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교수들이 많이 보는 한 신문에 칼럼이 실렸다. 대학교수이자 그 신문의 논설위원인 필자는 칼럼에서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제자가 생활비를 벌충하기 위해 청소 자격증을 취득하여 대학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자신의 학교를 청소하고, 경비하고, 정원을 가꾸는 등 육체적인 노동에 익숙해지는 일이 장학금 취득과 자립심 향상, 취업에까지 도움이 된다. 그 교수에게 묻고 싶다. 본인이 생각하는 ‘대학’이란 무엇인지?
최근 서울 시내 주요 대학들에서 재정난을 이유로 청소 노동자를 아르바이트나 근로 장학생으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심지어 어떤 대학에서는 정규직 청소 노동자가 빠진 자리를 해당 건물을 이용하는 대학원생들로 하여금 직접 맡아 청소하도록 하는 복안까지 세웠다고 한다. 우리 대학에서도 일방적으로 해고된 청소 노동자들이 몇 주째 합법적인 파업을 벌이고 있어 캠퍼스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가고, 연구동 화장실 양변기는 꽉꽉 막혀 있기 일쑤다. 하지만 그 광경들을 보면서도 사랑하는 내 모교를 직접 청소해야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 걸 보니 역시 나는 장학금·자립심·취업 따위와는 인연이 없나 보다.
만약 대학(원)생 아르바이트가 대학 내 대부분의 노동자를 대체하게 된다고 가정해보자. 고령의 경비 노동자도, 청소 노동자도 없는 대학. 그런 ‘매끈한’ 대학에서 학생들은 대체 무엇을 배우겠는가? 좋건 싫건 간에, ‘나’는 ‘남’들과 뒤섞여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계라는 것. 이 소박하고 준엄한 진리를 전제하지 않고 대학은 교육기관을 자처할 수 있을까?
전국 30만 대학원생의 명예를 위해 단언컨대, 대학원생은 청소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자취생인 내게 방 청소가 무척 귀찮은 일임은 부인하지 않겠다). 최저임금 인상과 학령인구 감소를 핑계 삼아 파견 노동, 불안정 노동, 초단시간 노동의 온상이 되어가는 대학의 현 상황이 싫은 것이다.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도 저렴한 노동력으로 취급당하는 대학원생의 처지에 염증을 느끼는 것뿐이다. 이러한 대학원생 처우의 열악함은 우리 사회가 청년 세대를 소외시키고 착취하는 방식과도 직결된다.
진정 대학의 위기를 초래한 것은 무엇인가
등록금 동결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재정난을 호소하면서도 매년 새 건물을 올리는 대학. 사기업보다 더 교묘하고 잔인하게 학생과 노동자를 탄압하는 대학을 보고 있자면 진정 대학의 위기를 초래한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쟁점마다 대학 측이 그토록 강조하는 재정난은 증상의 하나일 뿐이지 원인이 아니다. 진짜 대학의 위기는 대학이 어떠한 진리도 탐구하지 않게 되었을 때, 욕망을 좇아 폭주하는 세계에서 제동장치 구실을 할 청년 양성하기를 포기했을 때 도래한다.
스스로 붕괴해가고 있는 대학. 그 안에서 대학원생은 저임금과 갑질, 인격 모독에 시달리면서도 조교 노동, 연구 노동, 간사 노동을 통해 대학을 지탱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청소까지 시키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청소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대학원생은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립 서비스조차 사치스러운 시대가 된 모양이다. 차라리 우리는 시끄러운 대학, 버릇없는 대학, 지저분한 대학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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