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심판자는 누가 심판할 것인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이 낳은 질문이다. 검찰이 강제 수사를 본격화하자 사법부가 제동을 건 모양새 때문이다. 법원은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잇달아 기각했다(아래 〈표〉 참조). 8월1일 현재 수사 대상인 전·현직 법관 중에서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자택과 사무실에만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다.



법원이 ‘제 식구 봐주기’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영장 평균 발부율과 비교해봐도 차이가 난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전체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87.85%다. 전체 11만9492건 중 발부 10만4981건, 일부 기각 1만3267건, 기각 1244건이다. 재판 거래 의혹 사건은 정반대다. 이번 사건의 영장 발부율이 9%대라고 검찰은 밝혔다.

압수수색 영장 기각 사유를 보면 법원이 수사를 막는다는 의심이 더욱 짙어진다. 7월27일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며 허경호 부장판사는 “임의 제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임의 제출은 압수수색 당사자가 스스로 자료를 내놓는다는 말이다. 검찰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음에도 법원이 임의 제출에 소극적이라는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8월1일 이언학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기각하면서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법관이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같은 날 외교부 청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발부했다. 이뿐만 아니라 법원은 전·현직 판사 30여 명에 대한 이메일 보전조치(훼손·변경·삭제 금지) 영장도 기각했다. 임종헌 전 차장 등 3명에 대해서만 이메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현재 재판 거래 의혹을 바라보는 법원의 시각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더욱이 영장전담 판사들과 양승태 법원행정처의 인연이 입길에 올랐다. 이언학 부장판사는 혐의 선상에 오른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과 2010년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에서 함께 근무했다. 허경호 부장판사 또한 재판 거래 의혹으로 고발당한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2011년 서울고등법원에서 같은 재판부였다. 수사-기소-재판으로 이어지는 형사 절차에서 검찰 수사를 견제하는 역할(영장 심사 등)을 하는 법원이 ‘심판’이 아닌 ‘플레이어’라는 의심을 사는 셈이다.

ⓒ연합뉴스2017년 6월 박병대 대법관(가운데)의 퇴임식에서 배웅하는 양승태 대법원장(뒷줄 맨 왼쪽).

이런 상황에서는 해당 수사의 유무죄를 판단(선고)하는 법원의 심판 역할조차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문제는 현행법으로는 이를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피의자나 피고인과 같은 재판부에 근무한 경험이 영장전담부 또는 배당 사건 재판부의 제척이나 회피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국회에서는 특별법 제정이 논의되고 있다. 그동안 사법부 자체 조사에 힘을 실어줬던 입법부가 이제는 삼권분립보다 삼권 견제와 균형이라는 가치에 더 무게를 두겠다는 뜻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특별법을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법안의 핵심은 수사·재판 과정의 공정성 추구다. 재판 배당을 기존 전자 시스템에 맡기지 않고, 독립적으로 구성하자는 내용이다. 형사합의부를 구성하는 판사 3명을, 특별재판부 후보 추천위원회를 만들어 거기서 추천받은 판사를 대법원장이 임명하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수사 단계에서도 이 위원회가 추천한 특별영장전담 법관을 둔다. 특별재판부 후보 추천위원회는 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시민사회에서 각각 3명씩 추천한 9명으로 구성한다. 1심은 국민참여 재판으로 진행한다.

재판부 독립성 확보하는 ‘특별법’ 제정 움직임

국회도 부응하는 분위기다. 잇단 영장 기각 소식이 전해진 8월1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법부가 스스로 자정 능력이 없다면 국민 재판부 구성 등을 통해 국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이 사건과 관련한 특별재판부 도입이 신속히 검토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은 본회의에서 과반 이상 출석에 과반 이상 찬성으로 의결된다. 개혁입법연대 이야기가 나올 정도인 현재 국회의원 구성을 보면 특별법 통과도 점쳐볼 수 있다. 자유한국당(112명)을 제외하면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의원은 178명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한 의원은 “양승태 대법원이 개별 국회의원을 접촉해서 로비를 계획한 문건까지 나온다. 각 의원들이 대놓고 반대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인 8월2일 〈조선일보〉는 ‘반민특위 때처럼… 與, 특별재판부 요구’라는 제목으로 특별법이 사회적 혼란을 부추긴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특별재판부는 해방 직후처럼 예외적인 시기에 도입됐다고 주장했다. 박주민 의원은 이를 의도적 오독이라고 비판했다. 자신이 대표 발의할 특별법은 반민특위 때처럼 ‘법원 밖의 법원’을 신설하자는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업무분장 시스템을 고쳐, 이미 법관인 사람 중 서울중앙지법 안에서 새롭게 재판부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또한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사법발전위원회’도 국민참여 재판을 더 늘려야 한다고 제안하는 상황에서 기본권 침해나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법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검찰 역시 특별검사제도를 두고 있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국회가 만든 제도다. 특검법을 만들어 검찰 밖 인물을 검사로 임명할 수 있게 했다. 또한 검찰 스스로 내부 규칙(대검 훈령)을 수정해 특임검사 제도를 만들었다. 특임검사는 기존 검찰 지휘라인에서 벗어나 검찰총장에게만 직보한다. 이조차 한계가 있어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따로 만들자는 주장이 계속 나온다.

하지만 행정부 소속인 검찰과 달리 사법부인 법원에 대한 견제는 지금까지 전무하다시피 했다. 삼권분립을 존중하는 차원이었다. 재판 거래 의혹이라는 전례 없는 상황을 맞이해, 법원의 법관 심판에 대한 독립성이 의심받기 시작했다. 사법부의 신뢰도가 추락해서다. 재판부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내용을 법제화한 특별법이 대안으로 부상 중이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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