서 눈물을 보였다가 야유를 받은 오순옥 인천공항지역지부 수석부지부장은 “그동안 열심히 공항 서비스 평가 1등을 만들어왔는데…. 조선 시대 양반과 노비가 이런 건가 싶었다”라고 말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추진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런 갈등은 인천공항만의 사례가 아니다. 서울교통공사에서도 무기계약직 직원을 연내 정규직화(처우를 정규직 수준으로 개선)하는 데 대해 젊은 정규직 사원들이 지난 9월부터 ‘특혜성 정규직화’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껏 일해왔고 앞으로 일할 것만으로는 ‘정규직’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인정받지 못한다. 높은 고용 안정과 호봉제로 대표되는 정규직의 자격은 ‘직무’보다는 ‘입직 과정’이 결정한다는 통념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사회학)는 공공부문 정규직 일자리가 지닌 특권적 지위를 지적했다. 정 교수는 “공기업이 여타 부문과 비교해 생애소득 면에서 좋은 일자리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갈등이다. 민간 부문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며 가지 않으면 결국 특권적 지위가 늘어나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결과도 초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12월26일 인천공항 노·사·전문가협의회가 정규직 전환 규모와 방식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했다. 소방대, 보안검색 등 2940명은 인천공항공사가 직접고용하고 시설관리와 기타 분야 약 7000명은 자회사를 설립해 고용하기로 했다. 공사 직접고용의 경우 관리직 미만은 면접과 적격심사 후 전환채용하고, 관리직 이상은 제한경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자회사는 전환 채용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이 현 집행부를 사실상 불신임 결정하는 등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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