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7월6일 한국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제123차 연차총회 때였다. 2003년과 2007년 거푸 고배를 마신 뒤였으니 삼수 끝에 이룬 쾌거였다. 당시 이 대통령은 직접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해 “평창이 올림픽을 유치한다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7월6일은 홍준표 현 자유한국당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지 사흘 뒤였다. 당시 홍 대표는 며칠 뒤 이명박 대통령을 찾아가 “우리가 평창올림픽을 유치하기도 했고 평창이 접전지역이기도 하니 남북관계를 전향적으로 풀어야 하지 않겠나”라는 취지로 건의했다고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은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과 야당인 민주당의 협조로 이뤄진 경사였다. 2010년 6월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당시 박근혜·나경원 의원 등 여야 의원 284명이 공동 발의한 ‘2018 평창올림픽 유치 지지 결의안’에도 그 취지가 잘 나타나 있다. 이 결의안에는 ‘동계올림픽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대한민국의 평창에서 개최될 경우 동북아 평화와 인류 공동 번영에 크게 기여함과 동시에 IOC가 지향하는 세계 평화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 구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사IN 신선영1박2일 일정으로 방문한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 등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을 둘러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2011년 12월29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대회 및 장애인동계올림픽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이 법에도 ‘대회를 통한 남북 체육교류’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대회를 통해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 증진에 노력해야 한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남북 단일팀 구성 등에 합의가 이뤄지면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와 남북 단일팀 추진은 자유한국당(당시 한나라당) 집권기인 이명박 정부 때 법률로 뒷받침된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이어받아 집행하고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추진하고 기획한 자유한국당이 야당이 되었다고 태도를 바꿔 ‘평창올림픽은 평양올림픽이 됐다’라고 비판하면 제 얼굴에 침 뱉기가 아닐까?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한 공세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때가 있는 법이다. 자신들의 집권 9년 동안 남북관계가 파탄났고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북핵 위기로 전쟁 위기의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주한 미군 홈페이지미국 해병대 특수부대와 해군 특수부대가 한반도 근해에서 공수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이 매일 증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프로그램을 정지시키기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시한은 ‘3개월’이라고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CIA가 제시한 3개월은 북한이 ICBM의 본토 타격 능력을 갖추기 전에 미국이 군사력으로 이를 제거할 수 있는 기한을 말한다.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3개월이라면 바로 평창 동계올림픽 직후에 해당한다. 지난해 12월 말 일본 언론의 워싱턴 특파원들 사이에 평창 동계올림픽 직후 미국의 북한 공격설이 퍼졌다. 심지어 국내 거주 미국인들이 지난해 크리스마스 연휴를 계기로 미국으로 건너간 뒤 돌아오지 않으면 공격이 임박했다는 징후로 봐야 한다는 말도 퍼졌다. 미국과 북한, 동아시아 문제를 연구해온 김영진 조지워싱턴 대학 명예교수는 국내 한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이 시한을 6개월까지 늦춰 보기도 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3개월에서 최대 6개월이 미국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라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22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바람 앞의 촛불을 지키는 심정으로 (남북)대화를 지키고 키우는 데 힘을 모아달라”고 할 만큼 상황은 절박하다. 남북이 올림픽을 화두로 접점을 모색하는 이 시점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 먹구름’은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미국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2월9~25일 약 2주간의 평창올림픽 기간에 한반도의 명운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위기감이 과장됐다고 느낄 수도 있다. 미국의 역대 정부도 북한 정권의 교체(레짐 체인지)나 핵시설에 대한 정밀타격을 거론했지만 모두 말로 그쳤다. 북한이 서울이나 도쿄에 대량 보복할 게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공격은 사실상 전면전을 의미했다.

ⓒ연합뉴스1월17일 천해성 통일부 차관(오른쪽 두 번째)과 북측 단장인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차관급 실무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 역시 이런 제약 조건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 그 제약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논리를 개발하고 공격 방법을 연구하고 법적·제도적 정비를 진행해왔다는 점이다. 미국이 지난해 11월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한 배경은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김정남 살해 사건이나 미국 청년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이 빌미가 됐다는 정도로 알려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근거’가 필요하다. 기존 선제공격론이나 예방폭격론의 경우 의회 동의 여부를 두고 미국 내에서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8월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 발언 직후 미국 의원들 사이에서 ‘선제공격론’ 개시 절차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민주당은 대통령이 의회에 공식적인 무력 사용 승인안을 제출해야 가능하다고 보았다. 반면 공화당은 의회 동의 없이 단기적인 군사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란을 비켜갈 방법이 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면 그 자체로 북한 공격에 대한 법률적 뒷받침이 가능해진다. 9·11 테러 직후 의회가 승인한 대통령의 대(對)테러 무력사용권(AUMF)에 따라서다. AUMF에 따르면 대통령은 테러를 계획·승인·감행한 이들과 조력자들을 대상으로 무력을 포함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시리아 공습이 AUMF에 따라 이뤄졌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면 의회 승인 없이 공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격하겠다는 것인가. 지난해 9월18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서울을 중대한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대북 군사옵션이 존재한다”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즉흥적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지난해 트럼프 정부 출범 직후 북핵 문제 해법의 일환으로 군사옵션을 검토하면서 줄곧 견지해온 입장이다. 트럼프 정부의 북핵 문제 해법 모색은 지난해 2월 하순 캐슬린 맥팔런드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 주도로 이뤄졌다. 그녀는 레이건 행정부 등 역대 3개의 공화당 정부에서 안보 전문가로 근무했고 보수 성향인 〈폭스뉴스〉에서 안보 분야 애널리스트로 활약하다 발탁되었다. 강경파로 알려진 맥팔런드는 오바마 정부의 접근 방식에 비판적이었다. 당시 그녀는 군사 안보 부서의 대표들을 백악관에 소집해 외교적 접근에서 군사적 대응까지 망라한 북핵 대응책을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초부터 매슈 포틴저 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각 부서에서 올라온 제안을 검토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억지’라는 개념의 대북 군사옵션의 방향이 정해졌다. 특정 타깃에 제한 공격을 가함으로써 북한의 반격을 억지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6일 미·중 정상회담 당일 감행한 시리아 화학무기 공장에 대한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이 바로 그 본보기이다. 미국이 화학무기 공장을 파괴했어도 시리아는 반격을 하지 못했다. 반격하면 미국으로부터 더욱 큰 공격을 당하기 때문이다. 북한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한국이나 일본에 대해 보복하면 제한 공격이 아니라 김정은 정권 종식을 겨냥한 전면 공격으로 전환한다는 군사옵션이다. 제한 공격의 제1차 타깃은 북한 북서부의 미사일 기지다. 유인 내지 무인 항공기로 폭격한다. 핵시설은 북한 전역의 산악 지역에 은폐돼 있어서 공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미사일 기지만 파괴해도 ICBM에 핵탄두를 장착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능력을 현저히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주일 미군기지 이용 않는 옵션 집중 훈련

