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3월29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블랙박스를 회수하라’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지난해 12월 ‘스텔라데이지호를 찾아서’ 기사를 썼다(〈시사IN〉 제536호 ‘배가 두 동강이 났다’ 커버스토리 참조).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우루과이를 비롯해 브라질·아르헨티나·프랑스 4개국을 67일간 취재하고 돌아와서였다. 내가 귀국한 뒤에도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은 여전히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싸우고 있었다.

실종자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안타깝기만 했다. 스텔라데이지호 3등 기관사 문원준씨와 3등 항해사 윤동영씨는 둘 다 한국해양대 출신으로, 만 26세 동갑내기다. 선사인 폴라리스쉬핑 소속이었던 이들은 군 대체복무를 위해 스텔라데이지호에 승선했다가 실종되었다. 문원준씨는 2016년 한국해양대 졸업식에서 졸업생을 대표해 답사를 했다. 명예사관장(학생회장)인 그는 “온 국민이 가슴 아파했던 이 사고(세월호)를 우리는 누구보다 오래 기억해야 한다”라며 답사의 대부분을 세월호 참사 이야기에 할애했다. 아버지 문승용씨는 “대체복무자는 3년 복무 기한을 마칠 때까지는 다른 회사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국가를 위해 복무하다 실종되었건만 아무도 내 아들을 찾아주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윤동영씨도 한국해양대에서 촉망받는 학생이었다. 경북 영천에 사는 아버지 윤종률씨는 “동영이는 의지가 대단히 강한 아이다. 나는 한의대에 보내려 했는데 스스로 항해학과를 선택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두 아버지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 청와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해 3월31일 한국 시각으로 밤 11시20분 스텔라데이지호가 우루과이에서 3000㎞ 떨어진 해상에서 침몰했다. 이 사고로 필리핀 선원 14명, 한국인 선원 8명이 실종되었다. 길이 311.89m, 선폭 58m로 축구장 3개 면적을 합친 크기인 거대한 스텔라데이지호가 순식간에 침몰했다. 선사나 정부 모두 침몰 원인에 대해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광화문 세월호 4·16광장 한구석에 마련된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1년을 보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청와대에 민원을 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제1호 민원’이다. 지난해 내내 광장을 지킨 실종자 가족들은 유난히 혹독했던 더위와 추위를 이겨내며 진상 규명을 바라는 시민 10만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취재를 끝내고 돌아와 내린 결론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의 비밀을 풀 열쇠가 외국이 아닌 한국에 있다는 점이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책임은 노후 선박 안전 문제를 간과한 선사, 이를 관리 감독하지 못한 정부에 있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미스터리를 규명하는 문제는 선원들의 안전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지금도 스텔라데이지호처럼 유조선을 광석 운반선으로 개조한 노후 선박을 타고 오대양을 운항하는 선원이 1000여 명에 달한다.

〈시사IN〉 기사에 이어서 MBC 〈PD 수첩〉 ‘스텔라데이지호, 국가의 침몰’ 편 방송을 준비하며 나는 선원과 선박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스텔라데이지호에 대한 제보를 받을 수 있었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인 폴라리스쉬핑 소속 배를 타고 있는 가족들도 연락을 해왔다. 폴라리스쉬핑은 스텔라데이지호 외에도 스텔라유니콘호, 스텔라코스모호처럼 ‘스텔라’라는 이름이 붙은 스텔라 시리즈 배를 여러 척 운영한다. 대다수가 유조선을 광석 운반선으로 개조한 배다.

제보자 대부분은 익명을 원했다. 해양업계가 너무 좁은 바닥이라 만일 신원이 노출되면 다시는 이 업계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음성변조와 모자이크 대역 재연 등 보호 장치를 약속하며 제보자들과 만나야 했다.

ⓒ김영미 제공
우루과이 기자협회 소속 기자에게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건을 취재 중인 김영미 PD(왼쪽).

“스텔라데이지호에는 배 설계도가 없었다” 

사고가 난 스텔라데이지호를 탔던 기관사 김영환씨(가명)도 익명 제보자 중 한 사람이었다. 20대인 그는 스텔라데이지호를 탄 게 첫 항해였다.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를 뉴스에서 보고 아예 배 타는 것을 포기했다. 한파가 극심했던 어느 날, 그를 한 도서관에서 만났다. 얼마 전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에게 왜 배 타는 것을 그만두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배를 탈 수가 없었다. 같이 일했던 스텔라데이지호 선원들이 떠올라 괴로웠다”라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그가 받았을 충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스텔라데이지호를 타고 브라질을 오가는 동안 기관실에서 고장 난 기계를 고친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거의 매일 고장이 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관실에서 일해야 했다. 어디가 어떻게 고장 났는지 잘 모를 때가 많았다. 배 설계도가 없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내 귀를 의심했다. ‘배 설계도가 없다니, 그럴 수도 있단 말인가?’

