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주의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과 지위에 따른 남성 중심적 위계주의가 강력한 사회규범으로 작동한다. 또한 ‘남성다움’이란 남성의 ‘여성 지배’와 연결되곤 한다. 성폭력은 종종 피해자에 대한 호감과 사랑의 감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여성혐오 사회에서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이 사랑이 아닌가를 우선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성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피해자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포르노그래피를 보면서 여성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금전을 지불하며 섹스를 하면서 그 성 노동자 여성에게 가지게 되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다양한 광고에서 성적 상품이 되는 여성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권력의 불균형이 작동될 때, 그 권력을 여전히 행사하는 남성이 위계적 구조에서 아래에 있는 여성에게 표시하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자기 여자친구나 부인을 사랑한다면서 폭력을 가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두 사람 간의 권력이 균등하게 행사되고, 서로를 평등한 존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그 지점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호감의 이름으로 여타의 성폭력이 정당화될 순 없다.

페미니즘에는 다양한 정의가 있다. 널리 회자되는 정의 중 하나는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주장”이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다층적 폭력과 차별은 여성을 온전한 ‘인간’으로 보지 못하는 왜곡된 이해에서 출발한다. 남성-여성의 위계적 종속성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는 현실에서, 여성도 인간이라는 주장은 낭만적 모토가 아니라 치열하게 실천되어야 하는 사회 정치적 과제이다. 경제·정치·문화·예술·교육·종교 등과 같은 공적 영역은 물론이고, 가정이나 친밀성의 관계 같은 사적 영역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페미니즘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다양한 갈망·성품·능력·욕구 등을 지닌 한 인간이라는 이해는 여성을 ‘어쨌든 여자’라는 생물학적 프레임 속에 가두는 것 자체가 억압이며 차별이라는 것을 보게 한다. 억압은 한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이 페미니즘과 만날 때, 그 미투 운동은 첫째, 가해자에 대한 고발이나 처벌만이 목표가 아님을 비로소 인식하게 한다. 둘째,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모든 공적·사적 분야에서 일어나게 되는 근원적인 문제에 눈을 돌리게 한다. 셋째, 여성을 성적 대상이나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인식론적 변혁의 필요성을 보게 한다. 넷째, 피해자가 수동적 피해자 의식에만 사로잡히지 않고 새로운 변화의 주체자 의식을 가지게 한다. 다섯째, 가해자 남성을 포함하여 사회 구성원들에게 모든 여성이 성적 대상화된 존재가 아니라 온전한 인격과 존엄성을 지닌 한 인간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한다. 여섯째, 젠더·계층·장애·나이·국적 등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인간이라는 급진적 평등성의 인식으로 이어지게 된다.


ⓒ시사IN 신선영그동안 민주주의는 가정과 회사와 학교 문 앞에서 멈춰 있었다. 우리의 일상이 민주주의 최전선이다.


계층·장애·인종·성적 지향 등 그 무엇도 차별의 근거가 안 되어야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표는 ‘여성 중심’이나 ‘남성 혐오’가 아니다. 초기 페미니즘은 ‘여성 대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젠더 의식으로 출발했지만, 현대의 페미니즘은 트랜스젠더나 간성(intersex)의 문제는 물론 계층·장애·시민권·성적 지향·인종 등 인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의 교차성 문제를 진지하게 끌어안고 씨름한다. 페미니즘은 젠더를 그 출발점으로 삼고 전개되지만, 궁극적 도착점은 젠더 평등만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계층·장애·인종·성적 지향 등 인간을 구성하는 여타의 근거도 차별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자, 모든 이들에게 평등 사회를 이루기 위한 총체적 변혁운동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투 운동이 페미니즘과 연계될 때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차별·배제의 구조에 대항하는 저항운동이 되며, 모든 인간의 평등성을 제도화하고 실현하기 위한 성숙한 민주주의 운동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기자명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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