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를 왜 그렇게까지 서두르는 겁니까?” 7월17일 일본 참의원 내각위원회. 다쓰미 고타로 의원(일본공산당)이 니시무라 야스토시 관방 부장관을 몰아붙였다. 다쓰미 의원은 해외 카지노 업체의 정치권 로비 실태를 추궁했다. 앞서 7월12일 같은 당 다이몬 미키시 의원은 미국 카지노 업체 시저스엔터테인먼트의 일본 진출 컨설턴트사가 복합리조트 법안(카지노 법안) 제출에 관여한 의원들에게 정치 후원금을 제공한 사실을 지적했다.

7월17일 다쓰미 의원은 또 다른 카지노 업체를 거론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본사를 둔 세계 카지노 업계 랭킹 2위의 MGM리조트. MGM리조트의 컨설턴트사 GR재팬은 국회 인근에 사무실을 마련해 정계 인사 초청 모임을 여는가 하면 자민당 인사 등을 직원으로 영입했다. 니시무라 부장관은 “GR재팬 인사를 따로 만나거나 식사한 적 없고, 이해관계도 없다”라고 답변했다. 사실이 아니었다. GR재팬 측 자료에 따르면 그는 이미 2016년 9월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 특보’ 직함으로 이 회사가 주최하는 조찬모임에 참석했다.

ⓒEPA일본 도쿄에 있는 파친코 내부 모습. 일본인 성인 남녀 536만명이 도박 중독 환자로 추정된다.

다쓰미 의원의 추궁은 멈추지 않았다. 다쓰미 의원의 이러한 분투에도 자국민의 카지노 출입 허용을 포함한 복합리조트 법안이 가결되었다. 연립 여당인 자민·공명당 외에도 애초부터 법안에 우호적이던 유신당까지 가세했다. 〈아사히 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76%가 이 법안 통과에 반대했지만 원내 다수 의석의 횡포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법안에 따르면 전국에 카지노가 최소 3곳 생긴다. 카지노 법안이 통과되자, 지자체는 유치를 위한 잰걸음에 나섰다. 홋카이도, 오사카 부, 아이치, 와카야마, 나가사키, 미야자키 현 등 6개 지자체가 카지노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르면 2023년께 합법적인 카지노가 영업에 들어가리라 보인다.

일본 열도는 왜 카지노 광풍에 휩싸이게 되었을까. 그 시작은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후 정부 재원을 마련한다며 일시적으로 불법화되었던 경마와 마권 판매를 재개했다. 경륜(1948년), 오토 레이스(1950년), 경정(1952년) 등 공영 갬블이 잇달아 합법화된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관할했다. 도박은 불법이지만 공영 갬블에는 특례법이 적용되었다. 이렇듯 관 주도로 형성된 갬블 시장에서 ‘민간 영역’을 점유한 것이 이른바 ‘유기(遊技)’로 구분된 파친코다.

일본 경제가 고도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전후 부흥’의 명목은 퇴색되어갔고, 1975년을 기점으로 비교적 고르게 유지되던 갬블 시장의 점유비율도 깨졌다. 파친코 독주가 시작된 것이다. 파친코는 공영 갬블이 몰락하는 동안 연 매출액 30조 엔을 넘어서는 거대 시장을 형성했다. 파친코 매장은 전국 1만7600여 개로 접근성이 좋았고, 게임으로 딴 경품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도박성에 힘입어 ‘대박’을 쳤다. ‘미니 카지노’인 파친코는 정·관계와 밀착했다. 특히 2003년 출범한 파친코 체인스토어 협회가 갬블 시장과 정치권의 공조 체계를 다졌다. 이 단체는 내각의 국무위원을 지냈거나 다선인 중진이 포함된 다수의 여당 의원과 도박 산업에 우호적이던 야당(주로 유신당) 의원 등을 ‘자문역’으로 대거 끌어들였다.

ⓒEPA아베 신조 총리(오른쪽)와 아소 다로 부총리(왼쪽)는 카지노 의련 최고 고문을 지냈다.

이런 가운데 1999년 5월 이시하라 신타로 당시 도쿄 도지사가 카지노 유치 깃발을 올렸다. 지자체들은 1980년대 벌인 대형 토목사업의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대형 리조트에 카지노를 유치하려 했다. 실효성 문제로 도쿄 도는 한 발짝 물러섰지만 한번 올라간 깃발을 다른 지자체가 부여잡았다.

카지노 법안에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

‘대형 토목사업 뒤처리 구상’에 부응해 자민당은 2001년 ‘공영 카지노를 생각하는 모임’, 2002년에는 ‘국제관광산업으로서의 카지노를 생각하는 의원연맹’을 출범시켰다. 이 의원연맹의 회장을 맡은 이가 바로 파친코 체인스토어 협회 자문역인 노다 세이코였다. 당시 비판 의견을 표명한 정당은 일본공산당과 사민당뿐이었다. 제1야당이던 민주당도 “도박 산업을 건전한 오락으로 육성하겠다”라면서 자민당보다 먼저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수구 정당과 보수 야당이라는 두 물줄기가 도박 시장을 매개로 합쳐지면서 2010년 4월 탄생한 게 국제관광산업진흥의원연맹(카지노 의련)이다.

카지노 의련의 핵심 멤버 대부분은 극우파 의원 조직인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나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 등의 회원이다. 아베 총리의 핵심 측근 중 하나인 하기우다 고이치 카지노 의련 사무국장(제2차 아베 정권 관방장관 역임)이나 시모무라 히로후미 고문(제2차 아베 정권 문부과학장관 역임)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전후 최악의 극우파 내각’으로 비판받는 4차 아베 내각 각료들 가운데서도 다수가 카지노 의련에 포진했다. 아베 총리와 아소 부총리는 2014년까지 카지노 의련 최고 고문을 지냈다. 노다 세이코 총무장관은 부회장, 모테기 도시미쓰 특명 담당상(경제·재정정책)은 고문, 고노 다로 외무장관과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장관도 핵심 멤버로 활동 중이다.

재계의 지원도 든든하다. 금융·종합건설·자동차·전력·조선 등 유명 대기업과 업계 단체들이 참여하는 일본프로젝트산업협의회(JAPIC)는 카지노 추진이 ‘현실적인’ 국정 과제로 자리매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JAPIC의 정회원 기업으로는 군수업체인 IHI, 아베 정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미쓰비시 각 계열사가 참여하고 있다. 카지노 의련이 출범한 2010년 4월, ‘재계의 총본산’이라 불리는 게이단롄(일본 경제단체연합회)도 나섰다. 게이단롄은 “카지노 없이 복합형 리조트는 성공할 수 없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정부·여당과 재계, 그리고 글로벌 자본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카지노 법안에 대해 도리하타 요이치 교수(시즈오카 대학 경제학과)는 “사회적 이익과 비용을 비교해보고 어느 쪽에 더 장점이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도리하타 교수가 지적한 ‘비용’은 도박 중독을 말한다. 2014년 8월 발표된 후생노동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인 성인 남녀의 4.8%, 약 536만 명이 도박 중독 환자로 추정된다.

기자명 홍상현 (〈게이자이〉 한국 특파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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