북한 미사일 기지에 대한 제한 공격을 일관되게 검토하고 있다는 점은 지난해 12월20일자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 보도에서도 확인됐다. 이 신문은 당시 ‘트럼프 행정부 내 현 상황에 정통한 3명의 전·현직 관리들’을 인용해 “미국이 북한에 대해 시리아식 공습 계획을 추진 중”이며 그 군사옵션 가운데 “북한 측이 이용할 새로운 미사일 시험발사 장소와 비축된 무기들을 사전에 파괴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라고 보도했다.

최근 들어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얼마 전 워싱턴을 방문한 국내 안보 전문가는 워싱턴에서 ‘코피 터뜨리기(bloody nose)’라는 군사옵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1월19일자 미국 언론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를 ‘코피 전략’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린아이들 싸움에서 먼저 주먹을 날려 코피를 터뜨리면 상대방이 전의를 잃는다는 점에 착안한 제한적 선제타격 전략이다. 현재 미국이 구상하는 대북 군사옵션은 미사일 기지 폭격뿐 아니라 오바마 정부에서 시도했던 사이버 공격을 통한 미사일 발사 방해,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용 3000t급 잠수함이 건조되면 드론을 이용해 폭격하는 방법 등 20여 가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국은 주일 미군기지를 이용하지 않고 본토에서 직접 병력이 이동해 공격하는 방법을 집중 훈련하고 있기도 하다. 1월14일자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미국 네바다 주 상공에서 제82공수사단 소속 병사 119명이 C-17 수송기에서 낙하훈련을 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8월 워싱턴 주의 훈련센터에서 이미 C-130 19대와 C-17 13대 등 30여 대의 수송기로 주일 미군기지를 거치지 않고 본토에서 직접 이동하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 해군도 구축함이나 순양함 수리용 도크를 가진 T-AOE-6라는 특수보급선을 활용하면 사세보나 요코스카 등 주일 미 해군기지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 주일 미군기지가 북한의 ‘인질’이 되는 상황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제한 공격에 북한이 반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가정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다. 민간 출신의 강경파들과 달리 미국 군부는 이 점에서 매우 신중하다. 북한의 반격 우려 때문에 실제로 미국이 군사 공격을 못할 수도 있다. 북한은 건국 70주년이 되는 오는 9·9절까지 평화 기조를 유지하다가 또다시 대규모 도발을 통해 사실상 미국이 공격할 수 없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위력을 과시할 수 있다. 미국도 이 같은 경우가 오면 대응책이 있다. 그중 하나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3일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핵은 미국과 동맹국뿐 아니라 중국·러시아 등 전 세계에 직접적인 위협이다. 한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이 핵으로 무장할 잠재적 위협은 중국에도 러시아에도 이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그의 말은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외교적 수사로 치부됐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할 수도 있다. 월터 러셀 미드 미국 바드 대학 교수가 지난해 9월4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에 그 정황이 잘 드러나 있다. ‘백악관 고위 참모 등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국) 일본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현 상태 유지가 미국 이익에 부합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그 지지자들은 북핵을 빌미로 미군을 아시아에서 빼고 대신 한국·일본·타이완을 핵무장시켜 북한·중국을 견제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큰 이익이라 믿고 있다.’ 결국 북한이 기존 핵보유국 노선을 계속 밀고 나갈 경우 부딪힐 현실은 둘 중 하나다. 미국의 코피 터뜨리기에 따라 말 그대로 코피가 터지거나, 아니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화로 그동안 쌓은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지금은 북한과의 대화에 몰두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대로 전쟁 위기의 한복판에서 ‘기적처럼 만들어진 대화의 기회’를 살려 북한에게 물어야 한다. “코피가 터지거나 공든 탑이 무너지는 길 말고 모두가 살 수 있는 제3의 길을 택할 의향이 없느냐”라고.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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