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더워서 가까운 카페 안으로 몸을 숨겼다. 이마에 얼음을 대보고 뒷목에도 넣어봤지만 소용없다. 땀 닦은 수건에선 냄새가 풀풀 풍기고 옷에선 시큼한 과일 썩은 내까지 여름 농성장은 한바탕 냄새와의 전쟁이다. 몇 분만 천막에 있어도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옷가지는 내 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저녁이 되어 해가 져도, 두세 번 옷을 갈아입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바로 내 몸이 이 냄새와 강하게 연루되었다. 몸을 씻는 것이 우선이다.
새벽 2시50분이면 청소차가 지나간다. 출발지는 알 수 없지만 서울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앞을 그 시간에 지나간다. 쓰레기봉투 욱여넣는 요란한 소리에 잠을 깨기 일쑤다. 경찰이 24시간 경비를 서고 덕수궁 돌담길 벽면 조명은 밤새 켜져 있다. 취객이 지나가다 시비를 거는 경우도 가끔 있다. 새벽 5시30분이 넘으면 키 작고 왜소한 여성 청소노동자 한 분이 쓰레기를 줍고 거리를 쓴다. 생수 한 병 드릴 때도 있지만 도망치듯 손사래 치는 경우가 더 많다. 한낮에 가로수에 물 주는 공무원들이 분향소 주변으로 물을 뿌려주고 가면 마음까지 시원하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렸다. 서른 번째 노동자 김주중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6월27일이니 벌써 35일째다(8월6일 기준). ‘정부의 공식 사과와 명예회복’ ‘손배·가압류 철회’ ‘해고자 전원 복직’을 걸고 땡볕 아래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분향소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 쌍용차 해고자들이다. 장례식장도 향냄새도 상복도 모두 싫어한다. 하지만 분향소를 가장 긴 시간 차렸던 이들도 쌍용차 해고자들이다. 장례식장과 향냄새와 상복도 가장 많이 드나들고, 맡았고, 입었다. 해결하겠다고 대들었지만 판판이 깨지고 들려 나갔다. 특히 죽음만은 막고 싶었지만 우리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어떤 면에서 죽음이란 인간 의지의 통제구역 바깥에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문제 아닌가 싶다. 그래서 제도와 법이 서야 할 곳은 바로 이 농성장 같은 위태로운 곳이어야 한다.
목숨은 질기다. 수사 차원이 아니다. 신생아는 하나의 탯줄에 의지해 생명을 받아 태어난다. 탯줄이 잘려야 생명은 비로소 세상에 본격적으로 진수된다. 부모와 가족 그리고 친구, 사회로 관계의 줄이 하나둘 넓고 다양하게 덧붙으며 목숨 줄이 동아줄처럼 단단하게 휘감겨 만들어지고 그 관계의 촘촘한 힘으로 살아간다. 사회적 동물이라 하지 않았나. 그 관계가 모조리 끊어지는 경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적어도 자살은 잘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두두둑 뜯겨 나간 후 마침내 툭 하고 끊어지는 것이다.
누가 그의 목숨 줄에 칼집을 내어 삶을 감당하지 못하게 만들었나
그래서 질문은 이렇게 해야 한다. ‘누가 김주중의 튼튼한 생목숨 줄에 치명적인 칼집을 내어 삶의 무게를 감당 못하게 만들었는가’ ‘그 중심 줄이 어떻게 잘려 나갔기에 얽히고설킨 수천 가닥 생의 줄들마저 맥없이 잡아 뜯기고 삭게 되었는가’. 쌍용차 노동자 죽음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연루된 인사들의 가차 없는 처벌도 중요하다. 이명박-박근혜-양승태로 이어지는 썩은 냄새 진동하는 사법 농단 처벌도 속도를 내야 한다. 그러나 옷을 갈아입어도 냄새가 여전하듯 쌍용차의 몸을 씻는 일이 더 시급하다. 지금도 쌍용차 노동자들 삶의 기둥을 자르고 물어뜯는 자들 손에 들린 칼. 그 칼을 우선 뺏고 씻고 처벌하는 일이다. 쌍용차 대표이사에게 이 죽음의 1차 책임을 묻고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하는 이유다. 또 한 번 목숨을 뜯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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