궁금증은 다른 제보자를 만난 뒤 풀렸다. 폴라리스쉬핑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던 직원이었다. 그가 내게 제보한 이유도 스텔라데이지호 선원들에 대한 ‘부채감’이었다. 그에 따르면 스텔라데이지호는 일본에서 사오면서 애당초 설계도가 없었다고 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1993년 7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15년간 유조선으로 항해를 했다. 2009년 폴라리스쉬핑은 스텔라데이지호를 사들여 중국에서 철광석 운반선으로 개조했다. 제보자는 “일본에서도 노후한 배라서 몇 년 운항하다 배를 폐선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잇단 유조선 사고에 따른 기름 유출로 해상 환경오염이 심각해지자 외벽이 한 겹으로 된 단일 선체(Single Hull)의 유조선 퇴출 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었다. 스텔라데이지호도 단일 선체 유조선으로 퇴출 대상이었다. 이런 스텔라데이지호를 폴라리스쉬핑이 사들여 철광석 운반선으로 개조했다. 기름보다 5배 이상 무겁다는 철광석을 운반하게끔 개조한 데다 선령도 25년에 이른 선박이다 보니 스텔라데이지호는 고장이 잦았다. 그런데 그런 고장을 수리하고 정비하는 데 필요한 설계도조차 없이 먼 항해를 떠났다.

보통 배에 이상이 생기면 기관사들은 배 설계도를 보고 고장 난 곳을 찾아 신속하게 수리에 나선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설계도가 없었기 때문에 항해 도중 이상이 생겨도 빠른 수리가 불가능했다. 앞서 제보한 기관사가 매일 온종일 기관실에서 수리만 했다는 말이 비로소 이해가 갔다. 어디가 고장 났는지를 모르니 여기저기 다 뜯어보고 찾아보느라 일이 많고 바쁠 수밖에 없었다. 배의 어느 곳에 결함이 생겼는지 알기가 쉽지 않으니 정비 또한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다.

ⓒ김영미 제공
3월26일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년에 즈음한 기자간담회’가 416연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문제는 이런 배가 하나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폴라리스쉬핑만 하더라도 스텔라데이지호처럼 유조선으로 개조된 광석 운반선이 16척이나 더 있다. 대부분 선령 20년이 넘은 노후 선박이다. 한국에는 현재 27척의 유조선 개조 노후 선박이 운항되고 있다. 노후 선박에 대한 우려를 원천적으로 해소하려면 스텔라데이지호의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들 노후 선박의 위태로운 항해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폴라리스쉬핑이 스텔라데이지호 사고 이후 스텔라유니콘호과 스텔라코스모호의 폐선을 결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를 수거해야만 규명이 가능하다. 국제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상 3000t급 이상 화물선과 국제 항해 여객선에는 반드시 블랙박스를 달게 되어 있다. 이 기준으로 볼 때 스텔라데이지호는 블랙박스를 장착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VDR(Voyage Data Recorder·선박항해 기록장치)이다. 편의상 이를 블랙박스라고 부른다.

이 장치에는 항해 기록과 선교 근무자의 음성기록 등 여러 기록이 담겨 있으리라 추정된다. 배가 침몰해 수중에 가라앉으면 30일 동안 신호를 내보낼 수도 있다. 이 블랙박스를 분석해보면 침몰 원인뿐만 아니라 스텔라데이지호 선원들의 탈출 여부도 알 수 있다. 

국내 여론은 심해 3000m에 가라앉아 있는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를 수거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 허경주씨는 “사고가 난 뒤 정부 부처 관계자들은 ‘그렇게 깊은 심해에서 수색 장비를 이용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시간이 흐르면 심해 수압으로 블랙박스가 훼손된다’고 가족들에게 말해왔다. 하지만 4000m가 넘는 심해에서 블랙박스를 수거한 기록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대서양에서 침몰한 미국 화물선 엘파로호가 대표적 예다. 2015년 10월, 엘파로호는 미국 플로리다를 출발해 푸에르토리코로 향하다 허리케인 호아킨을 만났다. 길이 225m에 달하는 이 화물선에는 당시 컨테이너 391개와 자동차 294대, 트레일러가 실려 있었다. 엘파로호는 바하마 크루커드섬 인근에서 추진 동력을 잃었다는 위성 신호를 보낸 후 연락이 두절됐다. 배의 실종 지점은 이른바 버뮤다 삼각지대. 배와 비행기 실종 사고가 자주 일어나기로 유명한 이곳에서 배가 사라지는 바람에 자칫하면 ‘버뮤다 삼각지대 미스터리’로 남을 판이었다. 사고 직후 엘파로호에 실려 있던 구명정(동력이 있는 보트)과 구명벌(동력이 없는 보트)은 모두 수거됐다. 생존자는 없는 것으로 판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사고 규명을 위해서 미국 정부는 엘파로호 블랙박스 수거 작업에 나섰다. 사고 10개월 만인 2016년 8월 심해 4570m에서 블랙박스를 찾는 데 성공했다. 선장의 최후 육성이 담긴 이 블랙박스는 엘파로호의 사고 원인을 분석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정확한 사고 원인, 블랙박스 수거해야 규명

