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4일 국회의사당 근처 나가타초 역을 쏟아져 나오는 시민들. 저마다 손에 “아베 정치를 불허한다”라고 쓴 부채를 들었다. 국회의사당에 다가갈수록 늘어나는 인파. 오후 2시, 사회자가 연단에 올라 집회 시작을 알렸다. 아베 퇴진을 요구하는 릴레이 발언이 이어졌다. 반(反)아베 야당 연대를 주도하는 시이 가즈오 일본공산당 위원장이 “아베 총리가 ‘아니다’ 하면, 대략 ‘그렇다’고 봐야 됩니다!”라는 ‘사이다’ 발언을 하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사방에서 터지는 웃음과 환호성. 어느새 10차선 도로가 시민들로 가득 찼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회에 참석한 부모들은 기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정권에 아이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정치 참여의 소중함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어두워지자 시민들은 ‘드디어’ 촛불 모양의 작은 손전등을 켰다. 논픽션 작가 사와치 히사에 씨(87)가 한국의 촛불 시위에 감명받아 일본판 촛불 집회를 제안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위안부’ 문제 관련 서명운동으로 유명한 작가이자 방송인 오치아이 게이코 씨(73)가 마이크를 잡았다. “빗속의 불꽃은 사라지기 쉽지요. 하지만 우리가 뜻을 세워 다음 세대에 전한다면, 꺼지지 않고 타오를 겁니다.” 주최 측 추산 5만명이 이날 집회에 참석했다. 국회 앞뿐 아니라 이날 일본 전역 20곳 이상에서 아베 규탄 집회가 열렸다. 트위터 등 SNS에서는 ‘#국회 앞 행동’이라는 해시태그 시위도 이어졌다.

ⓒ〈신문 아카하타〉 제공4월14일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아베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
이날 집회를 이끌고 진행한 ‘배후’가 궁금했다. 국회 앞 행동이 한창 진행될 무렵,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고 규슈에서 막 상경한 청년이 스마트폰으로 지도 파일을 보여주었다. ‘데모플래카드(@Demo Placard)’라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배포된 약도에는 이날 집회 무대 위치와 임시 휴게소는 물론 자판기·편의점·화장실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또 다음과 같은 행동 수칙도 적혀 있었다. ‘우비와 방한복 등을 준비해주세요’ ‘음료나 가벼운 식사 등을 미리 준비해주세요’ ‘경비 팔띠를 착용한 스태프와 변호사가 행사장 주변을 돌고 있습니다. 곤란한 일이 생기면 이들에게 알려주세요’ 등등. 사전 준비가 철저한 조직적인 집회였다.

한국 촛불 시위와 닮은 듯 다른 일본의 국회 앞 행동의 ‘배후’를 좀 더 알려면 시간과 장소를 이틀 전인 4월12일 참의원 의원회관 기자회견장으로 돌려보자. 기자회견에서 오쿠다 아키 씨(25·히토쓰바시 대학 대학원생)가 4월14일 집회 참여를 호소했다.

그는 2015년 8월30일 전쟁법 반대 집회 때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와 동행했다. 암 투병으로 두문불출하던 사카모토 류이치 씨가 빗속을 뚫고 집회 현장에 나타나자 시민들은 환호했다. 그를 집회 현장으로 이끈 청년이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학생 긴급 행동)’의 창설 멤버 오쿠다 아키였다.  그는 2016년 해산한 실즈의 옛 동료와 함께 단체 ‘진실의 편(Stand For Truth)’을 만들었다.

모리토모·가케 학원 문제로 궁지에 몰린 아베 정권의 재무부는 공문서를 ‘조작’해 의회에 제출했다. 파문이 확산되었지만 청문회에 출석한 사가와 노부히사 전 국세청장(문서 조작 사건 당시 이재국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3월21일 아베 총리와 아소 재무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진실의 편이 만들어졌다. 오쿠다 씨는 4월12일 기자회견에서 “공문서 위조 등 문제의 책임은 아베 정권에 있다. 지금의 정치 상황을 초래한 책임의 일부분은 주권자인 우리에게도 있다”라고 말했다.

진실의 편과 지난해 8월 출범한 ‘미래를 위한 공공(公共)’, 그리고 2014년 12월 30개 평화운동 단체가 모여 만든 ‘전쟁에 반대하고 9조 파괴를 거부하는 총궐기 실행위원회(이하 총궐기 실행위원회)’가 4월14일 국회 앞 행동을 주최했다. 주최 단체는 아니지만, 함께한 ‘안보법제 폐지와 입헌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연합(이하 시민연합)’도 눈에 띈다. 2015년 전쟁법 반대 서명운동을 주도한 29개 단체로 구성된 시민연합은, 지난 총선거에서 야당 연대와 시민사회의 연결고리 구실을 하기도 했다.

보수 논객 ‘활약’에도 아베 지지율 37.0%

국회 앞 행동을 전후로 보수층의 위기의식은 커져갔다. 4월14일 같은 시각 시부야에서는 정반대 집회가 열렸다. 보수 단체가 “이제야말로 젊은이들이 (평화헌법)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라며 ‘일장기 집회’를 연 것이다. 자위대 간부 후보생 훈련을 받고 있다는 한 대학교 3학년생 참가자는 “목숨을 걸고 국토를 지키는 자위대가 그 존재를 헌법에 의해 부정당하는 차별을 겪고 있다”라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보수 신문과 논객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예컨대 〈산케이신문〉 계열의 극우 매체 〈석간 후지〉는 진실의 편이 기자회견을 연 날, 극우 단체인 일본회의와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간부를 맡고 있는 활동가 마쓰키 구니토시의 글을 실었다. 마쓰키는 ‘아베가 한국에서 미움 받고 있는 이유는 역대 일본 총리 가운데 최초로 한국에 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폈다. 또 그는 한·일의 촛불 시위를 악의적으로 비꼬면서 ‘일본이 한국 같은 나라가 되면 좋겠느냐’고 비아냥거렸다.

‘올드보이’도 복귀했다. 대표적인 극우 논객인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객원 논설위원은 국회 앞 행동이 있던 날 오전, 기명 칼럼을 썼다. 그는 한국을 ‘데모 대국(大國)’이라 지칭하며 “일본의 반(反)아베 시위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이 뒤틀린 우월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라는 글을 썼다.

보수 논객들의 ‘활약’에도 아베 총리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국회 앞 행동이 있던 날 교도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37.0%였다. 2주 전 조사보다 5.3%포인트 하락했다. 궁지에 몰린 아베 총리가 다시 국회를 해산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후지이 야스시 메이세이 대학 교수(임상심리학자)는 이렇게 유권자들의 심리를 분석했다. “(지난해 여름의 경우) 아베 총리가 개각을 통해 장기 집권의 틀을 마련하자, 유권자들은 자신의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장기 집권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국회 해산 뒤 총선거나 아베 이후에 대한 논의가 고조되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유권자가 아베 정권이 지속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지난해처럼 그를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아베 지지율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아베 총리에게는 절망적인 분석이지만 현재 일본 유권자의 심리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기자명 도쿄·홍상현 (〈게이자이〉 한국 특파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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