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들어야 할 말이 많은 한 주였다. ‘안경 선배’의 “영미!”라는 외침에 잠시 감격을 맛보기도 했으나 강원도가 스키장을 세우기 위해 밀고 파헤친 가리왕산 복원 계획을 산림청에 제출했다가 내용이 부실해 퇴짜를 맞았다는 소식을 접하며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무엇보다 자고 일어나면 터져 나오는 성폭력 가해자들의 범죄 사실은 너무 끔찍해서 한동안 할 말이 없어지게 했다. 누구나 할 말을 고심해야 하는 한 주였다. 주체적으로 말하기를 시작한(이어가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와 그 사람들과 기꺼이 한목소리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목격하면서 나 역시 반성과 다짐을 거듭했다. 내일은 담대하게 하소서, 라는 문장을 외고 다녔다.

지난해 봄,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증언과 연대가 한창이던 때에 ‘자수하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나는 그 글에서 원로 시인 아무개가 대낮의 강연장에서 행사 관계자인 한 여성에게 술시중을 들게 하던 모습을 밝혀 적으며, 많은 이들이 그런 짓을 원로 작가의 위트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까지 운동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피해 생존자들의 고발은 운동의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라고 썼다. 증언은 연결되고, 연결된 증언은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며, 그 흐름이 새로운 물길을 이룬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한 셈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이즈음 문화예술계를 넘어 교육계, 종교계, 의료계, 언론계 등등에서 연일 계속되는 ‘미투·위드유’는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을 보여준다. 그것이 지금·여기를 감각하는 가장 중요한 흐름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사IN 조남진2월1일 여성인권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근 ‘미투 운동’과 관련한 한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맞닥뜨렸다. ‘일부 젊은 남성 작가들의 줄서기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물음을 접하자마자 거의 동시에 언젠가 한 사람에게 들었던 다음과 같은 사실이 떠올랐다. 소설가이자 교수인 남성 A씨가 술자리에서 남성 제자들에게 전수해준 노하우. ‘만지고 싶은 여자가 있으면 모든 여자를 만져라.’

권력을 가진 남자 선생, 선배의 술자리 흥을 돋우기 위해 부러 ‘반반한’ 여성을 데려다가 앉히는 일은 비단 문학의 장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여성을 술자리의 ‘도우미’ 정도로 생각하는 문화나 분위기 속에서 어떤 사달이 벌어지는지를 이즈음 우리는 보고 있지 않은가. 특정한 집단이나 특정한 관계에 한정할 수 없는 이 곤란한 현실은 이른바 ‘강간 문화’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전수되고 유지되는지를, 장난삼아, 격려하듯,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쿨하게 이어지는 성폭력이 어떤 ‘학습된 망상’에서 연유하는 것인가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젊은 남성이 자신보다 ‘계급’이 높다고 생각하는 늙은 남성에게 ‘복종’하고 자신보다 계급이 낮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제물’처럼 바치는 일련의 과정은 가정(가부장제), 학교(반여성주의), 군대(군사주의)에서 단계적으로, 반복적으로 학습된 결과나 다름없다. 그런 의미에서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를 외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오늘날 가장 시급하게 귀담아들어야 하는 것이다.

내년 봄에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2월26일 한국여성단체연합 7개 지부 28개 회원 단체 주최로 열린 ‘#MeToo 운동 긴급 광장을 열다’의 구호는 “우리는 아직도 외친다. 이게 나라냐!”였다. 이전부터 성폭력 피해 경험 말하기는 지속되어 왔고 성폭력 사건 또한 끊임없이 발생했다는 엄연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폭력 피해 경험을 말한 여성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지지하며 우리가 직면해야 할 지점들은 생각보다 더 많고 넓고 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수많은 직면을 통해 우리는 우리 안에 내재한 더 많은 가능성을 ‘돌출적으로’ 그려보며 새로운 미래와 고요히 마주 앉아 서로의 말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내년 봄에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기자명 김현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