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킥 애스:영웅의 탄생〉이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와 다른 점은 주인공이 능력 없는 히어로라는 점이다. 자칭 ‘킥 애스’인 주인공 데이브는 슈퍼맨 같은 초능력도, 아이언맨 같은 재력도 없는 평범한 소년이다. 데이브는 그냥 멋있어 보이려고 히어로 놀이를 하다 우연히 갱들의 싸움터에서 사람을 구한다. 이 장면이 SNS를 통해 퍼져 나가 금세 유명해지고 여기저기서 킥 애스에게 도와달라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데이브는 겁이 나서 도망가려 했지만 사람들의 간절한 부탁 때문에 무능한 히어로 킥 애스로서 생사를 넘나드는 고군분투를 이어나간다.


ⓒ정켈 그림
말 그대로 ‘쥐뿔’도 없으면서 굳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서는 킥 애스 같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다짐했을 때 이렇게까지 삶의 전부를 바치리라 생각했을까. 일생을 바쳐 세상을 바꾼 사람들도 어쩌면 그냥 폼으로 첫걸음을 내딛지 않았을까. 그러다 별다른 능력 없는 나라도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번만, 이번만 했던 시간이 쌓여 일생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내가 만난 노회찬은 호탕한 대중적 이미지와는 달리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노회찬은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극도로 꺼려, 부탁하는 전화 한 통 걸기 위해 한참이나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고 한다. 이렇게 소심한 사람이 1980년대 당시 가장 큰 노동계급 전위조직인 인민노련(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을 만들고, 화려한 언변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아 원내 진보 정당 시대를 연 사람이라니. 이 사람이 비례대표를 거쳐 지역구를 세 번이나 옮기며 최초의 진보 3선 의원이 된 이가 정말 맞나 싶었다. 대중 앞의 노회찬은 마치 히어로 복장을 챙겨 입은 슈퍼히어로처럼 행동이 달라졌다.

그저 평범한 인간인 그는 너무 오래 슈퍼히어로 생활을 한 건 아닐까. 노회찬은 1982년 노동자의 세력화를 위해 용접공으로 위장 취업했고,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노동자 민중을 위한 정치세력을 만들고자 30년을 바쳤다. 1980년대 운동권 세력에서 수많은 정치인이 태어났지만, 노회찬만큼 사회적 약자의 손을 놓지 않고도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과 그럴 용기를 유지한 사람은 몇 없다.

노회찬은 많은 정치인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묵인할 때, 성전환자성별변경특별법과 차별금지법을 국회에서 최초로 발의했고, 3월8일 ‘여성의 날’마다 동료 의원과 행정부 인사, 국회와 정당의 여성 노동자에게 장미꽃을 보내 여성의 날을 기념했다.

함께 세상을 바꾸자던 한때의 동지들이 바뀌어야 할 일부가 되어가는 동안 노회찬은 초심을 지켰다. 30년간 그는 돈과 표를 보태달라는 내키지 않는 전화를 걸기 위해 몇 번의 한숨을 내쉬었을까.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 지새운 불면의 밤은 며칠일까. 그 오랜 불면 끝에도 노회찬은 지적 유희만 일삼는 고고한 논객도, 당선만을 고민하는 평범한 정치인도, 이도저도 아닌 대기업 부장쯤도 되지 못했고 이제 우리 곁에 없다.

지키지 못한 약속을 고스란히 진 그들이 잘 견뎌주기를

정치인은 지키지 않은 약속을 누적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늘 생각만큼 변하지 않고 애써 이룬 진전은 물거품이 된다. 많은 정치인은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그냥 폐기한다. 지키지 못한 약속을 고스란히 지고 가는 정치인에게 세상은 끝나지 않는 던전(지하 감옥)이고, 인생은 끝이 없는 속죄가 된다. 정말로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고 가는 정치인이 있다면, 우리는 이 불쌍한 사람들을 진심을 다해 격려해야 한다. 나는 아직 적절한 추모의 말을 찾지 못했다.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고 가는 불쌍한 정치인들이 그래도 잘 견뎌주기를 바랄 뿐이다.

기자명 황도윤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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