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에 이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연내에 열릴 수 있을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영구적으로 폐쇄할 것을 약속했다.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의사까지 천명했다. 이로써 공은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9월19일(현지 시각) 성명에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환영하며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측 대표와의 회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비핵화 완료 시점을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1년 1월로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김정은 위원장도 9월5일 정의용 대북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북·미 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실현했으면 좋겠다”라며 구체적으로 비핵화 시한을 제시한 바 있다.

ⓒ시사IN 신선영9월18일 폴라 핸콕스 CNN 서울특파원이 순안공항 환영식 화면을 배경으로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워싱턴 외교가는 종전선언과 핵 리스트 신고 문제로 답보 상태에 있던 비핵화 협상이 다시 활기를 띨 것이라 보고 있다.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마이클 푹스 미국진보센터 선임연구원은 CNN과 한 인터뷰에서 “미국이 지금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은 비핵화 진전에 대한 북한의 진정한 조치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국제사찰단 입회 아래 영변 핵단지를 폐쇄하겠다면 이는 진일보한 진정한 조치이다”라고 평가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2차 정상회담을 바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평양 공동선언을 환영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남한에서 아주 좋은 소식이 있다. 우린 북한과 관련해 엄청난 진전을 이루고 있다”라며 긍정적인 첫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대북정책에 직접 관여하는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은 아직 신중한 모습이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거듭 밝혔지만 미국의 핵심 요구사항인 ‘핵 리스트’ 관련 내용이 평양 공동선언에 없었기 때문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좌관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최우선 기준으로 북한의 모든 현존 핵무기와 핵물질·핵시설 등을 포괄하는 완전한 핵 리스트 신고를 누누이 언급해왔다. 스탠퍼드 대학 부설 아태문제연구소 방문학자인 댄 스나이더는 “미국 협상가들은 설령 핵 리스트가 완전하지 않아도 이를 비핵화의 진지한 과정에 필요한 첫 출발점이자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시험대로 간주한다”라고 〈시사IN〉에 밝혔다.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중단, 풍계리 핵 실험장 폐쇄, 탄도미사일 발사대 해체 등 일련의 선제적 비핵화 조치로 성의를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핵 리스트 신고 같은 구체적 조치가 빠지면서 미국 내에선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가 존재했다. 최근 조너선 폴랙 브루킹스 연구소 객원연구원은 “북한이 핵 실험장을 폐쇄하고 미사일 발사대를 해체했다고 하지만 검증된 적도 없고, 사찰단을 허용하지도 않았다”라며 평가 절하한 바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평양 공동선언대로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영구 폐기’하는 절차를 밟는다면 미국 측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검증을 통한 확인’을 요구해온 미국 측 주장을 북한이 수용한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상응조치’라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북한 핵시설의 심장부인 영변 핵단지의 영구적 폐기를 김 위원장이 직접 천명한 것도 의미 있다. 미국 국무부 정보조사국(INR)의 한반도 책임자를 오랫동안 역임한 존 메릴 박사는 〈시사IN〉에 “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 폐쇄 의사를 밝혔는데 그 대상에 플루토늄 핵시설 외에 고농축 핵시설까지 포함할지 여부가 확실치 않다. 만일 두 시설 모두 폐기하겠다면 엄청난 일이다”라고 평가했다. 평양 공동선언에 담기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조치와 관련한 메시지가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이번에도 메신저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9월24일 문 대통령은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11월 중간선거 앞둔 트럼프의 선택

ⓒAP Photo트럼프 대통령은 평양 공동선언을 환영하며 “아주 좋은 소식이 있다”라고 트위터에 썼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이 영변 외의 다른 비밀 장소에서 우라늄 핵시설을 가동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친한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평양 공동선언과 관련해 “북한이 미사일과 핵실험을 중단하긴 했지만 비핵화로 움직이진 않았다”라고 썼다. 그는 “문 대통령의 방북이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니키 헤일리 유엔 대사의 대북 최대 압박 노력을 약화시키지 않을까 우려한다. 남한이 김정은에게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미국에 요구할 ‘상응조치’에 대한 미국의 화답도 변수다. 문제의 상응조치는, 북측이 지난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 ‘새로운 관계’ 구축 차원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종전선언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과 종전선언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향후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으로 이어질 경우 주한 미군의 지위 변화 등 군사적 파장을 우려한 고위 실무진들의 반대로 아직 실천하지 못한 상태다.

일부 외교 전문가들도 북한이 구체적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현 단계에서 종전선언을 하는 것은 시기상조로 보고, 부정적 측면을 강조한다. CIA 동아시아·태평양 미션센터 국장을 지낸 박정현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섣부른 종전선언에 따른 부작용으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정당화, 한·미 동맹과 미국의 대아시아 신뢰도 잠식, 범세계적 핵 비확산체제 약화 등을 꼽는다. 그는 “향후 한·미 양국이 군사훈련을 재개하거나 미국이 추가 제재를 발표하면 북한은 미국의 종전선언 불이행을 이유로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종전선언은 김정은 위원장의 실질적인 핵무기 폐기와 연계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존 메릴 박사는 “북한이 미국에 상응 대가로 종전선언을 요구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북한은 경제 부흥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종전선언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라고 밝혔다.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당초 미국은 지난 8월 말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때 북한이 핵 리스트를 제공하면 ‘한국전쟁이 끝났음을 확인한다’는 차원의 정치적 상징성이 담긴 종전선언을 북한에 제시할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전격 취소함으로써 이 카드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북한이 핵 리스트 신고에 전향적 태도를 취하면 되살아날 가능성이 충분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정치적 난국을 돌파하고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르면 10월 중에라도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를 통해 2차 정상회담 의사를 밝혔고, 백악관도 “준비가 진행 중”이라고 확인한 상태다. 평화협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확실한 종전선언을 원하는 북한과, 완전한 핵 리스트를 요구하는 미국 측이 얼마나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있느냐가 2차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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