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이라고 하면 너무 넓어요. ‘산업 분야의 한식’ ‘요식업의 한식’을 주제로 합시다.”

한식공방 조희숙 대표는 섭외를 위한 전화 통화에서 자신이 할 말의 범위부터 명확히 했다. 올해 예순인 조 대표는 그동안 세종호텔·노보텔앰배서더 강남·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호텔신라 한식당과 대학 조리 교육의 제일선에서 35년을 걸어온 요리 전문가다. 지금 운영하는 한식공방은 음식 연구 공간 겸 음식점이다. 음식에 예술적 가치를 불어넣겠다는 생각으로 ‘공방’이라 이름 지었다.

여기서 잠깐 ‘요식업(料食業)’이란 말을 살펴보자. 요식업이란, 일정한 시설을 갖추고 영리를 목적으로 음식을 파는 일이다. 맛난 음식 만드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 음식은 손님에게 매력적으로 비쳐야 한다. 그 공간에서 제대로 일을 해낼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조리·판매· 홍보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조 대표는 고도로 세련된 전문 한식당에서 이익의 구조를 궁리하고, 인력·시간·재료를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개발해왔다. 가정에서 늘 먹거나, 길거리에서 만만하게 먹는 음식과 구분되는 가치와 위상과 상품성을 갖추기 위해 연구했다. 그가 개발한 한식 메뉴며 식당 운영법은 일선 요리사들에게 공부거리가 되었다. 그가 ‘주방장의 주방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먼저 그가 생각하는 한식이란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시사IN 신선영조희숙씨는 ‘주방장의 주방장’으로 불린다. 조씨가 운영하는 한식공방에서 조리하는 모습.


“밥, 국, 반찬으로 차린 반상차림. 여기서 한식의 기본·중심·바탕, 한식 맛의 설계를 생각해요. 맨밥은 백지이고, 거기 김치와 장이 어울린 반찬을 통해 먹는 사람 스스로 저마다 먹는 방식과 맛을 만들어가지요.”

조 대표가 질문자를 보며 웃는다. 단박에 시원한 설명이 나오지 않아 섭섭하냐는 듯. 이윽고 말을 잇는다. “음식은 과정입니다. 한마디로 요약된 해답은 없어요. 한국인에게 이어져온 식생활과, 오늘날 한식에 이런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함께 살펴야지요. 한식이 무엇인지, 어쩌면 이제야 고민이 시작된 건지도 몰라요.”

조희숙 대표가 세종호텔 한식당에 첫발을 내디딘 1983년은 한국 요식업사에서 한식당이 양식당과 겨룰 만한 미식 공간으로 도약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즈음이다. ‘전문성’ ‘본격성’이 화두였다. “당시 세종호텔 한식당은 한식 분야 최고, 최고급이었죠. 단 짜임새는 부족했어요. 40명이 근무하지만, 구식으로 돌아가는 큰 주방. 그래도 부족함을 생각했으니까 그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 현직 교사 출신 여성을 뽑았을 거예요.”

1981년 중학교 가정과 교사로 임용된 지 2년 만이었다. 그는 학교를 포기하고 한식당을 택했다. 대학에서 배운 가정관리에 잇닿은 조리 기술, 손맛 좋은 집안 맏딸의 감각을 바탕으로 일하면서 “내 일은, 솜씨 좋은 주부가 재료와 양념을 아끼지 않고 만든 음식을 수북이 담는 일과는 달라야 한다”라고 깨달았다. “한식은 아무나 해서 언제든 먹는 것, 이걸 뭘 호텔까지 와서 먹느냐 하는 분위기였죠. 그래서 양식 못지않은 멋진 한식, 맛의 설계나 차림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면 거기 답할 수 있는 한식을 더 꿈꾸었나 봐요.”

한식 요식업의 본격적인 시작이라면 1903년 오늘날 서울 일민미술관 자리에다 당시 황실의 식음료 및 연회 담당자였던 안순환(1871∼1942)이 개업한 조선 요리옥 ‘명월관’을 꼽을 수 있다. 명월관 등 해방 전 조선 요리옥이 제시한 한식은 요식업의 한 예가 되었다. 이들 조선 요리옥은 한국의 여느 산업과 똑같이 내실보다 성장에 기울었다. 겉모습은 1970년대 이후 한 세대 만에 그럴듯해졌다. 그러나 한식의 뼈대와 기본, 그리고 한식 문화의 내일을 여는 교육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

 

조희숙씨는 매작과(위 왼쪽), 약과(오른쪽 위)와 밤초에 이르는 아기자기하고 우아한 병과 등을 만들었다. 그가 조리한 가지새우냉채(오른쪽 맨 위).


“학교 조리 교육은 양식 학제에 의존하고 있어요. 양식당이 일찍이 이룬 주방 조직의 체계화는 산업과 교육 양쪽의 오랜 과정이 낳은 결과예요. 밑도 끝도 없이 한식은 왜 양식만큼 짜임새가 없느냐는 소리는, 고민도 궁리도 더 하지 말라는 소리죠.” 조 대표의 말문이 터졌다. “한식을 검토할 때, 무엇이 약점이다, 모자란다 하는 이야기가 더 많죠. 현장을 들여다본 적도 없고, 역사를 생각해본 적 없이 흠부터 잡으니까 섭섭해요.”

