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이 시작되면 한 남자의 독백이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흐른다. “아름다운 스튜디오와 악기는 뮤지션에게 놀이터와 같죠. 나는 마치 캔디 가게에 들어간 아이 같아져요.”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대부분의 뮤지션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완전하게 만족하지 못하죠. 악기를 완벽하게 마스터할 수도 없고요.” 그렇다면 그에게 음악이란 어떤 존재일까. “음악은 언제나 퍼즐 같아요. 도전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아름다운 미스터리죠.”

남자의 이름은 데이브 그롤. 세계적인 밴드 푸 파이터스(Foo Fighters)의 리더다. 최근 그가 발표한 솔로곡 ‘플레이(Play)’의 러닝타임은 22분이 훌쩍 넘는다. 유튜브에 ‘데이브 그롤 플레이(dave grohl play)’라고 일단 쳐보라. 31분20초짜리 영상이 하나 뜰 것이다. 이 영상의 전반부가 위에 언급한 인터뷰로 이뤄져 있고, 곡은 8분40초부터 시작된다. 이 영상과 노래가 놀라운 이유, 무엇보다 그가 드럼 트랙을 가장 처음 완성했다는 데 있다. 그것도 그냥 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쭉 녹음해 리듬의 바탕을 먼저 마련한 것이다.

ⓒYouTube 갈무리데이브 그롤은 밴드 푸 파이터스의 리더다.

이게 왜 놀랄 일이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드럼을 연주하기 전, 그의 머릿속에 앞으로 펼쳐져야 할 22분간의 대서사시가 다 들어 있었다는 거다. 이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고? 영상을 보라. 드럼 치는 데이브 그롤만 헤드폰을 안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드럼으로 연주의 기초를 마련한 뒤, 데이브 그롤은 악기마다 다른 옷을 입고 연주를 하나씩 덧입히는 방식으로 마치 그와 클론들이 합주하는 듯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데이브 그롤이 이 곡을 발표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조인 더 밴드(Join The Band)〉라는 음악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악기를 가르쳐주고 밴드 결성에 계기를 마련해주는 이 프로젝트를 알게 되면서 자신이 처음 악기를 잡고 친구들과 마음껏 ‘놀던’ 시절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 곡의 제목이 ‘Play’인 이유다.

어? 뭔가 우리 들어맞고 있는데?

영상을 보면서 과거 데이브 그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향해 날린 통렬한 일침이 생각났다. “오디션 프로를 보면 내가 어떤 생각이 드냐고? 잘 봐. 수백명이 줄을 서서 8시간을 기다려. 그리고 겨우 자기 차례가 오면 노래를 할 수 있지. 그런데 노래 중간에 누군가 말해. ‘X나 별로야’ 이게 요즘 애들이 뮤지션이 되는 방법이야. 상상이 가? 이건 다음 세대를 망치는 거라고. 음악을 하고 싶다면, 낡은 드럼을 사서 창고 같은 곳으로 가야 해. 근데 보니까 참 허접하다 싶거든. 그래서 친구들을 불러. 근데 얘들도 허접한 거야. 어쨌든 모였으니까 X나게 합주를 하는데 이건 평생 동안 두 번 다시 경험 못할 행복한 시간이거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뮤지션이 되는 거야.”

참 20세기적인 발언이다 싶을 것이다. 반감이 심한 누군가는 ‘꼰대’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뮤지션이 한 명쯤 존재한다는 게 괜히 반갑다. 정말 허접한 애들이 모여 합주를 하는데, “어? 뭔가 우리 들어맞고 있는데?” 싶은 순간의 느낌은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테니까. 영상 밑에 달린 누군가의 댓글처럼 데이브 그롤이 자신을 자랑하려 이런 시도를 한 거라고 보지 않기를 바란다. 악기를 잡고 함께 연주를 하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 체험인지 최선을 다해 알려주려 노력한 결과물이 바로 이 곡 ‘Play’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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