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기사에 드루킹이 댓글을 많이 달거나 추천을 많이 해 댓글 순위를 조작했다며 형사처벌을 한다고 한다. ‘여론 조작’이라는 극악무도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어뷰징은 회의 시간에 확성기를 이용해 크게 떠들어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묻히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니, 나쁜 일은 맞다. 네이버 같은 실명제 사이트에서 한 사람이 여러 아이디를 차용해 댓글을 달면 여러 사람 의견처럼 비친다.

그런데 회의 시간에 큰 소리를 내거나 여러 사람이 말한 것처럼 했다고 형사처벌을 한다? 담벼락에 여러 사람이 낙서한 것처럼 글씨체, 분필 색깔, 낙관을 바꿔가며 낙서를 한다면 불법일까?

2012년 헌법재판소는 댓글실명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익명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 우리는 ‘편집부’라는 이름으로 평등과 인권의 목소리를 대중에게 전달했다. 대학생 몇 명이 작업한 문건도 ‘전국○○○동맹’ ‘인천지역○○○연대’라는 단체 이름으로 등사를 했다. 보복과 탄압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기도 했지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익명의 수많은 사람을 대표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국제 인권 기구와 세계 각지 최고재판소들은 이런 익명 표현이 인류의 변혁을 이끌어왔음을 지적했다. 그 불안정성과 무책임성의 우려가 있음에도 보호해야 한다고 선언해왔다.

매크로 프로그램은 수많은 가상의 사람을 대표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 즉 익명 표현의 자유 행사를 자동화한 프로그램이다. 가상 인물의 닉네임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합법 행위를 일일이 손으로 하기 힘들어서 컴퓨터의 힘을 빌린 것이다. 표현의 자유 행사를 자동화했다고 범죄가 된다면, 자신의 주장을 펼쳐 여론에 영향을 주기 위해 익명 웹사이트를 개설하는 것 자체가 범죄다.

결국 비난 대상으로 남는 것은 ‘여론’의 조작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미 2010년 ‘공익을 해하기 위해 허위의 통신을 한 자’를 처벌하는 허위사실유포죄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처벌 범위가 불명확해서다. 이 판시의 전제는 타인에게 명백한 해가 없는 말을 허위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순 없다는 것이다. ‘남북 단일팀을 많이 반대한다’는 댓글이, 처벌할 정도의 해를 누구에게 끼쳤나?

실제 인물 사칭은 사칭 대상자에게 피해를 준다. 하지 않은 말을 한 것으로 조작하면, 말 내용에 따라 당사자 평판의 저하(명예훼손)가 성립된다. 그렇다면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돌린 실존 인물 아이디가 몇 개 있는지, 그의 평판이 저하되는 말이 게시되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할 일 아닌가?

2011년 헌법재판소가 ‘인터넷 선거운동’을 전면 허용했다. 인터넷은 수용자의 ‘적극적인 행위’, 즉 ‘검색 후 클릭’으로 정보가 전달되기에, 신문·방송처럼 금권 선거의 영향이 심하지 않다고 보았다. 처벌론자들은 인터넷을 신문·방송으로 보는 건가?

 

 

ⓒ연합뉴스네이버 댓글 여론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24일 느릅나무 출판사 세무 업무를 담당한 서울 강남구 한 회계법인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2018.4.24

 


매크로 프로그램 포착 기술 개발하고 휴면 계정 관리 잘하면 될 일

네이버의 압도적 시장점유율에 비추어 네이버 댓글이 여론 측정의 중요한 바로미터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지난 정권 시절 광우병 시위, 세월호 시위에 대해 ‘대다수 국민은 가만히 있는데 좌파들이 광화문을 점거해서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라는 비난이 있었다. 이 비난을 근거로 광화문 점거자를 처벌하려는 것과 드루킹을 처벌하겠다는 논리가 다를 바 없다. 아무리 네이버가 국민의 여론을 1대 1로 반영하는 포털을 만들겠다는 경영적 판단에 따라 실명제를 시행해왔다 해도 마찬가지다.

네이버가 매크로 프로그램 포착 기술을 개발하고 휴면 계정 관리를 더 잘하면 될 일이다. 국가가 이 경영 판단 보호를 위해 앞서 언급한 ‘헌법재판소의 3대 인터넷 결정’을 무시하고 위헌적인 ‘여론조작죄’를 만들 일이 아니다. 오히려 국내 1위 포털도 글로벌 수준에 맞게 익명화(실명 휴대전화 번호 없이 계정 생성 가능)해 더 이상 사람이 네이버 댓글에 목숨 걸지 않도록 장려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 아닐까?

 

 

기자명 박경신 (사단법인 오픈넷 이사·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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