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했다. 1월에는 늘 그렇듯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고르게 되고,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궁리하게 된다. 얼마 전에는 기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짝꿍의 강력한 만류, 핀잔과 어르고 달램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줄넘기를 샀다(음, 일단 웃어도 된다). ‘1월1일은 빨간 날이니까, 1월2일부터 주 3회 줄넘기하는 사람으로 거듭나자’ 마음먹었지만 고개가 바로 끄덕여지지 않았다. 원래 1월의 결심은 고개를 바로 끄덕이는 결심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아직 2월 새해가 있고, 3월 새봄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앞의 문장을 조금씩 변주하여 재작년 1월에도 작년 1월에도 어딘가에 써먹었다. 그러니까 내게 1월의 결심은 바로 결제되는 예약이 아니라 ‘결심 예약’ 같은 게 아닐까 싶다. 1월에는 정말이지 뭐든지 일단 마음을 먹어보게 된다.
어젯밤에는 시하가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은 비빔국수 사진을 보고 참을 수 없어 한동안 끊었던 야식을 (그래 봤자 냉동 핫도그 하나를) 먹었다. 2018년에는 종종 야식을 먹는 인간이 되자고 결심했다.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던 것을 더는 하지 않기로 했다. 대청소와 빨래를 처리하듯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대신에 이불 속에서 더 안전한 잠에 빠져 지내리라. 대략 한 달 전쯤에는 직장인 건강검진 결과보고서에 승복하지 못하고 피검사를 다시 한번 받았다. ‘고지혈증 이상 소견 없음’이라는 판정이 나오자마자 나는 내년에도 ‘치맥형’ 인간이고자, 운명을 따르기로 했다. 이쯤 되면 지난해보다 조금 더 마음을 다해 대충 살자는 것이 올해의 큰 그림이 될 것 같다.
올해도 더 열심히 게을러지자
더 먹고 더 자고 더 마시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결심 따위는 1월에 가능한 것이다. 2월, 3월에는 모르긴 몰라도 덜 먹고 덜 자고 덜 마시는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다시금 결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년에는 12월부터 덜 하고자 결심했더랬다. 이런 추세라면 2월에도 나는 덜 하는 인간이 아니라 더 하는 인간이 되어 살고 있을 테다. 결심을 일삼는 자가 결심하지 않는 자보다 긍정적인 자다. 그러나저러나 우리가 하게 되는 새해의 결심이란 후회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기대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12월31일과 1월1일은 단 하루 차이일 뿐인데, 어떤 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금세 태세를 전환하여 끊을 건 끊고 시작할 건 시작하고 정리할 건 정리하는 인간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 이들에게 결심은 단호한 것일까, 단호해야 하는 것일까.
오늘 새벽에는 꾸역꾸역 쓰던 글을 모조리 지워버리면서 언제부터 글 쓰는 일이 마감 날짜에 맞추는 일이 되었나, 회한에 젖었다. 글을 쓰며 사는 일을 한순간도 불행으로 여긴 적이 없다. 그런데도 생활에 밀려 글이 자꾸 뒷전으로 밀려날 때면 괴로운 심사가 되었다. 생활을 글의 뒷전으로 미루어놓던 때도 있었다. 그때라고 해서 더 바지런히 쓴 것 같지도 않고, 그때에도 난무하는 결심을 쳐내느라 바빴는데도 당시에는 쓰는 일만은 뒤로 미루지 않았던 것 같다. ‘써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쓰는 사람이 되자.’ 방금 따끈따끈한 결심을 했다. 이런 결심은 덜 하고자 하는 것일까, 더 하고자 하는 것일까. 나에게는 덜 하는 일이지만, ‘글빚’을 지고 있는 출판사 편집자에게 나의 결심은 더할 나위 없이 본인의 시름을 더는 ‘너의 결심’일 것이다.
한때는 연례행사였으나, 이제는 친구들과 모여 앉아 새 다이어리를 꾸미지 않게 되었다. 짬을 내어 서로의 미래를 응원하는 일을 음주가무의 도입으로 삼던 때가, 올 들어 가장 쓸데없는 짓처럼 느껴진다는 후기 속에서도 기쁨에 겨워 다이어리 속지를 꾸미던 내 모습이, 계획하는 인간이고자 하루 반나절을 무용(無用)하게 쓸 줄 알았던 우리가 새삼 그립다. 2018년 1월. 지금 나는, 우리는 또 어떤 결심을 준비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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