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양치기로 산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면 현관 가까운 데 잠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한대. 이유가 뭔지 알아? 자신과 한평생을 함께한 개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생각이 진정으로 위로가 되기 때문이래.” 한 해가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올해 내가 들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정혜윤이 〈인생의 일요일들〉에서 전해준 이 양치기 얘기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리 외로운 사람도 곧 친구를 만나 밤새 대화하고 휴식을 취한 후 곧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또 누군가의 생은 저물어가고 여전히 세상은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 냉정함이 세계의 본질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무관심과 덧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온 우주에 흰 눈이 포근하게 내려앉는 것 같다.

“매일매일이 일요일 같기를 바랐어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일상과는 조금 ‘다른 시간’, 그 시간을 계속 넓혀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다른 시간’ 속에서라면 이 세상에 있는 것이 덜 힘듭니다.” 〈인생의 일요일들〉은 에피다우로스, 모넴바시아, 타이게토스 산, 스파르타를 아우르는 그리스 여행기인 동시에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서이다. 실제로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책에서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허전한 느낌이 들면 아무 곳이나 펼쳐서 다시 읽곤 했다. 그럴 때마다 금세 기분이 좋아지고 고양되는 경험을 했는데 아마도 그것은 아름다움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친 밤 집에 도저히 바로 들어갈 수 없어서 골목을 헤매고 다니던 나 역시, 느닷없이 내리는 함박눈을 한참 바라보다 보면 해결할 수 없어 보이던 것들을 다시 마주할 힘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저는 미스트라 성채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 봤어요. 하늘에는 솔개가 세 마리 날고 있었어요. 저는 하늘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어요. 그러자 플라톤 생각이 절로 났어요. 플라톤은 꿈꾸는 도시가 앞으로 영원히 지상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유토피아를 믿는 사람은 지상에서도 그 도시의 법칙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저자는 늘 눈여겨보기 위해 떠나는 탁월한 여행가들이 있고 그들은 자기 자신조차도 하나의 국경선처럼 뛰어넘으려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얻게 되는 것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힘이라고. 〈인생의 일요일들〉은 그간 그의 책들 중에서 가장 정혜윤 자신에 가까워진 책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에 관한 책이며 모차르트 음악처럼 경쾌한 생명력을 주는 책이다. 경계를 넘어가서 자아를 버리고 가벼워지자고 우리를 유혹한다. 더 많이 관찰하고 더 자주 감탄하자고, 그리스 곳곳에서 제비처럼 말을 건다.

기자명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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