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남북 정상회담 평양’을 위해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프레스센터가 마련됐다. 정상회담 취재를 위한 대규모 허브였다. 국내에서 187개사 2261명, 29개국 124개사 외신 465명으로, 취재진 총 2726명이 머물렀다. 매체별 지정석에 앉은 기자들은 전면 대형 스크린 영상과 관계자 브리핑에 24시간 촉각을 기울였다.

공항 출입국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 미리 서류를 작성해 등록한 언론사들만 출입증을 받았다. 입구는 하나만 열었고, 검색대가 설치됐다. 검색대를 통과하면 옆에 있는 모니터에 출입증 사진과 이름, 소속사가 확대되어 떴다. 청원경찰이 24시간 배치돼 입구 몸수색을 하고 건물 내외를 돌았다. DDP 내부에는 메인 프레스룸 외에 인터뷰룸, 토론회장 등 여러 취재 공간이 있었다. 모든 영상과 브리핑, 토론회는 한국어·영어 동시통역이 제공됐다.

ⓒ시사IN 신선영9월20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마치고 프레스센터를 방문했다.

서울 프레스센터는 일종의 ‘2차 현장’이었기에, 취재에 한계가 있었다. 상주하는 기자들도 안방에서 뉴스를 보는 시청자들처럼 평양 공동취재단이 전하는 영상에만 의존했다. 제한된 정보에 아쉬워하는 반응이 나왔다. 가령 9월18일 백화원 영빈관 환영 행사를 생중계한다는 소식에 기대했던 기자들은, 자동차에서 내린 문 대통령이 백화원에 들어가는 장면까지만 영상으로 나오자 “이게 끝이야?”라며 아쉬워했다.

새 정보에 목마른 기자들은 매일 두 차례 열린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브리핑에 기댔다. 그러나 윤 수석도 “나 역시 여러분처럼 여기에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정보가 없다”라고 답변하는 일이 잦았다. 공식 브리핑이 끝나면 일부 기자들은 ‘백 브리핑’을 듣기 위해, 퇴장하는 윤 수석에게 달려갔다. 기자 수십명이 수석을 뒤쫓아 뛰어가는 일이 반복되자, 한 관계자는 “다른 취재진을 위해 백 브리핑은 금지한다. 수석님은 퇴장해달라”고 방송했다.

9월18일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내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포옹하자 내외신 기자들은 휴대전화로 대형 스크린을 촬영했다. 흐뭇한 표정을 짓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4·27 판문점 정상회담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환호나 박수가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판문점 회담이나 북·미 정상회담 같은 ‘메가 이벤트’를 경험한 까닭이다. 기자들의 반응을 끌어낸 것은 지엽적인 해프닝들이었다. 가령 9월19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한 뒤, 카메라에 보일 정확한 쪽수를 10여 초간 찾지 못하는 장면을 두고 폭소가 터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농담 섞인 말을 두고도 웃음이 나왔다.

양 정상의 만남 자체보다는 남북 간 구체적인 합의 내용에 관심이 많이 쏠렸다. ‘9월 평양 공동선언’과 두 정상의 기자회견문을 숨죽여 들었다. 최종건 청와대 평화군비통제비서관이 평양에 마련된 브리핑룸을 찾아 이 문서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이 나오자 모두 받아 적었다. 같은 언론사에서 온 기자들은 서해 수역에 관한 합의서 조항에 대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주요 합의 내용이 나온 뒤 기자들은 프레스센터 외부 복도나 화장실, 카페테리아에서 어떻게 보도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5·18 진실 밝힌 외신 기자도 정상회담 지켜봐

전례 없는 새로운 이벤트 소식에는 내외신을 가리지 않고 큰 반응이 터져 나왔다. 9월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까운 시일 안에 서울을 방문할 것을 약속했습니다”라고 기자회견문을 읽자 프레스센터 전체가 술렁였다. 동시통역된 회견문을 받아쓰던 외신 기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와우(wow)’라는 입 모양을 보였다. “두 정상이 백두산에 오른다”라는 김의겸 대변인의 발표에는 주로 국내 언론사 쪽 반응이 뜨거웠다. 다음 날, 대형 스크린에 백두산 천지가 배경인 양국 정상 내외의 사진이 뜨자 다시 한번 감탄이 나왔다. 한 기자는 “진짜 ‘민족의 영산’이긴 한가 봐”라고 말했다.

외신 취재진의 수는 확연히 줄었다. 1000여 명 가까이 등록했던 판문점 회담 때와 달리 이번엔 465명이 등록했다. 숫자는 적었지만 외신 기자들 역시 윤영찬 수석의 브리핑 때마다 날카로운 질문을 여럿 던졌다. “재벌 총수들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한 배경은 무엇인가? 북한이 메시지를 줬나?(ABC뉴스)” “비핵화보다 남북 관계 개선이 앞서간다는 우려가 미국에 있는데 어떻게 보나?(로이터)” 등이었다. 홍콩의 피닉스 위성TV 기자는 직접 한국어로 “백두산 방문 스케줄을 잡은 배경은 무엇인가? 앞으로 백두산 관광을 추진할 생각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팀 셔록 기자도 프레스센터에 머물렀다. 셔록 기자는 1996년, 미국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조치를 묵인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시사IN〉 제455호 ‘5·18 진실 밝힌 푸른 눈의 감시자’ 기사 참조). 그는 9월20일 프레스센터 전문가 토론회장에서 개최된 ‘평양 정상회담 결과와 향후 전망’ 토론회에 패널로 나섰다. 셔록 기자는 “실시간 화면으로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굉장히 감동받았다. 한국 국민들이 계속 추구해왔던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협정이나 철도 착공은 국제사회에 강력한 평화의 의지로 비친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11월에 치를 미국 중간선거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고도 덧붙였다. “지난주 버니 샌더스 등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민주당이 선거에 이긴다면 미국의 대북 정책은 강경해질 것이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국 국가이익센터 국방연구국장도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적이 많다. 11월까지 다음 몇 주가 매우 중요하다. 최악으로 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프레스센터 취재의 대미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이 장식했다. 9월20일 오후 4시30분께 윤영찬 수석이 단상으로 올라와 “엠바고(보도 유예)를 전제로,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을 알린다”라고 말하자 금세 장내가 떠들썩해졌다. 정부 관계자들과 청원경찰이 바삐 움직이며 보안을 체크했다.

2시간 뒤 대통령이 기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단상에 올랐다. 먼저 준비된 ‘문재인 대통령 대국민 보고’를 읽었다. 기자들은 저마다 원고를 받아썼다. 일문일답 순서에서는 다른 관계자들이 단상에 올랐을 때에 비해 훨씬 많은 기자들이 손을 들었다. 문 대통령이 앞줄에 앉은 기자들과 악수를 하고 퇴장할 때에는 뒷줄에 앉은 기자들 몇몇도 나와서 악수를 청했다. DDP 프레스센터는 9월21일까지, 온라인 프레스센터는 9월23일까지 운영됐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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