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이야기할 때면 셀 수 없는 부정적 질문과 의심이 자석처럼 달라붙는다. “네가 착각한 것 아니야?” “너무 예민한 것 같은데…” “남자도 많이 당해” “그러니까 그 시간에 거길 왜 갔어?” “너도 즐긴 것 아니었어?” 등등 현실을 회피하거나 왜곡한다. 심지어 명예훼손, 무고 등을 빨간 딱지처럼 남발하거나 ‘공작’의 날개를 푸드덕거린다.
얼마 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회의에서 성폭력에 안이하게 대응하는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말이 쏟아졌다. CEDAW는 “사회·제도적 편견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들이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폭로를 거짓말로 치부하거나 이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거는 등 남성 중심적인 조직 문화에서 비롯된 행태가 모든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죽여버리는, 침묵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2012년부터 2016년 사이에 성희롱 2109건이 보고됐는데, 단지 9건만 기소로 이어졌다. 왜 그런가요?”라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온 피해 사실을 의심하고, 흠집 내고, 공작에 활용하며 ‘없는 것’으로 만들어 도리어 여성들의 입을 막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순수성은 ‘누가’ 훼손하고, 그 기준은 ‘누구에 의해’ 성립되는가?
미투(MeToo) 운동의 순수성을 말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그 순수성은 ‘누가’ 훼손하고 있으며, 그 기준은 ‘누구에 의해’ 성립되고 있는가? 이 질문에 합당하게 대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미투 운동의 주체자, 유사 이래 가장 오래된 관습인 가부장 체제와 권력 구조에 함께 맞서는 동지가 될 수 있다. 미투 운동이 변질되거나 공작에 활용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하느라 주변에서 터지고 있는 아우성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누구도 당신에게 그런 ‘룰 메이커’ 혹은 ‘공정한 심판자’ 구실을 맡기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자신을 위해, 또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용기를 낸 이들을 믿고 곁에 서는 ‘편애’다. 평등이 해일처럼 몰려오고 있는데 (자신들만의) 중립과 정의를 외치며 앉아 ‘정파’라는 조개만 줍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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