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증’이 잡혔다. 검찰이 삼성전자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노조 와해 문건’ 6000여 개에서 삼성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탄압을 주도한 사실이 무더기로 확인되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수리 기사들이 만든 노동조합으로 2013년 7월 설립됐다. 현재 조합원은 700여 명이다. 삼성에버랜드 노동자들이 만든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등 다른 삼성 관련 노조의 가입 조합원이 소수에 그친 반면,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주축이긴 하지만 가장 규모가 큰 노조이다. 검찰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는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노조 파괴 작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했다.
노조 설립 당시부터 삼성이 노조 탄압에 개입한다는 심증은 짙었다. 삼성전자서비스 울산센터에서 2014년 2월 작성한 ‘조직 안정화 방안’ 문건은 노조 조합원을 ‘Green화(노조 탈퇴)’시키는 세부 계획을 보고하는 목적으로 작성됐다. 특이하게 ‘각오’라는 항목이 있다.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Green화하겠습니다. 조직 안정화를 바탕으로 제출한 ‘14년 업무제안서’의 내용을 100% 수행하며 반드시 목표 달성토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2015년 이 문건을 공개한 노조는 실제 문구대로 실행됐으며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에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서비스 원청 관리자가 직접 노동조합 확산을 막는 정황이 포착됐다. 올해 초 삼성전자서비스 부천센터에 신규 노조가 설립됐다. 그러자 해당 센터를 담당하는 원청 관리자 정 아무개씨가 고참급 조합원을 찾아가 노조 가입을 만류했다. 관리자 정씨는 50분가량 면담을 하며 이 조합원을 회유했다. 노조가 공개한 녹취록에는 “이미 (다른 센터에 노조) 활동하는 사람 있으니 그대로 맡겨놓고 너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거잖아” “(부천센터에서) 가입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 (얘기해봐)” 등으로 탈퇴를 종용하고 조합원 명단을 수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번 검찰 수사로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노조 설립 시점부터 ‘종합상황실’을 운영했는데 노무사들에게 노조 와해 조언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삼성이 매달 이들에게 용역비용 수천만원을 지급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종합상황실 법률자문그룹에는 창조컨설팅 출신 변호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창조컨설팅은 노조 파괴 전문으로 유명한 노무법인이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근로감독관을 관리해온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이 4월6일 삼성전자서비스를 압수수색하며 추가로 확보한 문건에는 “근로감독관과 수시로 접촉해 공감대를 형성하라”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고 한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2013년 설립 직후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요청했다. 두 달간 근로감독을 실시한 노동부는 위장 도급과 불법 파견 의혹에 대해 ‘적법 도급’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당시 근로감독을 시행했던 근로감독관은 노조 관계자와 통화하면서 “조사 결과가 불법 파견으로 모아졌는데 노동부 고위 관료에게 보고되는 과정에서 기조가 바뀌었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바 있다.
노조원 시신 탈취 배후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설립 초기인 2013년 하반기에서 2014년 상반기 사이에 탄압 강도가 특히 심했다. 1600여 명이던 조합원 수가 850여 명까지 줄어들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이었던 최종범씨와 염호석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이 시기이다. 두 사람은 2013년 9월부터 시작된 표적 감사의 대상이었다. 검찰이 확보한 문건에는 염호석씨 시신 탈취에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가 관여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센터 분회장이었던 염씨는 2014년 5월17일 강원도 강릉 정동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염씨는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주검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주십시오”라는 유서를 남겼다.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는 노조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 날인 5월18일 경찰 250여 명이 들이닥쳐 염씨의 시신을 탈취해갔다. 아버지가 가족장으로 장례를 하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당시 검찰은 시신 탈취를 막아섰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나두식 지회장을 장례 방해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나 지회장은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노조는 양산서비스센터 센터장이 고속도로 휴게소에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염씨의 아버지를 만나 위로금을 제시했다며, 그 배후로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를 지목했다. 이 의혹이, 이번에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문건으로 확인된 것이다. 문건에는 염씨의 아버지에게 제시한 위로금 액수까지 적혀 있다고 한다.
사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이미 5년 전에 삼성을 고소한 바 있다. 2013년 10월14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삼성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폭로했다. 작성일이 2012년 1월로 기재돼 있는 이 문건은 2011년 설립된 삼성에버랜드 노조를 무력화한 과정과 그에 대한 평가, 2012년에 따라야 할 노조 와해 전략이 담겨 있다. 삼성에버랜드 노조 사례를 기반으로 이후의 노조 와해 전략을 다듬는 내용이다.
같은 해 10월30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이 문건을 근거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당시 삼성전자서비스 대표 등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검찰은 수사를 진행하지 않다가 지난 2월 삼성전자 압수수색 과정에서 ‘노조 와해 문건’ 6000여 건이 나오자 4월11일 5년 만에 처음으로 나두식 지회장 등 노조 관계자를 불러 이번에는 피해자로 조사했다.
2013년 10월22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삼성에버랜드 노조)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 삼성 경영진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1년여간 해당 사건을 조사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삼성이 작성했다고 볼 수 없다”라며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노동청 의견을 따라 2개월 뒤인 2015년 1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2016년 12월 대법원은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삼성이 작성한 것으로 인정했다. 이번에 검찰이 압수한 노조 와해 문건 6000여 건 중에는 ‘S그룹 노사전략 문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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