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운명 같은 만남, 멋진 연애를 꿈꾼다. 나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 사랑은 한없이 지질하고 초라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사랑에 좌절했을 때면 주변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사랑은 철저히 개인적 경험의 영역이어서 일반화한 조언은 유명무실,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작가 토니노 베나퀴스타는 어떻게 이 상징으로 가득한 엉뚱한 사랑 이야기를 쓴 걸까? 세상 모든 사랑을 경험한 걸까? 작품을 대하다 보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 책에는 단 12컷으로만 구성된 사랑의 단편 17편이 실려 있다. 나쁜 남자의 순애보, 정반대 개성을 지닌 남녀의 어울림, 쇼윈도 부부의 숨겨진 비밀, 방탕한 부부의 순정, 못생긴 여자를 사랑한 남자의 행복, 동성애자 부부의 해프닝,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두 다 아는 세상의 인연 등 각각의 에피소드는 짧다. 하지만 그 속에 숨은 함의는 엄청나서 독자에게 주는 울림이 크다.

작가의 수상 경력이 워낙 화려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문학 부문에서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 잡지사 엘르(Elle), 문학잡지 리르(Lire)와 방송국 RTL 등이 주는 상을 받았고, 만화 부문에서 르네 고시니 상, 알베르 우데르조 상을 받았으며 영화 부문에서도 두 차례나 세자르 상을 수상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소설보다 영화 원작을 통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모두 열거하기 벅차니 뤽 베송 감독의 〈위험한 패밀리〉만 언급하자. 액션과 코믹, 감성과 서사를 안배해서 관객의 주의를 사로잡은 영화의 원작처럼 이 책에 수록된 에피소드 역시 단편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정교한 복선과 탄탄한 서사, 놀라운 반전으로 빛을 발한다. 독자는 심상찮은 서사의 전개에 빠져들고 긴장한 상태로 감정의 기복을 겪다가 마지막 순간에 ‘쿵!’ 하고 떨어지는 반전을 맛본다. 때로 가슴 뭉클하고, 때로 감상에 젖었다가 갑자기 경악하거나 미소 짓게 하는 힘은 역시 저자의 놀라운 문학적 재능에서 비롯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때로 뭉클하고, 때로 미소 짓게 하는…

그림은 또 어떤가. 명문 국립고등예술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림 작가 자크 드 루스탈은 선과 구성을 매우 정교하게 다룬다. 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을 두고 야수파나 영국의 팝아트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인접성을 자주 언급하듯이 색채는 만화라기보다 현대 회화에 가까운 강렬한 표현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랑수업,17가지별난사랑이야기〉
토니노베나퀴스타 지음
자크드루스탈 그림
이나무 옮김
이숲 펴냄

가로로 긴 이 책은 한 면에 두 컷을 배치했다. 독자의 시선을 그림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규칙적인 하단 지문과 드문 말풍선으로 전개되는 서사는 문학성을 배가한다. 한 컷 한 컷이 포스터 같은 완성된 독립성을 띤다. 화가가 오랜 세월 유명 잡지의 표지나 홍보 포스터 작업을 해온 덕이다. 그는 정지된 시간 속에 고착된 듯이 동작이 배제된 인물을 정적으로 묘사했다. 일반적으로 만화에서 볼 수 있는 역동성보다 예술 작품에서 볼 법한 살아 있는 존재로 보이게 만들었다. 

뛰어난 그림 작가와 글 작가의 만남으로 탄생한 만화책이니 이 또한 운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쓰게 하는 만화. 이 엉뚱하고도 기발한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아마도 늦은 밤 침대에 누운 채, 더 많은 사랑의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나갈 것이다. 내 사랑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때로 아팠고 지질했지만, 소중한 미완으로 남겨진 나만의 이야기를.

기자명 김문영 (이숲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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