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구 반여3동 전통시장.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빌라 건물 사이로 노포가 줄지어 들어서 있다. 시장 바로 옆에 있는 일신여객 종착역으로 44번, 52번, 144번 버스가 드나들었다. ‘해운대’라고 하면 떠오르는 백사장과 바다, 초고층 고급 아파트, 대형 쇼핑몰은 없다. 그건 ‘해운대갑’ 얘기다.

6월13일 지방선거와 함께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부산 해운대을은 고령층 비율이 높은 노후 지역이다. 배덕광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엘시티 비리로 구속돼 사퇴하면서 자리가 비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윤준호 후보가, 자유한국당에서는 김대식 후보가 출마한다. 해운대는 부산에서도 보수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소득수준이 최상위인 센텀(해운대갑)과 주거 환경이 낙후된 반여·반송동(해운대을)이 공존한다. 서병수 부산시장(자유한국당)이 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전까지 지역구 의원으로 내리 네 번 당선했다. 윤 후보는 이 지역을 “보수의 심장”, 김 후보는 “보수 우파의 집결지”라고 불렀다. 5월28일 두 후보는 시간차를 두고 반여3동 시장을 찾았다.

ⓒ시사IN 신선영5월28일 부산 해운대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윤준호 더불어민주당 후보(오른쪽 세 번째)가 반여3동 전통시장에서 시민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세 번 미끄러진 윤준호입니더. 눈물 좀 닦아주이소.” 윤 후보는 상인들에게 90도로 인사하며 능청스럽게 말을 건넸다. “살려주이소”라는 멘트도 섞었다. 그는 이 지역에서만 네 번째 출마했다. 2014년 지방선거 해운대구청장 선거, 2014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와 연달아 낙선했다. 세 번이나 선거를 치렀지만 이번 선거는 좀 특별하다. 윤 후보는 “그동안 반여3동 시장을 수없이 찾았는데 요즘 같은 반응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여당 프리미엄 덕분인지 주민들과 상인들이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다. 이날도 윤 후보가 “파이팅”을 외치자 가게를 지키던 상인이 장단을 맞췄다. “밀어드릴게. 이번에는 확실하이.”

부산시장 선거는 오거돈 후보가 앞서

지난해 대선에서 부산은 ‘디비졌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부산 지역에서 38.7%를 득표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32%)를 제치고 1위를 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 정당의 텃밭이었던 영남에서 부산이 떨어져 나오는 신호탄이었다. 민주당 강세는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여전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거돈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현직 시장인 서병수 자유한국당 후보를 멀찍이 앞서간다. 5월28일과 29일 취재 중 만난 택시 기사들은 모두 오거돈 후보의 우세를 예상했다. 한 택시 기사는 “손님 10명 중 9명은 오거돈씨가 될 거라고 한다. 대학가에서 택시 타는 젊은 친구들은 100명 중 99명이 오거돈씨다”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을 향한 여론이 호의적이지 못하다고도 전했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에 대해서 신물이 난다고 해야 하나. 박근혜 그리되고, 이명박도 그리되고. 부산 쪽 분위기는 한나라당은 아니다.”

ⓒ시사IN 신선영5월28일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김대식 자유한국당 후보(가운데).
지역주의 벽을 허물고자 했던 ‘노무현의 꿈’은 이제 현실처럼 보인다. 5월29일 오거돈 후보는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김영록 더불어민주당 전남도지사 후보와 만나 ‘민선 7기 전남-부산 상생발전 정책협약식’을 했다. 오 후보는 앞서 세 번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같은 당 전남도지사 후보와 상생협약을 맺는 건 처음이다. 사회자는 “전라남도 지사와 부산광역시장을 동시에 당선시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이끌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해운대을(반여·반송·재송동)에서는 온도차가 느껴졌다. 부산시장 선거와 달리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쉽사리 점치는 사람은 드물었다. 반여3동 시장에서 족발집을 하는 윤미화씨(가명·67)는 “예측이 어렵다”라고 했다. 호남 출신으로 열여덟 살에 부산에 온 그녀는 지역에서 몇 안 되는 민주당 당원이다. “서병수가 인기가 없어서 시장은 오거돈이 될 것 같다. 윤준호는 모른다. 이 동네는 야당(자유한국당)에 꽂혀 있다. 그래도 이번에는 우에 될지 모르지.” 담뱃가게를 하는 정현숙씨(가명·54)는 “여기 좀 보이소. 다 할머니들이다. 정치에 대한 생각은 잘 안 바뀌더라. 말하는 사람만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오후 4시, 윤 후보가 유세를 마치고 떠난 시장에 김대식 자유한국당 후보가 도착했다. 선거운동을 시작한 이후 여섯 번째 방문이다. 여의도연구원 원장인 김대식 후보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측근으로 불린다. 부산 해운대을 지역구 출마는 처음이다. 2012년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 출마를 준비했지만 새누리당은 당시 손수조 후보를 공천했다. 김대식 후보는 매일 3만 보 이상을 걸으며 지역 바닥을 다지고 있다. 지나가던 주민이 “또 오셨네”라며 반겼다. 방앗간을 운영하는 김만호씨(가명·73)는 “보수가 너무 힘이 없으면 견제가 안 된다. 남북이 분단돼 있고 하니 우리라도 (자유한국당을) 지켜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6·13 선거에서 대구·경북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자유한국당 후보가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김대식 후보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졌지만 안철수, 유승민으로 표가 분산된 탓이다. 지금 밑바닥 민심이 요동을 치고 있다. 소상공인들이 먹고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선거 결과가 나오면 언론사에서 많이 부끄러울 거다.”

김 후보는 유세 도중 한 선짓국 집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주인 한경자씨(가명·77)는 “여기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딴 데 가라고 했다”라고 대화 내용을 전했다. “시장에서 반찬집, 과일집, 작은 김밥집 해서 11명 빼고는 다 김대식이다. (윤준호 뽑는) 그런 집하고는 말도 안 한다.” 그녀는 서병수 후보가 떨어질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문재인 인기 때문에 오거돈이 될 판이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시늉한 거 가지고 속아서 좋아하지. 방송도 다 가짜다. 박근혜가 말은 몬해도 도둑질은 안 했다. 박근혜 때는 (선짓국을) 하루에 9~10솥씩 팔았는데, 문재인 되니까 세 솥밖에 못 판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