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문건 가운데 ‘조선일보’가 거론된 파일명.
〈조선일보〉에 대한 양승태 대법원의 관심은 각별했다. 전체 공개된 법원행정처 문건 410건(중북 문건 등을 제외하면 294개) 가운데 파일명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150128) 상고법원 기고문 조선일보 버전’ ‘(150330) 조선일보 첩보 보고’ ‘(150427) 조선일보 홍보 전략’ ‘(150506) 조선일보 방문 설명자료’ ‘(150920) 조선일보 보도 요청사항’ ‘(150504) 조선일보 기사 일정 및 컨텐츠 검토’ 등 모두 9건에 ‘조선일보’가 거론되었다(왼쪽 〈표〉 참조).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조선일보〉의 협력을 구하거나 관련 기획을 담았다.

양승태 대법원의 언론사 로비 기획 문건 가운데 〈중앙일보〉 〈동아일보〉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 KBS·MBC·SBS를 제목으로 하는 문건은 하나도 없다. 대신 〈시사IN〉과 〈미디어오늘〉이 제목에서 한두 차례 언급된다. ‘(150922) 차성안 판사 시사인 칼럼 투고 관련 동향과 대응 방안’처럼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하는 기사나 칼럼이 실린 언론사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내용이다.

양승태 법원행정처 표현에 따르면 ‘최유력 언론사’ ‘최고의 언론사’인 〈조선일보〉를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서 동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문건 곳곳에 나온다. 문건에 나온 내용이 실제로 〈조선일보〉 지면에 보도되기도 했다.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칼럼 내용이 그대로 〈조선일보〉에 실린 경우가 대표적이다(〈그림 1〉 참조). 2015년 4월13일 오연천 울산대 총장 이름으로 ‘대법원 정상화를 위한 출발점, 상고법원’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조선일보〉 13면에 게재됐다. 칼럼 게재 2주 전쯤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에 ‘(150331) 조선일보 기고문’ 제목으로 똑같은 내용이 담겼다. 검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은 오 총장은 법원행정처 요청으로 칼럼이 게재되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1〉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주장하는 상고법원 설치 관련 내용이 〈조선일보〉에 그대로 실렸다.

앞서 2015년 2월6일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상고법원이 필요한 이유’라는 칼럼을 〈조선일보〉에 기고했다. 사흘 전, 첫 문장이 똑같은 글이 양승태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 ‘(150203) 조선일보 칼럼’ 제목으로 생성됐다. 이 전 회장은 〈시사IN〉과 전화 통화에서 “법원행정처에서 〈조선일보〉에 상고법원 찬성 칼럼을 실어달라는 요청이 왔고 초안을 보내줬다. 상고법원 설치에 찬성해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원고가 맘에 안 들어 내가 고쳤다”라고 말했다.  

양승태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조선일보〉 기자들과 저녁을 먹으며 상고법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파일명 ‘(150330) 조선일보 첩보 보고’ 문건 내용). 〈조선일보〉를 직접 찾아 홍보할 계획을 세웠다(파일명 ‘(150506) 조선일보 방문 설명자료’ 문건 내용). ‘(150427) 조선일보 홍보전략’, ‘(150506) 조선일보 방문 설명자료’ 등 문건이 작성된 2015년 4~5월, 〈조선일보〉 지면에 상고법원 관련 기사가 실렸다. ‘(150920) 조선일보 보도 요청사항’이 작성된 2015년 9월 이후에도 상고법원 관련 기사가 실렸다.

‘(150427) 조선일보 홍보 전략’ 문건에는 〈조선일보〉에 설문조사·좌담회·사내 칼럼을 실을 계획과 그 시기까지 쓰여 있다(〈그림 2〉 참조).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요청한 시기는 2015년 5월 넷째 주에서 6월 첫째 주 사이였다. 또한 좌담회나 칼럼 등에 필요한 사전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적혀 있다. 설문조사 제안은 구체적이었다. 상고법원 긍정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일정 수나 응답률에 도달하면 설문조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꼼수’ 제안까지 담았다. 또한 상고법원에 부정적인 부산지방변호사회 등의 반대 독려가 있을 수 있기에 지역별 편차를 보정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그림 2〉 ‘조선일보 홍보 전략’ 문건에는 〈조선일보〉에 좌담회·사내 칼럼을 게재할 계획이 적혀 있다.

