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이 국내 대학을 배회하고 있다. 미스터리라고 조롱받던 ‘창조경제’만큼은 아니지만, 이 유령의 실체가 아직 불명확하고 그 파급력이 과장됐다는 비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벌써 여러 대학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며 저마다 혁신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융합학과 신설, 무(無)학과 제도 확대, 온라인 공개강좌인 무크(MOOC) 콘텐츠 강화, 소프트웨어와 코딩 교육 의무화,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합…. 언론에 등장하는 대학 관계자들의 발언에는 ‘이대로 가면 다 망한다’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시대의 전환기라는 심각한 진단에 비해, 정작 대학이 선보이는 정책들은 신선하거나 도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융합은 걸핏하면 들먹이는 식상한 용어가 되어버렸고, 학과 간 장벽 허물기는 “학과 안 장벽부터 허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와 함께 대학가의 해묵은 과제처럼 남아 있다. 무학과 제도는 전공 탐색 기회를 제공하고 융합 역량을 계발하기 위해 수년 전 등장한 학부제나 자유 전공 제도에서 진일보한 새로운 시도로는 평가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박해성 그림

왜 사람들은 대학 교육에 희망을 갖지 않을까.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도 왜 대학 교육에 크게 기대하지 않는 걸까. 지금은 다른 대학으로 옮긴 한 교수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갓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젊은 교수들은 외국 대학의 문화와 분위기, 최신 교육 방식과 시스템을 도입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귀국하고 국내 교수 사회 분위기에 젖어들면서 교육에 대한 열의가 식고 결국 자기가 한국에서 배운 익숙한 방식으로 가르치게 되는 것 같다.” 학생 교육에 높은 가치를 두지 않고, 힘겹게 입성한 대학에서 정년을 보장받으려면 연구 실적 쌓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풍토가 교수들을 보수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교육 실험에 무관심한 교수 사회 분위기

대학 경영진도 새로운 교육 실험에 무관심한 교수 사회의 분위기를 간파하고 있다. 지난해 대학 총장들이 모여 대학의 위기를 주제로 공개 토론을 벌인 자리에서 이런 발언이 쏟아졌다. “융합학과를 만들어야 하는데 교수들이 제일 융합이 안 된다.” “산업화 시대의 틀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교육을 하고 있다.” “교수 개혁을 위해 총장들이 협업해야 한다.” 교수 사회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총장과 경영진으로서는 교수들을 변화의 길로 유도하기가 쉽지 않다. 가령, 여러 대학이 교수법 교육을 강화하고 있지만 나이가 많거나 정년을 보장받은 교수들을 설득해 이를 의무화하거나 동기부여를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직원과 학생들도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거나 꺼려 한다. “결국 남는 건 우리”라며 대학의 주인을 자임하는 직원들은 보수화되는 교수들을 행정적·제도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전문성과 책임감을 갖추지 못했다. 권한 대부분이 교수들에게 부여된 대학 행정의 한계와 과도한 정부 간섭을 감안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학의 역할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대안을 설계하는 데에는 직원의 몫도 중요하다.

사실 4차 산업혁명 운운하며 최근 강조되고 있는 창의력, 문제 해결 능력, 의사소통과 협업 능력, 자기 주도 학습 능력 등은 대학 교육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이 교육을 통해 습득해야 하는 기본적인 역량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이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대학에서 진정한 배움을 경험하고 성숙한 자기 발전을 이루도록 하려면 지금의 대학 교육 패러다임은 바뀌어야 한다. 그 성공 열쇠는 권한과 책임을 가진 교수들에게 쥐여져 있다.

기자명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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