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2대0에 100만원 걸었으면!” 지난 6월, 한국과 독일전이 2대0으로 마무리된 다음 날 복도를 지나다 한 학생이 내뱉는 탄식을 들었다. 농담이 아니었다. 실제로 많은 청소년들이 도박을 하고 있다.


동아리를 지도하던 어느 날, 한 학생이 불법 스포츠 토토에 빠져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한 교사는 그 학생이 교실에서 후배들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장면을 봤다고 했다. 열변을 토하다 교사와 눈이 마주친 학생은 후배들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들어!” 하고 도망치듯 나갔다. 어리둥절했지만 ‘별거 아니겠거니’ 하고 말았다던 동료 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최근 그 학생이 보인 미심쩍은 행동을 다시 떠올렸다. 설마 했다. 며칠 뒤 옆을 지나치던 그 학생에게 물었다. “너 후배들한테 토토 얘기 했지?” “걔네들이 궁금해하잖아요.” 역시나였다.

 

 

 

ⓒ박해성 그림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의 ‘도박 중독 전문 상담 이용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도박으로 상담받은 청소년이 2014년에 비해 2016년에 4.7배 늘었다. 1000만~2000만원을 잃었다고 응답한 학생들(36%)이 가장 많았다. 주로 고등학교 1학년(만 16세) 때 접했고(26%), 중학교 1학년 때 시작했다는 학생도 있었다. 불법 도박을 하게 된 계기는 87%가 친구나 아는 형 등 지인을 통해서였다.

청소년 일탈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차별적 교제 이론’이라는 게 있다. 일탈을 수행하는 집단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일탈 행동을 학습해 그것을 따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는 형이나 친구가 PC방에서 외국 야구 중계를 보면서 걸어둔 금액으로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야 나 만원 땄어!”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번쯤은 호기심으로 도박을 해보게 될 수 있다. 그 가운데 몇몇은 심각하게 빠져든다.

불법 도박 사이트는 적발 시 폐쇄 조치되지만,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사이트의 경우 제대로 단속이 되지 않는다. 불법 스포츠 토토를 하는 그 학생도 이미 한 번 경찰에 적발된 적이 있었는데, 청소년이니까 다시 하지 말라는 훈계만 받았다. 하지만 도박의 유혹에서 그는 떠나지 못했다. 그 학생도 국내 기반 사이트로 도박을 하다, 단속하기 쉽지 않은 해외 사이트로 옮아갔다. 물론 그 학생이 이용하는 불법 스포츠 토토 사이트는 피해를 입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없다.

그 학생처럼 많은 학생이 마치 게임하듯 도박에 빠져들고 있다. 사실 아이들이 즐기는 많은 온라인 게임들이 도박을 닮아간다. 게임에서 자주 쓰이는 ‘좋은 아이템 드롭’ ‘강화’ 등 확률성 장치는 도박과 다를 바 없다. 어떤 랜덤박스나 카드를 구매했을 때 확률이 높을수록 덜 중요한 아이템, 확률이 낮을수록 중요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PC방에서 한 아이가 좋은 아이템이 뽑히길 기대하면서 조마조마해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마치 복권이 당첨되길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물질만능주의가 강화되는 이유

학생들의 도박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부장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되었다. 전문 기관에 의뢰해 불법 도박 예방교육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어린 나이부터 일확천금의 꿈에 잘못 눈뜬 학생들이 쉽게 도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걱정된다.

학생들은 왜 도박에 빠져들까. ‘갑질’ 문제에 대해 학생들과 토의한 적이 있었다. “갑질하지 말아야지”보다는 “나도 돈 많이 벌어서 갑질당하지 않고 싶다. 고로 돈이 최고다”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많았다. 학생들 마음속에서 물질만능주의가 강화되는 이유는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함부로 사용하고 있어서일 터이다. 갑질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명 차성준 (포천 일동고등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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