보도에 따른 대가, 문건에 명시

양승태 법원행정처는 〈조선일보〉 보도에 따른 ‘대가’를 문건에 명시했다. “〈조선일보〉에 상고법원 관련 광고 등 게재하면서, 광고비에 설문조사 실시 대금을 포함해 지급하는 방안 등 검토{일반재판운영지원 일반수용비 중 사법부 공보홍보 활동지원 세목 9억9000만원 편성}”라고도 쓰여 있다. 이 설문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비슷한 시기인 2015년 5월28일 〈조선일보〉는 ‘대법원에 연 3만7000건…기다리기 지친다, 졸속 재판도 싫다’ 등 상고법원과 관련해 모두 네 꼭지를 보도했다. 상고 사건이 너무 많아 상고법원이 필요하다는 양승태 대법원의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표도 실렸다. 전국 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 수와 지난 10년 동안 접수된 상고 사건 추이를 인포그래픽으로 정리했다.

2015년 하반기로 접어든 양승태 대법원은 더욱 바빠졌다. 다음 해 총선 일정을 생각하면 2015년 안에 상고법원 법안 통과에 힘을 써야 한다는 내부 논리에 따라 그해 9월20일 ‘조선일보 보도 요청사항’을 다시 문건으로 작성했다. 기획보도, 설문조사, 좌담회, 사내 칼럼, 기고 등의 방식을 제안했다.

상고법원이 필요한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다. △1년 동안 접수되는 상고 사건의 소송물 가액(소가)이 5조원이고 △해당 5조원은 연간 경제 이익 1500여억원이고 △1년간 접수되는 상고 사건의 당사자 수는 논산 인구에 비견되는 12만명이라는 내용이었다(〈그림 3〉 참조).

〈그림 3〉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정리한 ‘상고법원이 필요한 이유’는 〈조선일보〉에 기사로 게재되었다.


개별 사례도 열거했다. 대구 공군비행장 근처에 사는 주민 678명이 대한민국을 대상으로 한 민사소송을 거론했다. 대법원 상고심이 나오기까지 3년이 걸리면서 국가가 배상해야 할 지연손해금이 5억원 넘게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밖에 현대미포조선의 해고무효 확인소송, 부동산 철거·인도 소송을 예시로 꼽았다.

형사사건도 대법원의 선고가 늦어져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과 가족들의 심리적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움”이라고 양승태 법원행정처는 문건에서 밝혔다. 정작 양승태 대법원은 박근혜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느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사건과 위안부 피해자 사건에 대한 판결을 늦췄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2015년 10월21일 〈조선일보〉에는 위의 사례가 모두 언급된 상고법원 기사가 실렸다. ‘대법관 월화수목금금금 일해도 벅찬데… 상고법원 표류’ ‘감기 환자들 몰려 수술 못하는 격’ 등 관련 기사 3개가 실렸다. ‘탑처럼 쌓인 소송 서류…24시간이 모자라’는 제목과 함께 소송 서류더미 사이에 있는 고영한 대법관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이날 기사에는 대구 공군비행장 사례, 소송물 가액 5억원에 달하는 경제 손실, 상고 사건 당사자가 논산 인구와 맞먹는 12만명이라는 등 문건 속 사례가 언급됐다.

‘(150330) 조선일보 첩보 보고’ 문건도 눈에 띈다. 〈조선일보〉 기자 세 명과 만난 내용을 정리해 보고했다. 기자들이 “한명숙 사건 상고심 처리를 독촉”했다고 전하면서 1심 무죄·2심 유죄(징역 2년) 사건의 결론에 정치권 및 주요 언론의 관심이 여전하다고 진단했다. “한명숙 사건 등 주요 관심 사건에 관해 (결론이 아닌) 선고 예정 기일 등 사건 진행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언론의 상당한 호감 확보 가능”이라는 내용을 문건에 담았다.

ⓒ시사IN 이명익7월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양승태 사법농단 고발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조선일보〉는 양승태 대법원의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지난해 4월18일 1차 조사 결과가 나오자, ‘판사 블랙리스트 실체 없다(2017년 4월19일)’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2차 조사 결과가 1월22일 나오자 〈조선일보〉는 ‘재조사만 두 달…판사 PC까지 뒤졌지만 블랙리스트는 없었다’ ‘전현 대법원장 고발당하고 판사들 반목…상처뿐인 재조사(2018년 1월23일)’라는 보도를 이어갔다. 당시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원세훈 댓글 사건)을 두고 법원행정처와 박근혜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이 연락한 정황이 담긴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지난 5월25일 3차 조사 결과가 나온 다음 날 〈조선일보〉 기사의 제목은 ‘PC 뒤지고 또 뒤져도…판사 블랙리스트는 없었다’였다.

7월31일 410건 문건이 공개되자, 〈조선일보〉는 “법원행정처 문건은 행정처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조선일보〉와 무관하다. 〈조선일보〉가 이와 관련된 것처럼 보도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음을 알린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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