동아시아 미술의 구도와 선에 착안한 연출

그는 우리가 먹어온 것을 재해석하고, 문화적으로 현대의 새로운 색깔을 입히고, 매력적인 상품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럴 때에야 ‘한식 세계화’도 언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이다. 그의 한식은 새로운 연출로 유명하다. 이것도 한식인가 하는 의문이 들 만한 연출도 얼마든지 시도한다. 그런데 입에 넣어보면, ‘아, 한식이네’ ‘한식이 이렇게 옷을 갈아입을 수도 있네’ 하는 즐거운 충격을 준다.

어떤 기술, 어떤 음식인가. 그는 처음부터 밥과 장과 김치와 기본 반찬을 기초로 하는 기술과 연출을 염두에 두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탕 계통에 잡채·만두는 물론이고 상류 계급의 집안 비법으로 이어져 조선 요리옥이 전수하고, 해방 전후 대학의 가정과에서 수습한 연회상 차림, 주안상, 마른 음식으로 구성한 찬합 등을 두루 익혔다. 수삼을 쓰는 냉채, 도미 살을 이보다 화려하게 쓸 수 없는 도미면(도미전·고기· 부재료·육수가 조화를 이룬 일품요리), 어느 전보다 고급스러운 해삼전, 매작과(한과)에서 밤초(밤의 원형을 살려 당에 졸인 한과)에 이르는 아기자기하고 우아한 병과 등을 만들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연출을 할 수 있을까. 차림까지 매력적이어야죠. 처음에는 위로 쌓았어요. 하지만 그건 이미 양식이 잘하고 있어요. ‘아니다!’ 하고는 동아시아 미술의 구도와 선에 착안했습니다. 조희숙의 펼치는 구도, 그걸 시도했고,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하더군요.”

그 시도는 한식공방의 차림에 모여 있다. 과일 하나를 깎아내도 배색을 염두에 둔다. 대추, 귤, 방울토마토, 메뚜기, 어란, 육포. 조개관자와 같은 재료가 오르되브르(전채) 또는 앙트르메(코스 사이에 내는 음식) 못잖게 연출된다. 재료를 살짝 데치는 숙회도 그림 같다. 맛은 전통적인 장이 뒷받침하되 맛을 따로 들인 고추장, 막걸리식초 등이 이채로움을 더하는 식이다. 돼지고기 묵은지 찜은 백자를 통해 연출되어 새로운 입체감을 뽐내기도 한다. 장조림, 장아찌, 김치 등도 차림의 중심을 잡는다.

“제 머릿속에는 밥·국·김치·반찬이 어울린 반상차림, 우리가 오랫동안 먹어온 방식이 늘 자리를 잡고 있어요. 반상차림의 상상력, 이건 제가 양보를 안 해요. 이를 중심에 두고 여러 시도를 하는 겁니다. 이것도 한식인가 하는 혼란은 시대가 정리해줄 테고, 의미 있는 시도는 시장에서 살아남겠지요.”

 

ⓒ시사IN 신선영한식공방 조희숙 대표(위)는 “이어져 내려온 한식의 전통과 현대를 잇는 고리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익숙한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시도의 방향, 상상력의 방향은 끝없이 미세한 조정을 하면서 잡아가야 한다. 익숙한 맛, 익숙한 차림이 아니면 ‘맛없다’라거나 ‘이것은 한식이 아니다’ 하는 손님에게 고분고분하지는 않겠다는 안간힘, 오래 했다고 무감각해지지 않으려는 생각도 요리사에게는 중요한 재교육 과정임을 끝없이 떠올린다. 이런 마음을 동료, 후학과 나누고 싶단다.

조 대표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환경, 국경 없는 음식의 시대에 한식의 방향을 어떻게 잡으면 좋을까. 이번에는 즉답이 나왔다. “김치파에야, 푸아그라전, 어느 쪽이 한식 같아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김치파에야, 김치버거. 이건 파에야나 햄버거 쪽에서 국경 없는 시대에 새로운 부재료 하나를 얻은 거 아니겠어요? 그에 비해 ‘전’이라고 하는 기술, 음식과 맛의 기획 안에 푸아그라와 같은 재료를 담는다면 어떻겠어요?”

그에게는 한반도를 벗어나 다른 대륙을 넘어 살다 온 젊은 요리사들의 새로운 한식 시도가 반갑기만 하다. 이른바 모던 한식이 미디어가 조장한 유행에 휘둘린 면이 없진 않았지만, 이제 소비자의 선택이 의미 있는 시도와 껍데기뿐인 허세를 구분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으로 파악한단다. “30대 젊은 요리사도 30년 먹어온 한식이 있잖아요. 새로운 세대에게 한식의 중심과 바탕을 알고자 하는 분위기가 나날이 자라고 있어요. 이어져 내려온 한식의 전통과 현대를 잇는 고리가 되고 싶어요.” 그러고는 작정한 듯 말했다.

“음식은 남한테 잘 보이자고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내 필요로 만들어가는 일상이고, 남에게 잘 설명해서 이해시켜야 할, 내가 사는 곳의 문화입니다. 제 생각은 그래요.”

그가 왈칵 대화의 마침표를 찍는다. 사전에 보낸 질문지에 ‘한식 세계화’에 대해 말해달라는 대목이 있었다. ‘그래, 이거 물어보며 마치려 한 거 아니냐.’ 네 속을 안다는 듯 인터뷰이가 빙그레 웃는다.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기자명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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