그런가 하면 영국 선박 더비셔호 침몰 사고도 있었다. 1980년 9월, 오키나와 남동해상에서 영국의 17만t급 선박 더비셔호가 선원과 가족 등 44명을 태운 채 순식간에 침몰했다. 영국 해양 사고 사상 가장 규모가 컸다. 침몰 원인은 오리무중이었다. 첫 조사를 벌인 영국 정부는 이를 불가항력으로 인한 사고라고 결론 내렸다. 더비셔호 침몰로 아들을 잃은 피터 리드야드 씨는 보험회사 등을 위해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해난구조협회의 선박 조사원이었다. 그는 더비셔호와 그 계열 선박들이 화물창과 엔진룸을 구분하는 두꺼운 벽을 갖고 있어서 구조적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를 중심으로 유가족들은 더비셔 가족협회를 구성했다. 1986년에도 더비셔호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선박이 좌초했다. 영국 관계기관에 따른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져 침몰한 선박의 잔해가 발견됐다. 1997년 영국 정부는 미국에 도움을 요청해 수중 로봇을 투입했다. 49일 동안 심해 4000m에 가라앉은 더비셔호 사진 13만7000장을 찍어 사고 원인을 분석했다. 조사 결과, 침몰 원인은 구조적으로 취약한 창구 덮개가 격렬한 폭풍에 견디지 못해 파손되면서 선체에 물이 흘러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사고 원인이 밝혀지면서 전 세계 화물선의 설계 방식이 바뀌었다. 만일 유가족들이 침묵했다면 사고 원인 규명뿐 아니라 설계 변경도 없었을 것이다. 더비셔호 유가족인 폴 램버트 씨는 “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라. 더비셔호 가족들도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과 함께할 것이다”라며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에게 연대와 지지의 의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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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쉬핑 사 소속인 스텔라코스모호가 폐선을 위해 파키스탄 부두에 접항하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허영주 공동대표는 “더비셔호처럼 20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꼭 블랙박스를 건지고 사고 원인을 규명할 것이다. 우리 가족이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다른 선원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구명벌 등의 재수색과 함께 심해 3000m에 가라앉은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 수거를 위한 심해 수색 장비 투입을 요구하고 있다. 자매인 허영주·허경주 공동대표는 지난해 국회를 한 달 넘게 돌아다니며 100명도 넘는 국회의원을 일일이 만나고 다녔다. 허경주씨는 그때 만삭의 몸이었다. 그러나 심해 수색 장비 투입을 위한 예산은 단 한 푼도 배정되지 않았다. 그간 선례가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가족들의 실망은 컸다.

가족들의 호소가 계속되고, 〈시사IN〉과 MBC 〈PD 수첩〉을 통해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이 알려지면서 변화가 생겼다. 지난 1월, 해양수산부가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 장비 투입을 위한 TF를 구성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가족들 처지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해양수산부와 첫 TF 회의를 다녀온 뒤 허영주 대표는 “정부가 이렇게 우리의 말을 경청해주는 것은 처음이다. 회의를 하면서 비로소 정부가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지난 2월, 브라질 인근 해역에서 인도 선박이 구명벌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가족들은 이것이 혹시 스텔라데이지호 구명벌은 아닌지 가슴을 졸였다. 사고 당시 스텔라데이지호에는 30인승 구명정 2척과 16인승 구명벌 5척이 탑재돼 있었다. 구명벌에는 16명이 사흘간 먹을 수 있는 식량이 구비되어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사고가 난 다음 날인 지난해 4월1일 그리스 선박인 엘피다호는 사고 지역 인근에서 구명벌 한 척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필리핀 선원 두 명이 타고 있었다.

브라질 MRCC(해안구조대)의 확인 결과 지난 2월 발견된 구명벌은 2016년 12월 화재로 조난당했던 안타이오스호의 구명벌이었다. 실망은 컸다. 가족들은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품었다. “구명벌의 미닫이문이 모두 열려 있는 상황에서 14개월을 표류했는데도 구명벌 안에 있는 물건들이 아주 멀쩡했다. 만약 스텔라데이지호 선원들이 아직 찾지 못한 구명벌에 타서 살아만 있다면 이처럼 고스란히 표류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라고 허경주 대표는 말했다.

가족들은 정부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해양수산부, 외교부 등이 참여한 심해 수색 장비 투입 검토를 위한 TF가 운영되는 한편으로, 현재 조달청에 이를 위한 정책 연구 용역도 공고·게시된 상황이다. 만약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를 수거하면 단순히 기술적인 성과만이 아니다. 우리 정부가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선례를 남긴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업적이 될 수 있다.

가족들이 달고 있는 주황색 리본은 스텔라데이지호의 구명벌 색깔을 상징한다. 3월31일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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