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지도를 열어 하와이를 입력해보자. 모니터의 중앙에 하와이가 나타났을 때, 마우스를 아래쪽으로 돌려 줌아웃을 한다. 당신의 눈앞엔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파랗게 표시된 지역의 넓이는 무려 한반도의 750배.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이라곤 도무지 없을 것 같은 압도적인 바다의 영역이다.
하지만 조금만 확대해보면 이내 수많은 지명이 나타난다. 아직 땅을 의미하는 옅은 황색이 채 보이기도 전에 나타나는 그 글씨가 보여주는 것은, 망망대해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역사다. 일견 무모하기 짝이 없는, 곰곰 생각해보면 더없이 위대한.
지도를 조금만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태평양을 빼곡히 채운 저 섬들에 모여 사는 이들은 대체 언제, 어디에서 건너간 것일까? 많은 과학자들이 이 질문에 답을 내놓기 위해 고심했다. 20세기 중엽에는 폴리네시아인들이 동쪽에 위치한 남아메리카에서 건너왔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노르웨이의 모험가이자 인류학자인 토르 헤위에르달은 이 이론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고대의 왕이 전쟁에 패한 후 일족을 모아 배를 타고 서쪽으로 떠났다는 페루의 전설과,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지역과 남미에서 고구마를 부르는 명칭이 같다(쿠마라/쿠마르)는 사실이 그의 흥미를 끌었다. 이에 착안해, 그는 남미 원주민이 뗏목을 타고 태평양 지역으로 대량 이주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1947년에는 자신의 가설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전통 방식에 따라 만든 뗏목에 타고 페루의 카야오를 출발해 폴리네시아의 라로이아 지역까지 직접 항해하기도 했다. 그의 모험은 이후 영화와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많은 이들의 바다를 향한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헤위에르달의 항해는, 고대에도 원양항해술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전통 방식으로 만든 배를 타고도 대양을 건너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것 외에는 성과가 없었다. 후대에 이루어진 유전학과 언어학적 연구는, 폴리네시아인들의 고향으로 서쪽을 지목했다. 그것은 어쩌면, 폴리네시아 사람들의 언어에 비밀 코드처럼 숨겨져 있었을 수도 있다. 폴리네시아의 많은 민족들이 자신들의 기원으로 꼽는 지명이 있다. ‘아바이키(소시에테 제도)’ ‘하바이이(타히티)’ ‘하와이키(뉴질랜드 마오리)’ ‘히바(이스터 섬)’ 등이 그것이다. 언어학자들이 재구성한 바에 따르면, 이 이름은 고대 폴리네시아 공용어의 ‘사와이키(고향)’에서 갈려 나왔다. 이 단어는 다른 뜻도 내포하고 있다. 소시에테의 ‘아바이키’는 그 자체로 저승을 가리키며, 같은 어원을 공유하는 사모아어의 ‘사우알리이’는 ‘영혼’을 뜻한다. 죽은 영혼이 향하는 곳은 해가 저무는 곳, 즉 서쪽이다. 사모아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의 이름이 ‘사바이이’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당연히 이 섬은 가장 서쪽에 있다.
별과 너울 모양, 새떼와 구름 읽는 기술로 항해하던 시절
현대 과학이 밝혀낸, 사와이키의 위치는 사모아의 사바이이보다 훨씬 더 서쪽이다. 그 섬은 다름 아닌 타이완이다. 폴리네시아인들의 DNA가 말해주는 것은 이들이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쯤에, 타이완을 떠나 필리핀을 거쳐 파푸아로 들어왔고, 오스트레일리아 인근의 섬을 징검다리 삼아 지금의 폴리네시아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침반도 망원경도 없었던 시절, 별과 너울의 모양, 그리고 새떼와 구름을 읽는 기술에 의존해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일을 앞두고 막막하고 두려운 느낌이 든다면, 인터넷에 접속해 태평양의 섬들을 둘러보자. 우리 안에 내재된 용기의 증거가 바로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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